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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지개 Mar 26. 2017

한 여름의 캄보디아 이야기

8.are you korean?

값싼 게스트하우스에서 도망치듯 나와 예약해둔 호텔에 짐을 맡기러 걸어가는 길 문득 지난 내 여정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씨엠립은 일주일 전과 다를 것 없는 풍경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여전히 하천의 물은 진흙탕이었고 단발성으로 소나기가 쏟아졌다. 문득 얼마 남지 않은 나의 시간이 원망스러웠다.

그렇게 지난밤 '여기에 질렸다'를 외쳤으면서 말이다.

어쩜 이렇게도 잔인할까 겪을 때엔 죽을 것같이 힘들다가도 금세 잊어버리는 망각이란 신이 인간에게 주신 선물이라기엔 조금은 잔인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오늘은 미뤄두었던 앙코르와트를 보러 가기로 정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각각의 사원의 이름조차 명확히 기억하기 쉽지 않기에 그래서 많이 아쉽다고 생각한다. 다시 한번 찾아가 사원마다의 역사와 이야기를 이해하고 싶다. 지금 뿐만이 아니라 사원 곳곳 중국어와 영어로 열심히 해설하던 해설사의 목소리를 들을 당시에 했던 후회이기도 하다. 누군가 앙코르와트를 가겠다고 한다면 꼭 공부하고 갔으면 좋겠다고 말해주고 싶다.

나의 경우엔 충분하진 않았지만 2회 분량 정도의 다큐멘터리라도 시청하고 갔기에 정말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호텔에 짐을 맡긴 뒤 비어 가는 내 지갑을 보며 흠칫했다. 대충 알아본 바로는 툭툭으로 둘러보는 스몰 투어와 빅 투어 모두 나에게는 타격이 큰 비용이었고 고민하던 찰나 블로그에서 자전거를 빌릴 수 있다는 글을 보고선 무턱대고 자전거를 빌렸다. 돈도 아낄 수 있고 자유롭게 사원을 둘러본다는 것에 설레었다. 하지만 이건 내가 얼마나 정보가 없었나를 보여주는 사례이다. 앙코르왓트 사원은 자전거로 둘러볼 수 없는 규모였다.

앙코르와트는 수많은 사원이 밀집되어있는 고대 캄보디아의 커다란 도시이다. 도시를 자전거로 4일 동안 둘러본다는 계획은 얼마나 무식한 계획이었던지...

심지어 표를 사러 가는 길 조차 순탄치 않은 여정이었다.

구글 맵을 따라 도착한 구 매표소는 이미 폐쇄된 상태였고 신 매표소는 구 매표소와 거리가 먼 곳이었다. 내가 이곳에 온 거리보다 더한 거리를 가야 한다고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했다. 망연자실하고 있는데 옆에서 나를 지켜보던 툭툭 기사가 나를 놀려댔다. '안 그래도 짜증 나 죽겠는데' 대꾸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몇 분 후 결국 나는 그 툭툭이에 올라 매표소로 향했다. 지금 생각하니 너무 웃기다ㅋㅋ

하지만 오늘은 꼭 앙코르와트를 봐야 했다. 내 일정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신 매표소는 꽤나 근사한 건물양식이었다 캠으로 찍은 못난 내 사진이 인쇄된 티켓을 보며 일종의 뿌듯함 같은 것이 느꼈다.

드디어 앙코르와트에 왔구나

티켓을 사고 다시 내 자전거가 있는 구 매표소로 돌아왔다.

자전거를

난 커다란 사원들이 나를 압도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저 평화로운 풍경이 나를 반기고 있었다 시민공원 느낌이랄까 곳곳에 캄보디아의 연인들이 피크닉을 나와 풍경을 만들어 주고 있었다.

곳곳엔 음료와 과일 등을 팔고 있었다. 역사와 먼 너무나 가깝고 정겨운 분위기에 새로운 도시에 온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매표소에서 챙겨 왔던 지도를 펼쳐 들고 가고 싶은 곳을 하나 찍어 그곳으로 향했다.

하지만 입구의 정겨운 풍경을 벗어나 사원으로 가까이 가면 갈수록 고대 앙코르제국의 근사한 문화양식들이 눈에 들어왔다. 역사 속에 들어온 기분이었다.

앙코르왓에서는 항상 표를 가지고 다녀야 한다. 사원 앞에서 항상 그 표를 검사하기 때문인데

무작정 자전거를 타다가 들어간 조그마한 사원 앞에서 쏘힙이라는 친구를 만났다. 그는 매표소에서 알바를 하고 있는 학생이었는데 내 얼굴을 보자마자 "Are you korean?"이라고 물어왔다. 이때 몰골이 말이 아니어서 "yes.."라고 답하고선 사 원 안으로 도망가듯 뛰어갔다. 하지만 사원을 둘러보고 나오는 길에 쏘힙이 놀란 얼굴을 하고선 "너 자전거 타고 온 거야?"하고 물었다. 이때 역시 난 앙코르왓이 그렇게 큰 곳인지 몰랐다. 몇몇의 툭툭 기사가 나에게 "너 자전거로 다니면 정말 힘들걸?"이라고 말해도 장사인 줄 알았던 나였다. 근데 쏘힙까지 나에게 "너 자전거로 다 못 봐"라고 했을 때 '이거 장난이 아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쏘힙이 서투른 한국말을 하며 나에게 자꾸 말을 걸어왔다. 사실 한국말 하는 현지인을 제일 조심하라고는 했지만, 모르겠다. 여행을 시작하면 너무 오픈마인드가 되어버리는가 보다 그와 대화를 나누다 그가 나에게 "네가 원하면 내일 내가 내 오토바이로 널 안내해줄게"하는 거다. 나이도 또래였고 대화가 통하는 친구였기에 난 흔쾌히 알겠다고 했다.

