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우리는 어떻게 수영을 해왔나
독일에서 짐을 풀고, 어느 정도 정리가 되고 나니. 몸이 근질근질하기 시작했다. 유랑민의 생활을 끝내고 정착생활을 시작한 나에게는 동적 에너지를 충족시켜줄 무언가가 필요했다. 문득, 아침에 느지막이 일어나자마자 몸에서 에너지가 펄펄 넘치는 것이 뭔가 빨리 뛰쳐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머리를 질끈 묶고 맨얼굴로 버스를 타고 수영장으로 이동했다. 분명히 날씨는 아직 서늘한데 오늘따라 추위도 못 느끼겠다.
아침 10시 수영하기에 전혀 이른 시간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아서 운영시간을 살펴보지도 않고 집을 나섰다. 수영장이니까 당연히 6시에는 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나의 상식이 곧 그대의 상식이라는 나의 오만함이었다. 수영장의 오픈 시간은 11시, 이때부터 수영장에 들어가서 절대로 한국 수영장을 상상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프런트 데스크에 앉아서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수영장이 시작하기에는 왜 이렇게 늦은 시간이 아닌 지에 대한 고민을 했다. 독일답게 꼼꼼히 학생 할인을 받고, 티켓에 찍힌 시간을 확인한다. 입장에 따라 돈을 받는 한국과 달리 독일은 시간 단위로 돈을 받아서 2시간을 초과하면 초과 요금을 내야 한다.(바이로이트 기준)
마음의 준비를 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입장하자마자 성별에 따라 분리가 된 후 수영장에 들어가게 되어있는 한국의 수영장과는 달리 성별의 구분이 없이 바로 탈의실이 등장한다. 그냥 들어간 그대로 쭉 나열된 샤워부스 같은 탈의실에 문을 열고 들어가서 입고 있던 옷에서 수영복으로 바로 갈아입는다. 그런 후 반대편의 문을 열고 나가서 락커룸에 소지품을 보관하고 샤워실에서 -간단히-샤워를 한 후 수영장으로 들어간다. 원래 원래 수영장을 다닐 때처럼 파우치에 샴푸, 린스, 폼클렌징, 샤워볼까지 다 챙겨 왔는데 다들 간단히 물만 묻히고 가는 모습에 뭔가 김이 샌다. 한국에서 이렇게 하면 아줌마들한테 혼쭐이 난다.
샤워를 하고 들어가기 직전 새어나온 잔머리들을 모두 쓸어 모아 꾸역꾸역 수모 안에 집어넣고 수경을 탕 하고 끼고 조금은 떨리는 마음으로 들어가는데, 또다시 이런 사람은 나뿐이다. 누구도 수경이나 수모를 끼고 있지 않다. 독일에서는 독일 법을 따르기 위해 수모를 슬며시 벗고 수경은 내 눈을 위해 끼기로 했다. 독일의 수영장이 내게 준 첫인상은 참 편하다는 것이었다. 한 달, 두 달 동안 수영장에 다니면서도 편하다는 느낌을 받기는 힘들었다. 모든 레일들에서는 사람들이 경기라도 하듯이 자신의 최선을 다 해서 레일 끝을 왔다 갔다 했다. 모든 레일들에서 힘찬 발길질과 역동성이 느껴졌다. 조금의 긴장감과 목표를 다지고 내 실력을 늘리는 그 느낌이 좋았던 것 같기도 하다. (내가 간) 독일의 수영장이 무작정 좋다는 것이 아니라, 그냥 다른 느낌을 받았다. 교환학생을 오면서 수영복이라는 짐을 추가할 때 다짐은 '가서 수영 연습 열심히 해서 일단 자유형 하나는 바다 수영도 할 수 있을 만큼 해와야지!' 하는 이런 야망찬 숙제였다.
한국에서처럼 레일 끝을 숨 가쁨을 더 오래 참아가며 수영을 역동적으로 할 기대에 왔던 수영장에는 할아버지, 할머니, 아기들이 다들 한 수영장 안에서 수모와 수경도 벗어던진 채 너무도 자유롭게 수영을 하고 있었다. 정말, 엄마의 자궁 안에서 유영하는 아기들 같았다. 누구도 세차게 발길질을 하지 않는다. 그저 유유자적 수영 장위를 평영으로 조용조용 느릿느릿 헤엄쳐 나간다. (정말 신기하게 아무도 다른 수영을 하지 않고 다들 평영을 한다.) 도저히 발차기를 하며 퐈-팍 하며 수영을 해보려니 마치 이곳의 평화를 파괴하는 느낌마저 들어 망설여진다.
