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로이어'로 송무 업무 해보기
법률 상담, '사람'만 할 수 있다?
지난해 국내 굴지의 대형 로펌 '대륙아주'는 AI 기술을 활용한 무료 법률 상담 챗봇 'AI 대륙아주'를 선보였습니다. 누구나 쉽게 법률 정보를 얻을 수 있도록 한다는 취지였죠. 하지만 대한변호사협회는 'AI 대륙아주'가 변호사법을 위반했다며 징계 절차를 개시하겠다고 했습니다.
핵심 쟁점은 AI를 활용한 법률 자문 등의 조력을 어디까지 허용할 수 있는가에 있습니다. 현행 변호사법 제34조 5항에 "변호사가 아닌 자는 변호사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업무를 통하여 보수나 그 밖의 이익을 분배받아서는 아니 된다"라고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대한변협 측이 법률 상담을 해 주는 AI 챗봇이 변호사 고유의 업무를 침해했다는 판단을 내린 셈입니다.
대륙아주 측은 해당 챗봇에 대해 "정보를 전달하는 도구일 뿐”이라고 소명했지만, 논란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입니다. 이 사건은 AI 기술이 도입됐을 때 직역 내에서 발생할 수 있는 갈등의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더불어 변호사와 같은 전문직이라도 AI의 발전에 따른 위협에서 더 이상 소위 '성역'이 될 수는 없는 시대가 왔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기도 합니다.
변호사는 흔히 '사람을 설득하는 직업'으로 여겨집니다. 언어로 갈등을 조율하고 정의를 세우는 일. 과연 이런 업무를 AI가 넘볼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잡다한 Ai 연구소는 현직 5년 차 변호사로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서치원 변호사와 함께 답을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AI는 변호사의 손과 머리를 어디까지 대신할 수 있을까요?
AI의 대체 가능성을 따지기에 앞서, 변호사가 수행하는 여러 업무 중 어떤 부분이 실질적으로 영향을 받을 수 있을지, 범위를 어느 정도 좁힐 필요가 있을 겁니다. 변호사의 업무를 크게 '송무'와 '자문' 2가지로 나누어 살펴보겠습니다. '송무'는 각종 민형사 사건에서 의뢰인을 대신해 소송에 필요한 서면을 작성하고 재판에 출석하는 일입니다. 흔히 '변호사' 하면 떠올리는 장면이죠. '자문'은 계약서 작성이나 법률적 해석에 대한 의견서를 제공하는 업무로, 사인 간 분쟁을 사전에 예방하는 데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법조계에서는 조심스럽지만 점차 활발하게 AI를 활용하는 추세입니다. 지난달(2025.05.19) 톰슨 로이터가 발표한 '2025 전문직 분야의 생성형 AI 활용 보고서'에 따르면, 생성형 AI의 사용률은 2024년 14%에서 올해 26%로 크게 증가했습니다. 특히 법무법인 종사자 중 45%가 이미 생성형 AI를 활용하고 있거나, 1년 내 중요한 업무에 도입할 계획이라고 답했습니다.
국내 대형 로펌들도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습니다. 법무법인 율촌과 세종 등은 클라우드 기반의 자체 AI 시스템을 도입해 실무에 활용 중입니다. 이렇게 자체 시스템을 운영하는 회사도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변호사 자격 인증을 받은 회원에 한해 서비스를 제공하는 '슈퍼로이어'나 '엘박스' 등 법률적인 부문에 특화된 AI를 사용한다고 합니다. 잡다한 Ai 연구소는 흔히 접할 수 있는 챗GPT를, 서 변호사는 실무자들이 많이 사용하는 '슈퍼로이어'를 활용해 보기로 했습니다.
서 변호사는 가상의 사건을 꾸며내, 아래와 같이 실제로 통용되는 형태의 고소장을 만들었습니다.
사건의 핵심은 이렇습니다.
홍길동은 ‘잡다한 Ai 연구소’의 재무담당 임원이었다. 홍길동은 연구소를 퇴사하며 공금 30만원을 후임자에게 인수인계하지 않고 개인적으로 활용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연구소장이 법무법인을 통해 홍길동을 상대로 고소장을 제출했다. 홍길동은 횡령 금액의 절반을 갚았지만, 처벌불원서 작성 등 피해자와 완전한 합의에는 이르지 못한 상황.
먼저 고소장을 파일 그대로 슈퍼로이어에 입력하고, 사실관계 정리 및 법리 검토를 요청했더니, 고소장에 기재된 내용을 구조화해서 깔끔하게 정리해 줬습니다. 횡령죄의 구성요건을 조목조목 짚으며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서 변호사는 실제 고소장에 기재된 사실관계와 슈퍼로이어가 정리한 내용이 대체로 정확하게 일치한다고 평가했습니다.
