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다소 선정적인 내용을 포함합니다.)
'사랑'은 우리에게 왜 존재하는가?
우리가 ‘사랑’이라 부르는 남녀간 정신적∙낭만적인 감정 및 관계는 왜 존재하고 인류역사에서 어떻게 전개가 되어왔을까? 나는 이 글에서 이를 인류학적 관점으로 풀어보려 한다. 몇몇 인류학자 및 진화심리학자의 주장을 토대로 한 몇몇의 가능성들을 소개하는 것 뿐이니 너무 비판적이거나 심각하게는 읽지 않아 주었으면 한다.
이 글을 통해 내가 전달하는 하나의 가설은, 남녀간 정신적∙낭만적 사랑은 초기인류 때부터 존재해온 어머니와 자식간 정서적 유대 그리고 나중에 발달한 것으로 보이는 아버지와 자식간 정서적 유대와 분명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전달하는 학자들의 주장들에 문제점이 있고 입증자료가 불충분한 부분도 존재한다. 주장하는 글이 아니라 하나의 가능성 전달의 글로 봐주었으면 좋겠다.
시카고대학 행동생물학자 마에스트리피에리 교수는 인류에게 ‘사랑’이란 생존과 번식을 위해 진화론적으로 발달시켜온 감정이라 말한다. 그에 따르면 수많은 ‘감정들’의 주기능 중에 하나는 동기부여이다. 화상의 고통을 통해 느낀 두려운 감정은 불에 대한 경계를, 가시에 찔린 고통을 통해 느낀 모서리 공포증과 같은 감정은 유사 물체로 인한 부상 방지를 학습하게 도와준다. 이와 비슷한 메카니즘으로, 성욕과 오르가즘이라는 감정은 인류를 비롯한 생명체들이 성교에 적극적이 되도록 하여 자손 생산 활성화로 이어지는 동기부여 역활을 해온 것이다(Maestripieri 2012).
‘사랑’과 인류역사의 복잡다단한 여정
인류는 집단사회의 규모를 키워오며 오늘에 이르기까지 이성적 판단에 근거하여 수많은 법, 도덕, 절제규범을 만들어왔다. 하지만 ‘생존’과 ‘번식’에 관한 본능∙감정은 너무 강하고 중요하기 때문에 수백만년의 역사에서 이성과 충돌하며 갖가지 사건들을 일으켜왔다. 오늘날 우리가 ‘사랑’이라 부르는 정신적∙낭만적 감정은 이러한 생존과 번식의 진화론적 토대 위에서 인류역사와 복잡다단한 여정을 함께해 왔다고 볼 수 있겠다.
암컷과 수컷이 짝짓기를 하여 자손을 생산하는 것은 거의 모든 생명체들이 하는 행위이다. 다른 생명체들에게 인류만큼의 정신적∙낭만적 사랑이 없거나 부족하다 단언할 수는 없겠지만, 인간은 왜 정신적 사랑을 하는걸까? 무슨 도움이 되길래 존재하는 것이며 왜 이리 복잡한 작용을 하며 우리를 혼란스럽게 해온걸까?
영장류(primates)의 암수관계 그리고 가족∙사회관계에서 그 실마리를 찾아보자. 생물학적 인류학(biological anthropology)과 인류학적 영장류학(anthropological primatology) 연구의 주요 방법론 중 하나는, 인간 외 영장류(non-human primates)의 집단 내 행동 관찰을 통해 인류의 사회적 행위∙관계의 전개 역사를 추론하는 것이다. 그 중에 암컷∙수컷이 모두 친자식 혹은 집단 내 유아 양육에 참여하는지(biparental care), 한다면 아비 혹은 수컷의 참여 정도가 얼마나 되는지는 주요 연구테마 중 하나이다. 영장류 사회에서 아비 혹은 수컷의 양육참여 비중은 그 사례가 꽤 드문 다른 포유류에 비해 높게 관찰된다.
만약 어떠한 특정 영장류 사회에서, 수컷이 여러 암컷과 교미할 수 없는 환경이면, 암수가 서로 하나의 번식 파트너만 보유하는 ‘사회적 일자 일웅(一雌一雄, social monogamy)’이 나타난다. 이러한 상황에서 본인의 파트너 혹은 다른 집단 멤버가 본인 새끼를 죽이는(infanticide) 위험을 줄이기 위해 부모의 협력적인 유아 양육이 발달해 왔다는 가설이 있다(Storey and Ziegler 2016).
