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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지개 Sep 18. 2016

한 여름의 캄보디아 이야기

3.나 나쁜 사람아니야

익숙한듯 안익숙한 풍경


백인 아저씨와 같은 침대에 나란히 누워 여섯시간을 달려 프놈펜에 도착했다. 눈을 부비며 버스에서 내렸을때 마주한 광경은 흡사 지옥같았다. 버스입구를 둘러싸고 있는 툭툭기사들 나를 프렌드라 부르며 돈흥정을 시작했다.

무엇보다 시급한 건 반쯤 가출한 내 정신줄을 부여잡는거였고 배낭을 받아들고 아무곳이나 앉아 멍해진 정신을 붙잡아 두고 있었다. 버스정류장은 아닌듯 보이는 곳이어서 일단 정류장으로 가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툭툭기사에게 소리야버스정류장으로 가달라고 했더니 터무니 없는 가격을 불르더라 없는 정신에 흥정하느라 힘들었다.

소리야 버스정류장에 내려주며 그는 나에게 1달러를 더 달라고 했는데 왜일까 괘씸한 맘에 들어 계속 짜증을 냈다. 프놈펜에 대한 안좋은 인상은 아마 이때부터 인것 같다.

버스 시간표를 보다 난 충동적으로 캄폿행 버스티켓을 샀다. 한장의 사진이 생각이 나 여행계획을 급 변경한것인데 빠른 변경과 전개에 나자신도 당혹스러웠다 혼자 였기에 가능한거지.

첫차를 타려면 두시간을 대기해야하는 상황이었고

새벽이어서 슈퍼는 물론 모든가게들이 불이 꺼진채로 벤치에만 몇명의 사람이 앉아있었다

주위를 둘러보는 데 외국인이라고는 나밖에 없었다. 웨스턴이던 아시안이든 아프리칸이든 그냥 외국인은 나밖에 없었다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져 덩달아 나도 눈치가 보였다 괜시리 내 베낭을 꼭 부여잡고 있었는데 눈길들을 참을 수 없어, 주위나 둘러보자 하고 몇블럭 걸어나갔다가 너무 무서워서 다시 돌아왔다. 푸른새벽거리는 강아지조차 괴물로 보이게 만든다.

다시 벤치에 앉았다. 현지인 아줌마가 말을 걸어왔지만 영어인지 캄보디아어인지 도저히 알아들을수가 없어서 멋쩍은 웃음만 지어보였다. 배가 고파서 슈퍼라도 문을 열면 좋겠다고 생각 하던 때 마침 슈퍼앞의 샌드위치가게에서 오픈준비를 하는게 보였다.현지 운전사들이 샌드위치를 사먹길래 나도 하나 사먹었다.기사님들 입맛은 믿음직해 하는 기사식당 리스펙트 마인드로 말이다.

하지만 맛은 끔찍했다.

오해는 하지마시길 동남아 음식못먹는 어린이의 맛표현일뿐이니까.

배가고파 하나를 통째로 사버렸지만 반의반도 채 먹지 못했다.

배에서 나는 꼬르륵소리와 사람들의 시선 심지어 구걸하는 사람까지 내 옆에서 떠나질 않아 우울함의 극치였다.

드디어 차 시간이 되어 버스를 탔다. 자리에 앉았는데 버스 안 풍경은 어디서 많이 본 풍경이었다. 촌시러운 커튼문양

이건 분명 내가 수학여행을 갈 때마다 보았던 무늬가 틀림없었다.

반가운 마음에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한국에서 사용하던 낡은 버스들이 캄보디아로 수출된다고 했다.

커튼 덕분에 버스안은 편안하게 느껴졌다.

사람들이 모두 마스크를 하고 있었다. 버스가 달리기 시작하면 흙먼지가 잔뜩 들어온다는 블로그글이 생각나 옆사람에게 어디서 구했냐고 묻자 공짜로 마스크를 두개나 구해다주었다. 캄보디아어로 고맙다는 말을 하고싶었지만, 그때서야 내가 캄보디아 어를 하나도 모른다는 걸 깨달았다.

어느 여행지를 가던 기본적인 인삿말정도는 현지어로 하려고 하는 편인데 한국에서 여행객이 감사합니다 라고 말하는 걸 듣는다면 땡큐보단 더욱 유쾌할거 같은 상상에서 비롯된 것이다.

캄보디아 어로 감사합니다는 어 꾼

그 소년에게 어 꾼 하고 인사하고 나는 또다시 깊은 잠속으로 떠났다.


나 나쁜사람 아니야


캄폿에서도 규모가 적긴했지만 역시나 지옥같은 풍경은 반복되었다. 버스입구를 둘러싼 툭툭기사들 나는 한번 더 질색을 하며 그 무리를 가르고 거리를 걸었다.

뒤에서 젊은 툭툭기사가 쫒아왔다. 나에게 자신은 나쁜사람이 아니며 너와 친구가 되고 싶다. 그리고 방이 필요하다면 소개시켜줄수 있다고 말했고 그렇게 난 8$짜리 싱글룸이란 단어에 꽂혀 툭툭에 올라탔다. 대화하다 보니 그는 꽤 괜찮은 사람처럼 보였다.이름은 세리

내가 여태껏 말했던 캄보디아인중 가장 뛰어난 영어실력을 가지고 있었고,매너도 좋았다. 여태껏 만나왔던 사람들 처럼 끈질기지도 않았다.