어떤 점이 다른 지 파악이 제대로 안 된 상태에서 조심히 물에 들어가기 시작하는데 깊이가 겨우 40cm 남짓은 되는 것 같다. 수영장의 양옆에서는 계속해서 파도를 만들어내며 바다와 유사한 환경을 조성해두었다. 의아한 마음으로 조심조심 들어가는 데 물이 점점 깊어진다. 그러다 중간 조금 더 가서부터는 갑자기 4~5m 수심으로 확 깊어지는 부분이 나타났다. 깊은 물을 무서워하는터라 깜짝 놀란 마음으로 뒷걸음치고 그 사이만을 왔다 갔다 했다. 그러나 나를 제외한 누구도 깊은 물을 신경 쓰지 않고 그저 끝에서 끝까지 천천히 왔다 갔다 한다.
깊은 물이 되기 전에도 레일이 그다지 길지도 않아서 끝까지 왕복하기가 힘들지 않고 그 사이에 굳이 설 필요가 없기에 무서워할 이유가 없지만 난 이미 그 깊이에 압도가 된 상태였다. 여기서 독일의 수영교육과 한국의 수영교육에서 참 차이를 많이 느꼈다. 한국은 기술을 가르치지만, 독일은 생존을 가르친다.
사실, 이리저리 왕복하던 독일인들 대부분이 평영 자세로 말하자면 '엉터리'인 사람들이 많았다. 수영 선생님이 "이렇게 하시면 안돼요."라고 했던 동작들이었다. 그렇지만 그들 중 누구도 깊은 물과 인공 파도처럼 가끔씩 치고 나오는 물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자세야 어찌 되었든 빠지지 않고 천천히 수영을 이어갔다. 어느 정도 왕복 수영을 할 수 있지만, 물에 대한 두려움과 파도에 낯선 나는 '내가 아는' 수영장이 아닌 상태에서는 쉽게 당황하고 말았다. 물이 갑자기 뿜어져 나오면 다리에 힘이 풀렸고, 깊은 물이 보이면 가까이 가기가 무서웠다.
나의 수영 수업은 다양한 기술을 가르쳐주었고, 때론 대결을 시키거나, 쉬지 않고 레일을 왔다 갔다 하게 했다. 힘들어하면 그래도 참고해야 느는 수영이었다. 숙제였다. 물론 이런 기술들은 사람에 따라 case by case이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이런 수영이 생존을 위한 수영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아무리 자유형을 연습해도 나는 깊은 물과 파도 속에서 또 당황해버릴 것 같았다.
또 정말 행복해 보이는 모습으로 여유롭게 수영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수영을 정말 진심으로 즐겼던 것은 맞는지에 대해서도 생각을 해보았다. 분명, 물속을 헤엄쳐 나가는 느낌이 좋았지만 성취감도 있었다. 그렇지만 종종 그것은 내게 숙제였던 기분이 아무래도 든다. 수영을 할 때 항상 나도 모르게 무언가 카운트를 하며 데이터들을 모았다. 내가 좋아하는 정신의학분야의 교수님 중에 윤대현 교수님이라는 분은 대중적으로도 쉽게 심리학을 풀어주셔서 평소에 강의를 찾아서 들으면 참 좋았다. 그분이 말씀하신 행복하게 살아가는 방법 중에 하나는 숙제를 만들지 말라는 것이다. 신체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건강하게 지내려면 운동이 중요하지만 '일주일 3번 30분'을 건강하기 위해 투자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저, 목적 없이 그 자체를 즐길 것. 아이들이 에너지가 넘치는 이유는 그 자체를 즐기기 때문이다. 과거에 대한 후회나 미래에 대한 걱정 없이 현재를 살아간다. 어떤 3살짜리 아이도 "1살 때 잘못 살았어."와 같은 후회나 "후.. 6살에는 이제 어떡하지.."라는 걱정을 하지 않는다. 그런 에너지들을 모아 모두 현재에 투자한다.
현대 사회를 피로 사회라고 부르기도 했던가, 분명 우리가 공급하는 kcal를 보면 점차 고열량으로 가고 에너지를 충분히 섭취하는 데, 그렇다고 수렵 채취를 하느라 소비 에너지가 많은 것도 아닌데. 우리는 매일 피로하다. 그건 우리가 모든 일을 숙제로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부터 책을 매일 1권씩 읽어야지! 하지 않아도 책을 즐기다 보면 저절로 그렇게 수렴하게 된다. 수렴하지 않더라도, 즐기면 그만이다. 어차피 즐기지 않고 읽은 책은 소용없을 테니 말이다. 그러니까 뭐 결론은 enjoy your lif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