포유류 중에 서로 하나의 번식 파트너만 보유하는, 일자 일웅을 (주로) 유지하는 종은 3% 정도 밖에 안된다(늑대, 여우류 중 일부, 유라시안 비버, 수달, 대초원 들쥐, 박쥐류 중 일부, 검독수리, 코뿔새, 붉은등 도룡뇽 등). 영장류 중에서는 아자래 올빼미원숭이, 인드리원숭이, 티티원숭이, 흰얼굴 사키원숭이 등에게서 일자 일웅 행태가 관찰된다. 이들 종들도 상황에 따라 '짝외교미', '이혼', 다수 파트너와 교미를 하기도 한다.
영장류 내에서 유인원을 살펴보면, 침팬지와 보노보(bonobo)는 그 대부분이 집단 내 그리고 집단 외 여러 암수 구성원들과 난잡한 성교 및 교미활동을 하고, 고릴라는 일부다처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긴팔원숭이(gibbon)는 유인원 중 유일하게 일부일처 행태를 주로 나타낸다.
(*태국에서의 흰손긴팔원숭이 연구에 따르면 이들도 때때로 짝외교미, 이혼, 파트너맞바꿈, 일처다부 행태를 취하기도 한다; Sommer and Reichard 2000)
인류와 가장 가까운 친척으로 꼽히는 침팬지와 보노보는 서로 꽤 다른 습성을 보인다. 침팬지는 상당히 폭력적인 수컷들이 집단을 압도적으로 지배한다. 몸집이 큰 수컷들은 갱단을 이뤄 다른 집단과 죽고죽이는 싸움을 계속하는데, 이 과정에서 유아 침팬지는 잡아먹거나 죽이며 여러 암컷 침팬지들을 발견하는대로 빼앗고 관계를 가진다.
보노보는 여성중심의 모계사회 성격을 띄며 비폭력적이고 구성원간 협력성과 평등관계가 높다. 이들은 ‘섹스를 사랑하는 난봉꾼 영장류’로 불릴만큼 집단 내외 여러 마리와 자주 성행위를 하며 이중 약 75%가 번식과 상관없는 경우이다. 동성 간 혹은 양성 간 자유롭게 성교 및 애정행위를 하는 보노보 구성원이 이성 간에만 관계를 가지는 구성원보다 압도적으로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난다. 이들의 섹스는 단순히 즐기기만 하는 목적이 아니라 사회 내 폭력 및 긴장을 예방∙완화하고 구성원 관계 성립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De Waal 2006). 성행위가 번식 이외의 사회적 기능을 수행한다는 점이 우리 인간과 닮아있다.
그럼 우리 인류의 경우는 어떠할까? 오늘날 대다수의 인류 사회에서 아버지는 친자식의 육체∙감성∙인지∙사회적 성장에 적극 참여한다. 그리고 형제, 할아버지, 삼촌, 새아빠, 이웃아저씨, 남성 유아교사 및 간호사 등이 한 아이의 성장에 적극 도움을 주기도 한다. 한 인류학적 가설에 따르면, 수백만년전 초기인류는 선택적인 여성∙남성 간에만 교감∙성교∙번식을 하는 것이 아니라, 침팬지∙보노보와 같이 난잡 성교∙번식을 하였으며 남성이 아이 성장에 전혀 기여를 안하였다. 이 가설에 따르면 현대인류와 같이 정해진 여성∙남성 간에만 번식 및 가족구성을 하고(일부일처, 일부다처, 일처다부, 다부다처 모두 포함) 남녀가 모두 양육에 적극 참여하는 사회습성은 몇 만년전 이후부터에서야 성립되기 시작했다. 이는 두뇌용적, 인지체계, 사용도구, 식문화, 집단관계, 거주환경 등의 변화와 맞물려 나타난 현상이었다.
그럼 ‘정신적∙낭만적 사랑’은 이러한 변화들과 어떤 연관성이 있는 걸까? 마에스트리피에리 교수는 다음과 같은 가설을 제기한다. 바로 윗 문단에서 설명한 변화들과 맞물려 인류는 적극적인 보살핌이 필요한 영유아 단계가 점차 길어졌다(오늘날 인류는 다른 포유류에 비해 육체적으로 더 미성숙한 상태로 태어나며 부모의 양육 필요 기간이 훨씬 길다). 동시에 뇌의 작동, 신경 회로, 신경화학 성분(옥시토신∙내인성 아편제 등) 작용들과 같이 초기인류 때부터 어머니와 자식 간 정서적 애착 형성에 영향을 끼쳐온 요소들은 성인 남녀간 정서적 애착 증가에도 큰 영향을 주기 시작하였다.
