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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유나 Apr 10. 2017

눈물은 얼마입니까

마음이 말라버린 것이었음을


눈물은 얼마입니까?


요즘은

눈물을 사고 파는 것이

일반적이라는데.


안 살 수가 있나요.

나름 신세대인데.


눈물은 얼마입니까?





단돈

삼천오백 원이라는.


인공적인 말투의 젊은 약사에게

인공적으로 포장된 눈물의 값을

인공적인 카드로 지불하고 나서.


파르르 떨리는 손끝으로

파르르 떨리는 눈동자에

또르ㅡ륵ㅡ. 떨어뜨리면.


어머나!

세상이 이렇게 인공적일 수가!





"눈물이 말라버렸어."


눈물이 말라갈 무렵.

당신이 생각났다.


안구건조증이라 퍽퍽하다던

당신의 흐릿한 빨간 두 눈은

내 마음까지 메마르게 만들었고.


그 건조한 말을 내뱉은 후엔

으레 인공눈물을 찾던.


당신은 눈물을 사는 사람.





참.

이해가 가질 않았었다.


무언가에 쫓기고

무언가에 시달리고

무언가에 좌절하던.


그때의 당신은 분명

눈물 없인 살 수 없는 매일을

살아가던 사람이었기에.


굳이 눈물을 사지 않아도

눈물이 넘쳐날 당신이라

굳게 믿었기에.


하지만 그러한 나의 믿음은

'믿음'이 아닌 '무지'였음을.





시간이 흐르고 사회에 나와

수많은 실패와 원치 않은 경험들에

고개를 숙인 후에야.


그로 인해

늘 촉촉할 것만 같던 나의 눈마저

빛을 잃고 바싹 말라 충혈될 무렵 즈음에야.


알게 되었다.


과거 눈물을 사던 당신처럼

지금 내가 눈물을 사고 있다는 것을.


그렇게 나 또한

눈물을 사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는 것을.


어른이 되었다는 것을.





힘껏 힘들고.

힘껏 아프고.

힘껏 포기한 후에야.


아이러니하게도

눈물은 점점 말라간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정말 울고 싶은 마음이 간절할수록

오히려 눈물을 흘릴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때문에 당신과 나.


눈물이 말라버린 것이 아니라

마음이 말라버린 것이었음을.





눈물을 사고 팔 수 있는

이 시대가 너무 슬프다.


눈물을 사는 이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이 시대가 너무 슬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물을 흘리면 패배자로 낙인찍히는

이 시대가 너무 슬프다.


과연 그때의 내가

당신의 마음을 안아주었다면

당신은 눈물을 사지 않아도 되었을까.


마음껏 울 수 있었을까.

마음껏 웃을 수 있었을까.





라넌큘러스 한 송이를 선물 받았다.


선물해준 이의 예쁜 마음을

오래도록 간직하고 아껴두고 싶어

꽃을 말리다가.


눈물이 꽃과 닮지 않음에 슬펐다.


꽃은 마르면

예쁜 마음이 오래도록 간직되는데.


왜 눈물은 마르면

아픈 마음이 오래도록 간직되는 것일까.


똑같이 '마르다'라는 단어를 사용하는데

이렇게 뜻이 다를 수가 있는 것일까.


이렇게 슬플 수가 있는 것일까.





하지만

말린 꽃도 시간이 흐르자 잎이

하나둘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결국 세상에 영원한 건 없었다.


그리고

안도했다.


눈물이 말라

오래도록 간직된 내 아픈 마음도

언젠가는 저 말린 꽃잎처럼 떨어지고 말 테니까.


결국 눈물은 꽃을 닮은 것이니까.





그러니 이젠

눈물을 사지 맙시다.


눈물을 돈 주고 사기엔

이미 충분히 가난한 세상인데.


다시 눈물을 흘려야죠.

진짜 눈물을 흘려야죠.


예전처럼 주르륵.

원 없이 후련하게.


같이 울어요.

같이 웃어요.


눈물을 사지 마요.







To. 나의 메마름

갈 곳을 잃었습니다.

저 화살표를 따라가면 될 텐데
저 화살표를 믿지 못합니다.

어떻게 할까요.

나는 결국 
메마름을 이기진 못할 것입니다.
메마름을 이기기 위해 울 것입니다.

한없이 울 것입니다.
한없이 갈 것입니다.

메마른 당신처럼.
메마른 매일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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