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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유나 Oct 15. 2017

계절 앓이

인연은 수많은 계절로 기억된다.


계절을 앓고 있습니다.


그것이 가을의 길목에도

예외는 아니겠습니다.


해마다 오는 가을임에도

매번 서투르게 맞아들입니다.


해마다 가는 가을인데도

매번 서운하게 떠나보냅니다.


나는

계절을 앓고 있습니다.

인연을 앓고 있습니다.





인연은 누군가에게

계절로 기억된다는 것.


온화한 심정으로 말을 건네는

알맞은 온도의 당신은 '봄'


초록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소박함을 지키려는 당신은 '여름'


너른 하늘 바라보는 눈으로

맑은 마음 전하는 당신은 '가을'


긴 어둠 속 홀로 서있는 가로등처럼

묵묵히 강해지고 있는 당신은 '겨울'


인연은 수많은 계절로 기억된다.





철마다 오한을 하는 건

우리에겐 고질적인 습관.


그 흔한 감기 한번 걸리지 않아도

사계절 지나는 길목 위로는

꼭 한번 앓아누워야만 하는.


우리는 계절을 앓는 사람.  

우리는 인연을 앓는 사람.


아픈 사람.





어쩌면 계절을 보낸다는 건

인연을 보내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철마다 계절 지나가듯

철마다 인연 떠니다.


당신이란 인연에 정을 붙이기 무섭게

또 다른 인연으로 떠나가야합니다.


어떡할까요.

지금도 계절이 바뀌고 있습니다.

지금도 당신이 떠나고 있습니다.


우린 앓고 있습니다.





새로운 계절 맞아 헌 옷을 정리하듯

나도 버림받을 가치가 있는 사람입니까.


겨울이면 어김없이 들리는 옛 노래처럼

나도 무엇으로 영원히 기억되는 사람입니까.


바람의 무게로 겨울을 직감하듯

나도 예고 없이 문득 그리워질만한 사람입니까.

 

나도 계절입니까.

나도 인연입니까.


당신처럼.

그 누군가에게.





나는 지금

당신의 계절을 앓고 있는 중.


일기예보에 맞게 따뜻한 옷을 입었는데

갑자기 더워지는 온도 같은 사람.


이 시작했다 생각했는데

갑자기 코를 에는 추위의 바람 같은 사람.


장마가 쏟아지는 하루 우산을 펼친 순간

거짓말처럼 맑게 개인 하늘 같은 사람.


그렇게

예고 없이 찾아와서 당황하게 해놓고

말도 없이 사라져서 공허하게 하는 사람.


그래서 계절의 길목에서

나를 앓게 하는 사람.


아프게 하는 사람.





하지만 늘 그렇듯

나는 논리에 맞지 않는 사람입니다.


열이 나는 뜨거운 이마 위에

차가운 손이 닿아야 살아있음을 느끼는.


춥다고 겨울을 싫어하면서도

한겨울에도 커피는 차게 마셔야 하는.


감기에 걸려 몸살을 앓아도

까슬까슬한 살갗의 아픔은 반가운.


어쩌면

아픔을 즐기는 사람.

고통을 즐기는 사람.


결국

모든 계절을 이겨낼 사람.





그러니

계절을 앓는 것이 두렵지 않습니다.

인연을 앓는 것도 두렵지 않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당신이란 계절이 찾아오면

기꺼이 앓겠습니다.


그리고 그 후의 일은

마음에게 맡기겠습니다.


결국 올 가을도 한순간 지나가겠지만

내년에도 어김없이 돌아온다는 것을

우린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계절은 늘 그 자리에 있습니다.

인연도 늘 그 자리에 있습니다.


우리는 늘 그렇듯 결국

모든 계절에 적응해나갈 것입니다.





앓던 몸을 일으킵니다.


지금 하나의 계절이 지나갔습니다.

다시 새로운 계절이 오고 있습니다.


이젠 지나간 계절의 서운함은 넣어두겠습니다.

대신 다가올 계절의 설렘만을 꺼내놓겠습니다.


그러니





지나가는 계절에 마음 두지 마세요.

지나가는 인연에 아파하지 마세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계절은 돌아옵니다.

우리의 인연은 돌아옵니다.


인연은 수많은 계절로 기억됩니다.








To. 나의 가을


비워진 것들을 믿습니다.

그건 낭만을 간직하겠다는 의미이며
동시에 당신을 기억하겠다는 말입니다.

믿음을 증명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서로가 멀어지는 것입니다.

믿음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더 선명해집니다.
믿음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더 단단해집니다.

비록 그것이 쓸모없을지언정.
비록 그것이 부질없을지언정.

우리는 그것을
'안녕'이라 부릅니다.



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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