신체적 변화도 맞물려 일어났는데, 초기인류는 오늘날 침팬지와 같이 남녀간 신체크기∙힘 차이가 매우 컸고 많은 번식을 위해 고환 크기가 지금보다 더 컸다(침팬지는 뇌와 고환의 크기가 별 차이가 없다!). 그리고 침팬지 등과 같이 초기인류 여성은 가임기를 알리기 위한 신체적 변화가 두드러졌고 이는 남성의 번식다툼을 야기하였다. 하지만 점차 배란과 관련된 두드러진 신체적 특징이 사라져갔고 월경 주기가 일정하게 되어갔다. 이는 정해진 두 남녀가 성행위를 지속적으로 번식 이외의 목적으로 하는 것을 원할하게 하였을 뿐만 아니라, 남성으로 하여금 막 태어난 아이가 내 아이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게 해주었다(Maestripieri 2012).
이로 인해 남성의 양육 의지가 증가해 갔으며, 이와 맞물려 정자량이 줄고 고환 크기가 작아지며 난잡 성교 습성이 사라져갔다. 이러한 변화들이 일어나며, 초기인류 때부터 존재해온 어머니의 자식에 대한 강한 정서적 애착과 비슷한 아버지의 자식에 대한 정서적 애착이 증가하기 시작한 것이다. 동시에, 정해진 두 성인 남녀간 지속적인 짝을 이루려는 의지가 증가해 갔다.
다수의 현대 남성 연구들에 따르면, 결혼을 하거나 아이를 가진, 혹은 매우 진지한 연인관계에 있는 남성들에게서 테스토스테론의 두드러진 감소가 나타난다. 이는 정해진 짝을 이루려는 인류의 진화심리학적 변화를 반영하는 것으로, 남성의 다른 여성에 대한 욕망을 감소시키고 관계를 맺은 여성 및 아이에게 집중하게 도와주는 것으로 여겨진다(Maestripieri 2012).
이와 같은 인류여정 내 복잡다단한 생리학적, 신체적, 심리적 변화들은 성인 남녀가 짝을 이루고 자식을 협력적으로 양육하도록 이끌어왔다. 이러한 변화들 중 설명하기 가장 힘들면서도 놀라운 것은 바로 ‘정신적∙낭만적 사랑’의 전개과정이다. 이 글을 통해 내가 전달하는 하나의 가설은, 남녀간 정신적∙낭만적 사랑은 초기인류 때부터 존재해온 어머니와 자식간 정서적 유대 그리고 나중에 발달한 것으로 보이는 아버지와 자식간 정서적 유대와 분명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는 것이다.
'사랑'은 과학으로 설명이 불충분
사랑하는 상대를 만나지 못하거나 이별 혹은 죽음으로 잃는 것은 오늘날 우리에게 엄청난 고통으로 다가온다. 이는 인류역사에서 많은 경우 생존 및 번식과도 직결되는 문제여왔다. 하지만 너무나도 강렬한 이 남녀간의 ‘사랑’은 육체적 생존 그리고 생리학적 번식을 뛰어넘는 엄청난 작용들을 인류에게 해오기도 했다. 그리고 아이를 아직 가질 수 없는 어린 남녀간의 강렬한 사랑, 남녀간이 아닌 다양한 인간관계에서의 사랑 등은 이 글에서 소개하는 인류학적 가설로는 설명이 불충분 혹은 불가능하다.
남녀간 강력한 정서적 유대를 형성하는 이 ‘사랑’이라는 것은, 사실 허술한 이 글은 물론이고 어떠한 과학적 자료나 유능한 학자의 주장도 충분히 설명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한가지 분명한 건,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이며 사랑 그 자체로 아름답고 고결한다는 것이다. 당신의 사랑을 응원합니다!
참고문헌
De Waal, F., 2006. Bonobo Sex and Society(보노보 성행위와 사회). Scientific American Sp, 16(2),
14-21.
Maestripieri, Dario, 2012. Games Primates Play: an Undercover Investigation of the
Evolution and Economics of Human Relationships(영장류 게임-인간관계의 진화와 번식에 관한 위
장수사). 2nd ed. New York: Basic Books.
Sommer, V. and Reichard, U., 2000. "Rethinking Monogamy: The Gibbon Case(일부일처에 대한
재고찰-긴팔원숭이 사례)". in P. Kappeler(ed.), Primate Males.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pp. 159–168.
Storey, A. E., and Ziegler, T. E., 2016. Primate paternal care: interactions between
biology and social experience(영장류 부모양육-생물학적 요소와 사회적 경험의 상호작용).
Hormones and Behavior, 77, 260–271. http://doi.org/10.1016/j.yhbeh.2015.07.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