나를 게스트하우스앞에 내려 주며 세리는 오늘 계획을 물었고 없다고 했더니 캄폿을 구경시켜주겠다고 했다. 나는 흔쾌히 오케이를 했고,두시간 후 내 숙소앞에서 만나기로 하고 난 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 급했던 샤워를 했다.

샤워를 다 끝내고 너무 배가고파 급 친구가 된 세리와 만나기전 혼자 끼니를 때우려고 나왔다.

그렇게 숙소밖을 나섰을때 눈이 시원해지는 거리 풍경에 난 감탄사를 멈출수가 없었다.

지금까지 지나왔던 캄보디아와는 너무다른 풍경이었다. 깨끗한 거리 맑은 하늘 한적한 가게들까지

시하누크빌에 가지 않은게 후회되지 않았다.

그렇게 캄폿은 나에게 여행사상 가장 좋은 첫인상의 지방이 되었다. 유러피안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어서인지 거리곳곳이 유럽같았다. 아침에 나가면 벨기에 아주머니 거리에서 빵을 팔고있기도 하며, 피자가게 아저씨는 프랑스아저씨다. 이국적인 캄보디아에서 한번더 이국적임을 느끼는 신기한 경험이었다.

글을 적는 지금 이 날 아침산책을 나섰을때 나눴던 정겨운 눈인사들이 떠오른다.  

캄폿은 다시 가고싶은 곳이기도 하지만 다시 가야만 하는 곳이기도 하다.

밥먹으러 거리를 나섰을때 세리를 우연히 만났다. 배고파서 밥을 먹으려 한다니까 자기가 소개해주겠다고 했다.오토바이 뒤에 타 첨 보는 풍경속을 달렸다.

그러다 으슥한 골목길로 들어섰을땐 경계심이 생기기도 했지만 맛있는 밥과 함께 경계심은 눈녹듯 사라졌다.

오므라이스처럼 보이기도 하고 익숙한 생김새에 일단 거부감은 없었다.

세리가 먹는 방법을 알려줬다. 너무 맛있어서 깜짝 놀랐다 내일도 이 음식을 먹어야겠는 생각이 들어 요리이름을 물었지만 발음하기가 힘든 이름이었다.

먹는 방법은 흡싸 우리나라의 쌈과 같았다. 난생 처음 손을 이용하여 음식을 먹었다.

레몬담긴 손씻는 물도 주는 나름의 보급형 캄보디안 전통 레스토랑 느낌

밥을 먹은뒤

커피를 좋아하냐는 물음에 of course를 외쳤다. 커피는 하루에 한잔은 꼭 마셔야한다.

세리는 자기만 믿으라며 오토바이 뒷자석에 나를 앉혔다. 그리고 도착한 곳은 캄보디아 남자 득실득실한 여자한명없는 그런 곳이었다. 내가 오토바이에서 내리자 부담스러운 시선이 쏟아졌다. 세리는 캄보디아 어로 대화를 나눴다.뭐라 한건지 알수 없었지만 딱히 상관은 없었다.

커피가 나왔는데 굉장히 달았다. 세리는 캄보디안 스타일커피라고 하더라 현지스타일이라니 체험겸 군말없이 먹었다.무엇보다 맛이 괜찮았다.

그 후 세리가 일하는 바 구경도 했다. 세리는 바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하고 가끔 밴드공연을 한다고 했다.

그리고 툭툭은 취미활동? 세리는 다음날 이곳에서 파티가 열린다고 나를 초대했다.

계획도 없었기에 기꺼이 참석하겠다고 했다. 바가 있을거 같지 않은곳에 바가 있어 신기하다고 생각했었는데 다음날 선셋크루즈를 타고 지나가면서 강위에서 본 이곳의 모습은 뒷골목에서 본 그림과는 전혀 달랐고 반짝반짝거렸다.


틀리지 않았어


그후 세리가 태워주는 오토바이로 염전과 숨겨진 선셋 포인트를 갔었다. 캄폿이 관광객이 별로 없는 건지 아님 없는 곳들만 찾아간건진 몰라도 가는 곳 마다 조용해서 너무 좋았다.

세리와 깊은 대화를 나눴다 사랑에 관한 이야기도 했는데

나의 말을 수용해주는 세리의 태도가 고마웠다. 세리의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헤어진지 얼마안되어 슬퍼보였다. 8년이나 사귄 여자친구와 헤어진 기분은 어떨까  나는 상상할수도 없다.

세리는 나에게 틀린게 아니라고 말해줬다. 언제나 틀렸단 소리만 들었던 나로선 정말 고마웠고

가끔 세리의 말이 한국에서도 생각이 난다.

그렇게 세리는 돈한푼 받지 않고 나를 위해 캄폿을 그리고 자신을 보여주었다.

타지에서 여행지에서 누군가를 믿는다는게 또 나를 보여준다는게 얼마나 힘든지 아는 나로선

세리가 아마 처음으로 마음을 연 외국인이지 않을까 한다.  내일을 기약하며 숙소로 돌아와 잠시쉬고

내일을 위한 전투식량을 먹었다.캄폿이 좋아서 그런것일까 볶음밥과 나란히 놓인 파인애플 주스는 더 달게만 느껴졌다. 내일 무슨일을 할지 부담없이 강을 보며 생각했던 시간. 그 시간과 현재의 나를 비교하다보면 너무나도 비참하게 느껴지지만 그 때의 고민도 오늘의 고민도 다 지나간다.

가볍고 무거운건 내려놓으면 없어지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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