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테리 Feb 13. 2023

맛있는 수다

반복되는 집밥에 지쳤을때

그녀를 1년 만에 만났다.

포근하게 감싸 입고 나온 회색 코트와 한 듯 만듯한 투명 화장이 화사하고 정겹다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주섬주섬 빵을 골랐다.

방금 나온 빵은 잊었던 설렘을 떠오르게 하지...


그렇게 설렘을 접시에 담고 있는 너와 나도 1년의 공백이 무색하게 어색함 1도 없이 익숙하다.


어린이집을 입소하고 적응기간이 끝났지만 아이가 낮잠을 강력하게 거부했다.

잠을 자고 싶지 않은 아이를 계속 눕게 하고 강제로 재우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아이에게 너무 고통스러운 일인 듯싶었다. 그래서 나는 회사에서 일을 하다 점심시간이 되면 아이를 픽업해서 집에 데려다 놓고 다시 회사로 돌아와야 했다. 그리고 퇴근 시점이 되면 조금이라도 늦어질까 허둥지둥 집으로 와야 했다.

그러다 보니 나에게 지인과의 만남이란 참으로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오랜만에 오래된 친구를 만나 폭풍 같은 수다의 향현이 펼쳐졌다.

각자의 부모님 안부부터 육아의 고충과 그때 그 시절 추억들을 넘나들다, 흥미로운 콘텐츠 정보와 재테크 등등의 영역을 파괴하는 이야기를 주고받다 보니 어느덧 4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언제나 그녀와의 만남은 함께 하는 음식으로 입도 즐겁고 마음도 풍요로워진다.


누군가는 수다를 아무런 영양가 없는 소모적인 활동으로 간주하기도 한다.

그러나 나의 생각은 다르다.

수다는 엉망진창 뒤꼬인 속 이야기를 쏟아내면서 감정적 해소를 느끼게 하고, 말을 하는 동안 스스로의 생각을 정리시킨다.  그리고 정리된 생각 속에 불편했던 것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수다가 언제나 그런 결과를 얻느냐? 그렇지는 않다.

여기서 관건은 누구와 말을 하느냐! 그리고 그 주제는 무엇이냐!

신뢰 관계가 없는 누군가와 나누는 대화는 때때로 스트레스를 더욱 높인다.

또한 누군가에 대한 험담이나, 하소연정도로 끝나는 대화는 후회만 남는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대화의 대상은 넓어지지만 속 깊은 대화의 상대는 좁아진다.

생각의 흐름을 필터링하지 않고 쏟아 놓아도 이상한 사람으로 나를 판단하지 않을 사람 

대화 사이 공백이 흘러도 불안하지 않아도 되는 사이

질투나 미안함을 염두하지 않아도 되는 관계

그런 상대일 때 물 흐르듯 수다는 흘러가고 위로와 영감과 통찰을 가져다준다.


1년 만에 만난 그녀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 나는 '수다'를 잠시 묵상했다.

그리고 정신없는 일상임에도 반드시 '맛있는 수다'를 놓치지 말아야겠다 생각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믹스믹스믹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