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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출항 준비

by 적진

8화: 출항 준비

케이는 유신 백작이 있는 라 행성으로 떠날 준비를 했다. 소나무 요새에서 보급품을 싣고 물품 목록을 꼼꼼히 확인했다.

함교에서는 항해사 리엘이 운항 스케줄을 바쁘게 확인하고 있었고, 통신병 젠은 푸른 숲 조합에서 내려온 명령서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내일 12시 출항 확정입니다." 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젠의 보고와 동시에 리엘은 "내일 뵙지요."라는 짧은 인사와 함께 함교를 나섰다. 리엘의 칼 같은 퇴근에 젠은 기가 차다는 듯 헛웃음을 흘렸지만, 이내 다시 일에 몰두했다. 한참을 명령서와 화면을 정리하던 젠이 케이 쪽을 보며 입을 열었다.

"함장님, 진우 소령이 출항 전에 탑승한다고 합니다."

진우는 이번 일로 두 계급 특진하여 소령이 되었다. 케이 역시 1년간의 조사가 끝나고 정식 소령으로 승진하며 까마귀호의 함장이 되었다.

"연락선에 소령이 둘이나 되네요. 계급 인플레이션입니다." 젠이 웃으며 말했다.

케이는 젠의 이야기에 미소를 지으며 "젠 소위도 퇴근하지, 너무 무리하지 말고."라고 말했다.

젠은 "이거 마무리하고 제 방으로 가겠습니다."라고 답했다.

케이는 함교를 나와 까마귀호를 둘러보았다. 까마귀호의 선두에는 새 부리처럼 튀어나온 부분이 있었고, 부리부터 선미까지 가느다란 프레임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선미에는 크리스털 엔진이 달려 있었는데, 모듈을 빼고 보면 마치 살을 발라낸 생선 뼈 같은 모습이었다.

케이는 먼저 선두의 기계실로 가서 장비 상태를 확인했다. 통신 장비, 레이더 등 각종 장비들과 함선의 모듈 연결 장치들이 있었고, 대부분 자동화된 기계들로 가득했다.

선두를 나와 가는 몸통을 지나 중간 함교와 연결된 메인 공간으로 갔다. 이곳에는 선원들의 숙소와 휴식 공간이 있었고, 위로는 함교와 연결되어 있었다. 둥근 공처럼 생긴 이유는 워프 엔진이 이 공간을 둘러싸고 있기 때문이었다. 크리스털 엔진에서 나오는 막대한 전력으로 플라스마를 회전시켜 공간의 위상을 바꾸고 워프 공간으로 전환시키는 역할을 했다. 워프는 워프 엔진 지름의 5~10배 정도 워프 영역을 만들고 공간을 통째로 이동 예상 지역의 공간과 대체시키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그렇게 공간과 공간을 바꾸어가며 이동하는 것이 워프 엔진의 역할이었다.

케이는 까마귀호의 생선 뼈 같은 프레임에 모듈들이 장착되는 것을 보며 크리스털 엔진이 달린 선미로 이동했다. 대부분의 선원들은 보이지 않았다. 내일 출항을 위해 모두 자신의 방에서 잠을 청하고 있을 터였다.

케이는 엔진룸에 가서 출력 사항을 확인했다. 오 기관장이 모니터를 보고 있는 케이를 보자 반갑게 다가왔다.

"어이, 케이 함장! 오랜만이네. 1년 만인가?"

"오랜만입니다, 기관장님." 케이가 반갑게 인사했다.

백마호부터 함께 근무했던 오 기관장은 이번에 진우 소령과 함께 까마귀호로 배속되었다.

"백마호보다 엔진이 아담해서 좋네." 오 기관장은 너스레를 떨었다.

"아주 인기인이 되었어. 진우 녀석은 아주 콧대가 부러지겠어. ㅋㅋㅋ"

케이가 조사를 받는 기간 동안 진우는 제국의 인기인이 되어 있었다.

"황태자하고 헬레니아 함대 들어가는 것 영화로 나온 거 보았어? 막판에 황태자가 배신자를 죽이고 자폭하는 우주선에 진우가 뛰어들어가는 장면이 하이라이 트지. 그 죽는 배신자 복제인간이 케이 함장 맞아? 하하하하. 영화는 정말 잘 만들었어. 복제인간 죽으면서 웃는 모습에 사람들 최고의 장면이라고 해. 하하하. 케이 함장도 꼭 봐~~"

오 기관장은 흰머리를 끄덕이며 크게 웃었다. 오 기관장은 계급은 중위였지만, 황족이었다. 지금 황제와 같은 유전자를 가진 황제 후보 1000번째 형제. 100번 이후는 황제가 될 가능성이 전혀 없지만, 그래도 황제의 형제였다.

"오 기관장님, 잘 부탁드립니다." 케이가 인사를 한 후 함교로 돌아가려 하자, 오 기관장은 케이를 불러 세웠다.

"참, 물건 중에 재미있는 것이 있던데. 무기창 54번 확인해 보게."

"네, 알겠습니다."

케이는 함교로 돌아가 함장석에 앉았다. 젠은 자신의 방으로 가고, 비어있는 함교에는 자동화된 업무들만 표시되고 있었다. 항구 독에서는 모듈들이 뼈대만 있는 까마귀호에 살이 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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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는 의자에 앉아 잠시 잠이 들었다가, 우당탕하는 소리에 잠을 깨었다. 케이가 뒤를 돌아보니 지은이 서 있었다.

"안녕하세요, 케이 함장님. 이번에 까마귀호에 배속된 라 행성 감독관 지은 중위입니다. 전입 신고합니다."

케이는 깜짝 놀랐다. 사전에 연락도 없었고 전달받은 것도 없던 상태였고, 늦은 밤 시간이었기 때문이었다.

"아니, 어떻게?" 케이가 당황한 표정을 보이자,

"1년 전 기억 안 나세요? 제국에서 고문을 너무 많이 했나?" 함교를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지은은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유신 백작님께 졸랐지요. 까마귀호에 간다고. 6개월은 졸랐던 것 같아요. 쿠쿠쿠. 다시 만나서 반갑습니다, 케이 함장님."

계속 당황해하는 케이를 즐겁다는 듯이 보며 지은은 계속 재잘거렸다.

"푸른 숲 조합 연수 과정 생각보다 힘들었네요. 하하하, 지루해서 하하하."

"여기가 내 자리인가?" 케이 옆에 비어있는 좌석에 앉으며 지은은 계속 떠들었다.

"나 제국 사관학교에서도 갔다 왔다고요, 추천 서류 들고요."

케이 앞을 기웃거리는 지은은 푸른 라 행성 제복에 커다란 곡옥 목걸이를 하고 있었다.

곡옥이 보통의 목걸이보다 컸다. 그러나 지은의 글래머러스한 모습에는 적당한 크기로 보였다. 반짝이는 곡옥은 지은이 이리저리 재잘대며 이야기할 때마다 반짝반짝 빛을 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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