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도쿄에서
모든 일은 빨리 진행되었다.
회사를 그만두겠다는 고민은 좀 되었지만 얘길하고 그만두는 순간까지는 이틀뿐이었다. 얘길 꺼낸 시기가 다행히도 일하던 프로젝트들이 마무리 되어가고, 마침 이틀 후엔 월급일이어서 속전속결로 진행된 것이다. 안그래도 회사에서 날 내보내려 했던건 아닐까 하는 음모론, 역시 나의 뜻을 알고 온 우주가 도와주고 있다는 연금술사론, '그래 난 이 회사를 그만둘 팔자였어' 라는 운명론 등등 별별 생각을 다 하며 퇴사날 밤을 보냈다.
어디론가 떠나야만 했다. 할 일이 없어진 날들을 알차게 보내야했고, 평일에 할 수 있는 가장 멋진(?) 일을 하고 싶었다. 그리고 일도 그 외의 것들에서도 자꾸 생각들이 쑥쑥 자라나는 머리를 비워야했다. (((제주도도 부산도 가고싶었지만 개인적이고 아픈 추억들로 이번엔 패스하기로 했다.) 제주도보단 멀지만 너무 멀지 않은 타국에, 한숨 돌릴만한 시간동안, 빠른 시일내에 출발하는 '비교적 싼' 비행기표를 찾자마자 결제를 하고 며칠 후 짐을 쌌다. 여행 또한 빨리 진행되었다.
지금 나는 도쿄에서 4일째 머무르고 있다. 어떤 목적이 있어서 온건 아니었기에 이것저것 조금씩 시도하고 있다. 유명하다는 관광지도 가보고, 때로는 마음에 드는 잡화점에서 한두시간씩 구경을 하고, 편의점 음식을 먹을 때도 맛집이라는 곳에서 줄을 서서 먹을 때도 있고.
방향성이 없으니 동선이 길어진다. 게다가 거미줄처럼 복잡하게 꼬여있는 도쿄의 지하철 환승과 출구를 찾아다니다보면 더더욱 걸음의 수가 무한정으로 늘어난다. 서울과 비슷하지만 또 색다른 도시의 풍경속을 헤매다 보면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다. 걸음이 늘어날수록 서울에서 짊어지고 온 잡념은 줄어든다.
4년 전에 떠난 여행에서 목표는 단 한가지였다. "아무 것도 적지 않기" 즉, 생각이라는 굴레를 벗어나고 싶었다. 물론 생각이라는 것이 들지 않을 수 없지만, 그걸 정리하고나 곱씹어보고 싶지 않았다. 현실을 도피한 여행이라면 더더욱. 그렇게 3달을 타국에서 보내고 돌아오니 후유증이 꽤 컸지만 당시엔 꽤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그 이후 4년여의 시간동안 여러 곳을 다니면서도 아무 것도 적지 않았다. 일부러라기보단 그냥 그렇게, 그 방식이 익숙해진것 같다. 그리고 오늘 아주 오랜만에 여행 중에 무언가를 쓰게 되었다. 자꾸 이런저런 생각이 드는걸보니 덜 피곤하거나 현실에서 제대로 도망을 못 친것 같다.
침대에 누워 휴대폰으로 끄적이고 있으니 졸리고 다리도 아프지만, 내일은 더 힘차게 걷고 일찍 잠들 수 있기를. 서울에 두고 온 잡념들을 잘 견딜 수 있기를. 조금 늦어도 마음이 편해지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