제출된 증거(제1 호증~제5 호증)들에 대해서도 일목요연하게 정리했습니다. 특히 '공정증서와 사죄문'이 피고소인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을 지적한 부분이 눈에 띄었는데, AI가 단순히 '분석'만 하는 것이 아니라, 증거가 갖는 가치에 대한 '판단'까지 해냈기 때문입니다.
이후 홍길동 입장에서 필요한 방어 전략을 요청해 봤습니다. AI는 고소인 측이 증거로 제출한 장부의 정확성을 다툴 여지, 공정증서 작성 경위 등을 기반으로 꽤나 현실적인 대응 방안을 제시했습니다. 특히 홍길동이 횡령 금액 반환을 통해 형량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서 변호사는 이렇게 소송을 전개하게 될 경우 일종의 '전략'으로서 고려해 봄직한 답변을 한 점이 인상 깊었다고 했습니다. 또 일부러 피고소인(홍길동)에게 불리한 요소를 고소장 곳곳에 삽입해 놨는데, AI가 이를 나름대로 잘 포착했다는 점을 높이 평가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의견서 작성을 요청해 봤습니다. 홍길동이 운영하는 회사의 경영이 악화되고 있어 형편이 어렵다는 점, 횡령금액 전액을 꼭 변제하겠다는 약속을 중심으로 선처를 호소하는 내용을 의견서에 담도록 주문했습니다. 서면 의견서에 포함되어야 하는 내용 등 구체적인 요청을 한 것입니다.
답변을 살펴보니 피고소인이 범행을 인정하고 사죄문을 작성한 경위, 횡령금액 일부를 반환한 사실 등을 깔끔하게 정리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별도로 지시하지 않았는데도, 홍길동의 구체적인 변제 계획을 작성해 제출했다는 점입니다. 실제로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횡령 및 배임 범죄의 양형 기준에서 '피해 회복'을 대표적인 감경 요소로 꼽고 있습니다. 즉, AI가 홍길동이 횡령한 금액을 어떻게 갚을지 계획을 덧붙임으로서 최대한 형량을 줄일 수 있도록 도와준 것이죠!
서 변호사는 슈퍼로이어가 작성한 의견서 자체가 이른바 '완성형'은 아니라고 했습니다. 변호인이 작성한 서면으로 보기에는 문장의 구조나 법률 요건 관련 서술 등에 부족한 면이 많기 때문입니다. 통상의 변호인들이 이와 같은 상황에서 제안할 만한 조언이라고 하기엔 현실성도 부족했습니다. 서 변호사는 "만약 이 횡령 사건이 실제 상황이라면, 소송 대응과 별개로 합의를 권했을 가능성이 크다"라고 했습니다
다만 소송의 당사자(홍길동)가 변호인 혹은 수사기관에 일차적으로 제출할 만한 서면 답변서로서는 꽤 훌륭하다고 했습니다. 간단한 형사 사건이나 초기 대응 수준에 한해서라면, AI가 충분히 괜찮은 조력자가 될 수 있다는 거죠. 하지만 법리적 쟁점이 복잡한 사건일수록 이처럼 AI의 도움에만 의존하기엔 자잘한 실수가 많을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사실 이번에 슈퍼로이어가 내놓은 답변에도 아주 치명적인 실수가 있었습니다. 답변서 내용 중 대법원 판례를 인용하며 홍길동이 주장해봄직한 감경 사유를 제시했는데요. 서 변호사가 답변서에 언급된 사건을 실제로 검색해 봤습니다. 그런데! 해당 판례는 형량 줄이기에 도움이 안 되는 전혀 엉뚱한 것이었습니다. (참고: 해당 판례를 검색해 보니, '피고인이 운영하는 회사가 절박한 상황에 있었다. 그러나 피고인이 합법적인 방법으로 피해자 회사들과 갈등을 해결하려고 시도하지 않고 (...) 위법성이 조각되지 않는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아예 없는 이야기를 지어낸 것은 아니니, 'AI 환각(hallucination)'이라고까지 보긴 어려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서면을 받은 사람이 해당 판례를 직접 검색해서 확인하면 금방 들통날 치명적인 실수입니다. 저거 믿고 이 판례를 그대로 인용했다면...? 괘씸죄로 가중 처벌받지는 않았을지!
'잡다(Job-多)한 Ai 연구소'는 삼성언론재단의 지원을 받아 운영되고 있는 연구모임입니다. JTBC 이수진, 하혜빈 기자와 법률신문 김지현 기자 등 3~8년 차 주니어 기자 8명이 함께하고 있습니다. 매달 1개의 직업을 선정해 챗GPT나 퍼플렉시티 등, 우리가 쉽게 접할 수 있는 Ai가 그 직업을 얼마나, 어디까지 대체할 수 있는지 점검해 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