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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북 Aug 23. 2020

아주 오래된 사이

글 도플+갱어


어디선가 불어오는 부드러운 바람을 느꼈다. 그 바람은 옹기종기 붙어 있는 낮은 집들 사이를 거쳐 내 몸을 스쳤다. 골목길 화분의 꽃도 같이 흔들렸다. 한동안 그 곳에서 하나의 집처럼 가만히 서 있었다. 그렇게 두 발이 머물러있는 곳을 온몸으로 느껴본 적은 처음이었다. 마을 곳곳을 걸으며 이 공간이 내게 들어오고, 동시에 내가 이곳에 스며든다는 감각. 내게 성북동은 그런 감각을 깨워준 동네다.


성북동에 발을 들이게 된 것은 순전히 사랑에 미쳐서다. 2012년의 어느 날, 혼자 지내던 정사각형 방을 나와서 무작정 그녀가 살고 있는 성북동에 짐을 부렸다. 우리가 만나고 사귀고 같이 살기로 결정한 시간이 사흘을 넘기지 않았듯, 성북동이라는 동네가 내 마음을 사로잡기까지의 시간도 사흘을 지나지 않았다. 그렇게 문학책 속 시 한 구절로 알고 있던 동네는 내 앞에 살아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음이 뜨거워 추운 겨울에도 자주 걸었다. 늦은 가을부터 겨울, 그리고 다음해 봄을 온전히 서로를 위해서만 동네를 걷는 일로 시간을 내었다. 우리의 사랑이 고스란히 성북동 길에 두 발로 쓰였다. 매일 새로운 고즈넉함, 포근한 설렘을 같이 찾았다. 그녀의 모든 것을 알고 싶어 하는 내게 그녀는 혜화문 앞 언덕을 따라가는 성곽 길을 보여주었다.


까만 밤 그녀가 가리키던 언덕 맞은편 광경 속에는 다른 높이, 다른 색깔, 다른 밝기를 내뿜는 집들이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져 있었다. 모자이크나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처럼 서로 다른 모습을 하고 있음에도 하나로 잘 어우러졌다. 그녀의 음성이 그림에 더해져 감미로운 노래처럼 마음에 파도쳤다. 작은 불을 하나씩 품고 있는 집들, 그 풍경이 고향 바닷가 섬마을의 그것을 연상시킨다며, 자신이 이 동네로 넘어오게 된 날의 기억을

풀어내주었다.


「2011년 어느 여름 밤, 익선동에서 살던 시절에요. 매번 가회동 인근까지만 밤 산책을 하다가 그날따라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좀 멀리 나가볼까 하는 맘에 낙산공원을 올라갔던 날이 있었어요. 성곽 길을 따라 걷다가 내려다보이는 풍경에 마음이 끌려 계단을 따라가게 되었고, 이어진 어느 마을로 들어갔을 때 분명 처음 오는 낯선 곳인데 낯설지 않았어요. 달빛 아래 춤추는 나무들의 그림자, 하얗게 빛나는 회벽, 그 집 문간에 모여 앉은 사람들의 말소리, 어느 집 밥 짓는 냄새, 알싸한 풀 내음. 그것들이 어우러져 내 맘을 흔들고 있었어요. 신기하게도 그리운 곳에 다시 돌아온 느낌이었어요. 훅 밀려들어오는 반가움과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을 것 같은 편안함을 느꼈던 그 순간, 내가 살아가고 싶었던 곳을 비로소 찾았구나 생각했어요. 그렇게 처음 성북동 북정마을에 왔던 날을 생생히 기억해요. 삶의 마지막 순간은 여기였으면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반한 곳이, 정갈한 한옥마을이 아닌 성문 밖 산마을일 줄은 몰랐죠. 성북동으로 거취를 옮긴 후엔 혼자 성북동 성당과 혜화동 성당을 오가며 함께 삶을 살아갈 사람을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나처럼 이 거리와 성곽이 있는 풍경을 좋아해주는 사람을 만나게 해달라고 기도했어요. 생각보다 빨리 응답이 오는 걸 보면 이 동네에 정말 좋은 기운이 많이 흐르고 있나 봐요. 정말로 하고 싶었던 일에 도전하고, 스스로가 가장 자연스럽게 느끼는 모습으로 ― 레즈비언임을 굳이 숨기지 않고 ― 살아가는 것도 이곳에서 살아가면서 생긴 좋은 변화들이니 여길 벗어나면 안 되겠어요.」


옅은 봄기운이 공기의 냄새를 바꾸기 시작했던 때, 그 무렵 갔던 길상사와 수연산방 또한 우리를 이루고 있는 기억이다. 흰 눈이 채 녹지 않은 자리에 초록 망울을 움트고 있던 개나리 돌담이 맘에 들어 멈추고는 백석의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를 읊었다.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는 낭만적인 문장도 좋아하지만,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고 사랑의 도피처로 떠나자는 애절한 마음을 전하고 싶어서였다. 첫눈에 제 짝을 알아보았지만 슬픈 사랑의 운명에 시대의 비극까지 더해져 평생 서로를 그리워만한 백석과 자야.


