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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 샛별성 아래 그림자

by 적진

까마귀호의 출항을 알리는 굉음이 소나무 요새 항구에 울려 퍼지기 전, 황금빛 토우 한 대가 웅장한 자태를 뽐내며 나타났다. 진우 소령의 전용 토우였다. 그 뒤를 이어 수많은 기자들의 토우와 촬영용 소형 함정들이 마치 벌떼처럼 몰려들어 진우의 모습을 담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였다.

"복돌이 함장, 나 태우고 가야지!" 진우의 호탕한 목소리가 통신망을 통해 케이에게 전해졌다.

리엘은 기다렸다는 듯이 까마귀호의 선두에 도크 모듈을 열고 작업팔로 진우의 황금색 토우를 능숙하게 수납했다. 진우의 토우가 격납고로 사라지자, 기자들의 토우들도 단거리 워프를 통해 하나둘씩 사라져 갔다. 케이는 말없이 상황이 종료될 때까지 기다리다 마지막 기자의 토우가 사라지자 비로소 출항을 지시했다.

라 행성으로의 단거리 워프가 시작되고, 까마귀호가 안정적으로 항해를 시작하자 케이는 함장 자리에서 일어섰다. 지은도 감독관 자리에서 함께 일어났다. "어디 가시나요?" 지은이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케이를 따라가며 물었다. 케이는 말없이 함교를 나와 진우가 있는 토우 도크 모듈로 향했다. 지은은 계속해서 까마귀호 내부에 보이는 것들에 대해 재잘거렸고, 지나가다 만나는 승무원들과도 스스럼없이 인사하고 웃으며 케이 주변을 맴돌며 따라갔다.

진우는 해병대원들에게 둘러싸여 한창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20여 명의 해병대원들은 케이가 나타나자 이야기를 멈추고 진우와 케이 사이에 길을 만들었다. 마치 강물이 갈라지듯 케이와 진우 사이에 공간이 열렸다. 케이가 진우 소령에게 잠시 이야기하자고 말을 걸자, 진우는 기다렸다는 듯이 케이에게 주먹을 날렸다. 케이는 살짝 피하며 진우에게 발차기를 날렸고, 진우 역시 이를 피하며 뒤로 물러섰다.

해병대원들은 둘을 둘러싸기 시작했고, 편을 나누어 응원하기 시작했다. "케이 함장님!" "진우 소령님!" 이곳저곳에서 응원이 터져 나왔고, 토우 정비를 하던 승무원들도 모여들어 싸움을 구경했다. 케이의 발차기를 피해 진우의 뒷차기가 케이의 복부를 가격하자, 이곳저곳에서 함성이 터져 나왔고 까마귀호의 승무원 대부분이 모여들었다. 진우의 잽을 피하며 케이는 살짝 웃었고, 케이의 발차기에 살짝 뒤로 물러난 진우는 해병대원들에게 손을 흔들어 보였다. 해병대원들의 대부분은 진우에게 환호했고, 일반 승무원들은 케이를 응원했다.

20분이 넘도록 둘의 싸움이 계속되었고, 쓰러지고 일어나기를 반복했다. 케이의 발차기에 진우가 같이 발차기하자 둘이 함께 쓰러졌고, 다시 일어나려 하자 지은이 둘 사이를 막아서서 두 사람의 뒷목덜미를 잡고 승무원 휴게실로 끌고 갔다. 싸움이 끝난 것을 알아차린 승무원들과 해병대원들은 아쉽다는 표정을 지으며 모듈을 떠나기 시작했다.

지은은 케이와 진우를 한심하다는 듯 쳐다보며 "적당히들 하시지요!"라며 잔소리를 시작했다. 케이와 진우는 지은의 잔소리를 신경 쓰지 않는 듯 휴게 시설 내 음료 보관기에서 음료수를 꺼내 나눠 마시며 의자에 앉아 말없이 음료수만 마셨다. "실력 좋아졌네." 케이의 말에 진우는 "쓰는 김에 나노머신 좀 넣어줬으면 좋았잖아."라고 받아쳤고, 나노머신이 있었으면 치료받는 데 6개월을 줄였을 거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복돌이 함장, 다음에 포인트 쓰려면 좀 통 크게 쓰라고, 하하하!" 진우는 크게 웃었다. 그리고 일어나서 토우가 있는 모듈로 나가면서 "선물 하나 보냈으니 12번 보관 창고로 가보라"고 했다.



지은은 자신을 말을 무시하고 있는 케이와 진우에게 뽀로통하며 계속 잔소리를 했지만, 케이는 진우가 사라지자 자리에서 일어나며 지은에게 창고 모듈로 가자고 했다. 창고 모듈로 가면서 지은은 계속 케이에게 궁시렁거렸으나, 케이는 계속 못 들은 척하며 창고 모듈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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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고 12번의 문이 열리자 푸른색과 옥색이 잘 어울리는 토우가 모습을 드러냈다. 진우의 황금색 토우와 같은 신형 기체였고, 도색만 푸른색에 옥색의 식별 색상이 포인트로 들어가 있었다. 케이는 피식 한번 웃고 창고를 나섰고, 지은은 계속 보겠다고 했지만 케이는 무기창으로 향했다. 무기창 54의 문이 열리고 안에 있는 목록을 케이가 보자 지은도 따라 들어와서 떠들기 시작했다. "목록을 전에 확인했는데 별것이 없었는데." 지은이 무기창 안을 돌아보며 말했다. "옛날에 쓰던 무기던데, '초전자 레일 발칸포'? 탄환을 전자기력으로 고속으로 쏘는 건데 사정거리가 짧아서 안 쓰는 것 같은데."