숙소 이름을 알려주고 쏘힙이 아침에 나를 데리러 오기로 했다. 여담이지만 쏘힙은 지금 가이드 사업 중이다.

정말 이상한 기분이 든다. 어쩌면 내가 그의 첫 번째 손님일지도 모르는 거니까!

이때 내가 불신이 가득한 사람이었다면 어땠을까 하고 생각한다. 항상 마음을 열어둔다는 건 엄청난 리스크가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닫아두는 것 역시 어떠한 면에서 굉장한 피해를 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난 언제나 열린쪽이어서 위험부담이 크지만 아직까진 커다란 사건이 없이 좋은 인연들을 많이 많이 만났다. 쏘힙은 아직까지도 종종 페이스북으로 연락한다. 나보다 한 살 어린 친구에다 나보단 열악한 환경 속에서 공부를 하지만 항상 긍정적인 모습으로 work hard play hard 하는 사람이다. 얼마 전에는 친구들과 이상한 뮤직비디오를 만들었더라ㅋㅋ 재밌는 친구다. 먼저 나에게 "how are you?"하고 물어오는데 그가 나를 가끔이라도 생각해준다는 게 고맙다. 언제나 난 "너 보러 캄보디아 또 갈 거야!"하고 말하지만 어쩌면 이제 그가 바빠 나를 만나지 못할지도 모르겠다

사원 내부에서 밖을 바라보는 시야는 얼마나 신비로운지 설명할 수가 없을 정도다.

앙코르왓에는 원숭이가 굉장히 많다고 들었지만 막상 와서 겪어보니 내 눈에는 원숭이보단 나비가 눈에 띄었다.

사원을 걷다 보면 곳곳에 나비들이 앉아있다. 그게 더 이곳을 더 신비롭게 보이게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렸을 적 내가 들은 나비에 관한 전설로는 흰나비는 죽은 존재에게로 날아간다고 했다.

어쩌면 앙코르왓도 죽은(?) 잠들은 제국이니 내가 생각하는 나비의 존재와 통하는 부분이 없지 않아있으니 말이다. 날아다니는 나비들을 보며 번성했을 그 옛날의 이곳의 풍경을 상상했다.

사원 곳곳에는 돌에 새겨진 그림들이 정말 많았다. 지식이 없는 나로선 그저 장식이겠거니 하고 말았지만

각각에 어떠한 의미가 깃들여져 있을 것을 생각하니 공부하고 가지 않은 나를 조금 원망했었다.

누군가 나에게 여행을 하기 전 꼭 공부를 하고 가라고 했을 때엔 보나 마나 잔소리겠거니 하고 무시해버린 적이 있다. 하지만 아무리 내가 싫어하는 사람이었을지라도 나에게 도움이 되는 말이었단 걸 앙코르왓을 둘러보며 깨달았다.

프놈펜에서 헤어졌던 독일 친구를 우연히 거리에서 만났다! 숙소가 정말 가까웠던 거다. 짧게 인사를 나누고선 저녁을 함께 하기로 했다. 펍 스트리트에서 만나 아무 노점에 앉아 음식을 시켰다.

난 사실 현지식에 굉장히 약해 볶음밥 빼곤 먹지 않지만 독일 친구가 맛있는 음식이라며 추천해서 용기를 내어보았다. 꽤 괜찮았다 내가 생각했던 이상한 맛이 아니라 다행이었다.

친구와 함께 철판 아이스크림을 사들고선 거리를 거닐었다.

짧은 영어로 대화를 나누며 그녀는 나에게 "넌 정말 사랑스러운 아이야"하고 말해주었는데

간편하게 친구라고 표현했지만 그녀는 31살로 언니와 같은 존재인데 언니로 부터 그런말을 들으니 이쁨받는거 같은 느낌이었다. 이때 내가 적어둔 일기를 읽어보면 내가 사랑스럽다는 얘기를 언제 들오보겠냐며 행복해 보이는 투로 쓰여져 있다. 하지만 지금 이때의 사진들을 열어보면 어쩌면 난 사랑스러운 존재였었을지도 모르겠다.

사진하나하나 찡그런 사진이 하나도 없다. 몰골이 추할지라도 항상 웃고 있는거다. 이 사진 역시 입술이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아팠을 당시인데도 너무 행복해 보이는거다. 나역시도 내 사진들을 보며 '나 정말 행복했구나'하며 감탄하곤 한다. 그리운 나날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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