「그리움이 가득차면 애써 비우고 그 자리에 다시 그리움이 차오르고. 다시 비우기 위해 공양을 얼마나 드렸을까요? 몸은 떨어져 있었지만 영혼은 서로를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닿아 있었겠지요. 애끓음을 달래느라, 서로의 건강을 바라느라 몇 번의 절을 해야 했을까요? 그 마음이 끊임없이 반복되면서 둘의 사랑은 열반에 들었겠죠? 그러니 우리는 만져지는 사랑을 했으면 해요. 서로의 곁에서 함께 숨 쉬는 사랑을 했으면 해요. 멀리서 시가 되기보단 서로의 삶이 되길 바라요.」


나는 아직 가시지 않은 청량한 겨울 공기를 갈라 새기기라도 할 것처럼 선언하듯 말했다. 수연산방에서 그녀는 춘설차를 두 손에 쥐고 계속된 내 말에 귀 기울여 주었다. 차 속에 담긴 푸른 봄을 마시며 앞으로도 이렇게 서로를 그윽이 마주보며 차를 마시는 날들이 되길 기도했다.


그렇게 우리 두 사람, 네 발을 나란히 하며 4년여의 시간을 틈틈이 동네산책에 쏟았다. 같은 사람과 같은 거리를 걸어도 질리지 않음은 물론이거니와 새롭게 느끼고 알아가는 것들이 무궁무진했다. 동네를 걸어도 여행을 하는 기분이었다. 심우장에서 만해 선생이 심었던 나무에 손을 대어보기도 하고, 조팝나무가 흐드러진 성북천에서 향기에 취한 채 오리들을 하염없이 바라보기도 하고, 성북예술창작터의 조그만 전시공간을 독차지하듯 앉아있기도 하면서 우리는 동네에 녹아들었다.


알면 알수록 그녀와 동네는 아주 오래된 사이처럼 닮아있었다. 또한 우리 사이와도 닮아있었다. 편안한 가운데 새로운 설렘, 안정감 속 넘나드는 깨우침,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온전히 하나가 될 수 있는. 내가 있어야 할 자리를 찾아왔다는 감정, 그 안락함 덕분에 불안하던 마음은 평화로운 바다를 만났다. 사랑하는 사람이 깊은 유대감을 느끼는 곳이며 나의 그리움의 답이기도 한 성북동을 점차 사랑할 수밖에 없었다.


이국적인 알프스의 마을처럼 북한산 자락의 풍경이 잘 보이는 동네. 그 바위산 아래 한 쪽에는 작은 집들이 반대쪽에는 거대한 저택들이 마주하며 조화롭게 어울리는 동네. 평화롭고 여유 있는 마을의 기운, 감싸주는 따듯한 느낌을 가진 동네를 사랑하게 된 나머지 우리는 이곳에서 잠시도 떠나기 싫다고 생각했다. 성북동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나 함께 동네를 아끼는 마음으로 오래도록 살아갈 사람들이 있다면, 그리고 그 사람들이 우리를 부부로 생각해주고 편견 없이 어울려준다면 좋겠다는 소망도 생겼다. 삶의 공간을 소중히 생각하고 지킬 줄 아는 사람들이 사는 동네니까 서로를 소중히 생각하는 두 사람의 마음도 잘 알아주지 않을까 괜스레 기대도 해보게 되었다.


운명이 우리를 성북동에서 계속 살게 하고 있다고 느낀다. 우리에게 성북동 작은 집들은 백석의 깊은 산골 마가리와 같다. 동네의 온화함을 닮았으면 하는, 언젠가는 만나고픈 우리 딸의 이름도 동네에서 영감을 받아 지었다. 우리가 성북동의 면면을 오래보고 자세히 살피고 미소를 머금으며 좋아하듯, 동네에서 마주치는 이웃들도 우릴 그렇게 보아주길 바란다. 남자 둘, 여자 둘, 혹은 혼자일지언정 누구든 자신이 좋아하는 마을에서 불편한 존재가 아니길, 특이해서 계속 쳐다보는 대상이 아니길 바란다. 비록 지금 서로를 반려자로 삼았어도 서류에는 동거인으로 되어 있고, 해마다 그녀의 집에 내가 무상으로 거주하는 이유를 거짓으로 써서 제출해야 하며, 주민세도 따로 내고 있지만 말이다. 신혼부부로 인정받을 수 없어 그에 따른 지원 혜택도 받지 못하고, 심지어는 아플 때 보호자로 옆에 있어줄 수도 없지만, 우리에겐 그것만큼이나 이웃들의 편견 없는 시선도 중요하다. 우리를 이질감 없이 봐 주고 산책길에 마주치면 안부를 물어주는 반가운 얼굴들이 많아지기를…. 모두 더불어 살고 어울려 노는 ‘우리 동네’라고 부를 수 있는 곳, 그런 성북동에 같이 살길 꿈꾼다.


아주 오래된 사이




도플과 갱어는 혜화동 성당에서 만나 혜화문 근처에서 부부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도플은 무대에 서고 공연을 만드는 일을, 갱어는 향긋한 차를 만들거나 대접하는 일을 합니다. 성북동 곳곳을 쏘아 다니며 많은 영감을 받습니다. 이 글은 도플의 글에 갱어의 글을 입혀 마무리 지었습니다.




성북, 무지개와 함께 마을잡지「여기 우리 살誌」지역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는 성소수자 주민들의 삶을 기록하기 위해 만들어진 성북구 성소수자 마을잡지로, 서울마을미디어지원센터 2016년 마을미디어활성화 주민지원사업 지정공모분야(콘텐츠형)에 선정되어 사업비를 지원받아 간행되었습니다.

※ 원고가 작성된 시점은 2016년 상반기로, 필자의 근황이나 필자가 묘사한 당시 성북동 모습 일부는 지금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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