케이는 무기고 안에 있는 목록을 보더니 통신을 열어 젠에게 이야기했다. 무기고 54에 있는 레일건을 까마귀호 상부 갑판에 설치하라고 지시했다. 젠이 블러스터 갑판에 설치된 블러스터 포 3문을 어떻게 하냐고 물어보자, 케이는 블러스터 포는 다 떼고 레일건으로 다 바꾸라고 지시했다. 지은이 옆에서 통신을 듣고는 "장거리 공격은 어떻게 할 거냐?"고 케이에게 추궁했지만, 케이는 지은을 무시하고 함교로 돌아갔다. 뽀로통한 지은에게 케이는 '귀엽다'고 생각했고, 목에 있는 목걸이도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워프가 끝나고 라 행성이 모니터에 나타났다. 라 행성의 우주정거장에 까마귀호가 정박하자 리엘과 젠은 바쁘게 일하기 시작했다. 젠은 무장을 바꾸기 시작했고, 리엘은 라 행성에 보내는 물건과 라 행성의 물건을 까마귀호에 싣는 작업을 시작했다. 케이와 지은은 셔틀을 타러 함교를 나왔다. 지은은 계속 뽀로통한 상태였고, 케이는 말없이 셔틀에 탔다. 월성으로 좌표를 잡자 지은이 뽀로통한 말투로 "잠시만요! 월성 아니고 샛별 성으로요. 라 행성의 남극에 있는 도시로, 라 행성은 월성과 샛별성만 사람이 거주할 수 있는 곳이었다."

케이는 살짝 웃으며 지은의 말에 따라 샛별성으로 좌표를 잡았다. 셔틀은 크게 선회하면서 남쪽의 샛별성으로 향했다. 대기권에 진입하자 거대한 분지가 나타났다. 샛별성의 다른 이름은 그림자성. 거대한 분지 안에 있는 도시는 분지의 그림자 속에 있었고, 그 가운데 도시의 불빛만 십자로 보였다. 검은 거대한 분지 안에 십자 형태의 도시 불빛만 보이는 신기한 도시였다. 셔틀은 분지 안 어둠 속으로 들어갔고, 잠시 후 유도등이 셔틀을 안내했다. 셔틀은 잠시 후 착지하였고, 지은은 케이에게 따라오라고 이야기하고 앞서나갔다.

한참을 둘만 고요하게 복도를 지나고 지은도 조용히 말없이 앞서서 걷기만 했다. 한참을 아무도 없는 복도를 지나고 소형 이동 캡슐 정거장에 도착했다. 작은 큐브 안에 2명 정도 앉을 수 있는 의자가 있었고 뒤로 짐을 넣을 수 있는 공간이 있는 작은 캡슐이었다. 지은은 캡슐에 먼저 들어가 앉자 케이도 따라 앉았다. 캡슐 문이 닫히고 튀어나가듯 캡슐이 움직였다. 갑자기 어두워지고 캡슐 안 불빛을 제외하고는 계속되는 어둠이었다. 한참을 가다 갑자기 캡슐 주위가 환하게 밝아지더니 거대한 도시의 전경이 나타났다. 거대한 십자 형태의 도시가 보였다. 도시 안은 화려했고 고층 빌딩이 숲을 이루고 있었다. 불빛의 안쪽으로는 제국의 수도 건물보다 화려한 건물들이 어둠 속에 숨어 있었다. 캡슐은 다시 어두워졌고 어느 밝은 캡슐 정류장에 도착했다. 지은은 문을 열고 나가면서 살짝 웃었다. "도착했네요, 샛별성."

정류장을 나와 지은을 따라 걷던 케이는 눈앞의 모습을 보고 놀랄 수밖에 없었다. 푸른 숲이 울창한 공원과 그 사이에 자유롭게 앉아서 모니터를 보고 있는 이카들이 보였다. 지은과 같은 엘프의 모습을 한 이카인들은 숲속 이곳저곳에서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앉아서 모니터를 보거나 통신을 하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일들하고 있어요. 다들 쉬기도 하고. 여기가 제가 있던 곳이죠." 지은이 케이를 보고 이야기했다. 놀라고 있는 케이의 표정을 즐거운 듯 보던 지은은 거대한 나무가 있는 곳으로 케이를 안내했다.

그 옆에는 유신 백작이 나무에 기대어 눈을 감고 있었다. 인기척을 느낀 유신 백작은 살짝 눈을 뜨더니 케이를 보고 놀랐다. "앗, 여기에 케이를?" 지은을 보며 살짝 놀라는 눈치를 보였다. 유신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놀라고 있는 케이에게 웃으면서 말했다. "샛별성에 온 걸 환영한다, 케이. 1년 만인가? 팔은 다 나았나 보네, 후후후." 케이가 다른 팔로 상처 났던 팔을 살짝 만지며 "백작님 안녕하십니까. 1년 만에 인사드립니다."라고 인사를 건넸다. "여기가 라 행성의 안채, 샛별성이네. 편히 있다 가도록. 참, 그리고 숙제 하나 전달했네. 선 공주에게 편지 하나 전달해주게." 유신 백작은 지은과 함께 잠시 이야기한 후 숲속으로 사라졌다. 지은은 유신 백작을 잠시 따라가다 다시 케이에게 돌아왔다. "가시지요, 까마귀호로." 지은은 케이의 손을 잡고 숲을 나와 다시 캡슐로 갔다. 케이는 지은의 목걸이가 사라진 것을 알고 있었지만 모른 척하며 캡슐을 타고 다시 셔틀 정류장으로 돌아왔다. 셔틀에는 짐이 실리고 있었다.

리엘 선공주의 행성으로 좌표를 변경해주고 젠 조합에 라행성 문서가 왔는지 확인해줘

케이는 크게 통신열고 지시한후 짐을 실고 있는 까마귀호를 한동안 계속 처다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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