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김장 김치 살리려다 내가 죽었다

국물이 넘치면 사랑도 넘치나?

by 영동 나나

모처럼의 일요일 쉬는 시간이고 재충전의 시간이다. 아침 일찍 일어나 식사를 준비하고 평소처럼 교회에 갈 준비를 한다. 93세는 내 생각과 달리 지난주에 담은 김장김치가 싱겁다고 다시 간을 해야 한다고 준비한다.

미리 끓여 놓은 육수에 까나리 액젓, 새우젓, 마늘, 소금 등을 넣고 짭짤하게 간을 만든다. 간 보기 싫어하는 69세는 굳이 간을 봐야 한다. 그런데 나는 왜 간 보기를 싫어할까?


김치냉장고의 큰 김치통(17kg)을 다시 꺼내 한 포기 한 포기를 큰 양푼에 담는다. 담은 김치의 주변으로 육수를 부어 은근히 간이 들어가게 한다. 다시 큰 김치통에 김치를 담는다. 문제가 여기서 벌어진다. 큰 통에 꽉 차게 담아 국물이 넘칠 것 같다. 너무 많다고 이야기하지만 스며들면 괜찮다며 꾹꾹 눌러 담는다. 뚜껑을 덮으려고 하니 국물이 넘친다. 하나를 덜어낸다. 뚜껑을 닫고 75세를 불러 김치냉장고 넣어 달라고 부탁한다.


17kg 김치통을 들 수 있는 사람은 우리 집에 75세 밖에 없다. 93세는 허리에 시멘트 공사를 세 번 하였고 69세는 허리 협착이 시작되었다. 75세도 힘들게 들어 올려 김치냉장고에 안착을 시킨다. 그러는 사이 김치통에서 국물이 넘쳐 김치냉장고 안에 주욱 번진다. 다시 들어내고 닦고 덜어내고 다시 들어 올리고 집어넣고… 뭐 하는 건지. 다음 통에서도 같은 일이 일어난다. 이런 일을 반복하다 보니 69세도, 75세도 화가 난다. 조금만 덜 채우면 넘치지 않는데 도대체 왜 이러시는지 알 수 없다. 통을 채우다 못해 넘쳐야 식성이 풀리는 93세다.






옆에서 시중드는 것에 화가 난 75세와 69세는 서로에게 화를 낸다. 69세가 도와 달라고 불러도 75세는 오지 않고 안 온다고 화를 내며 무거운 김치통을 69세 혼자 들어 올리며 신음을 낸다. 이러다 허리를 다치면 또 며칠 동안 꼼짝 못 하고 누워있어야 한다. 그것을 아는 75세가 불러도 오지 않는 것에 69세는 더 화가 났다.


이미 예배에 참석할 수 있는 시간은 지나버렸고 그 시간 이후로 75세와 69세는 말을 안 한다. 오늘의 승자는 93세다. 두 사람이 본인 때문에 화가 난 것도 모른다.


나이가 들면 주변 사람 생각을 못 한다. 자신이 하려는 일만 생각하지, 다른 사람의 사정이나 상황을 배려하지 않는다. 일요일 아침 교회에 간다는 것을 알면서도 김치 걱정이 더 큰 거다. 오늘은 김치가 제일 중요한거다. 69세가 나이만 들었지 김장김치를 담아 보지 않은 것이 잘못이다. 입원한 93세를 외출시켜서 김장을 한 사람이 무슨 할 말이 있고 화를 낼 수 있을까.


그저 내 바람은 내년 김장도 몇 번의 김치 살리기를 하든 93세가 담아주기를 바랄 뿐이다. 또 하나의 바람은 김치가 익으면서 넘치지 않길 바라며, 이렇게 김칫국물이 넘치는 날이 아니라 사랑이 넘치는 하루로 마무리해야한다. 그러려면 내가 죽어야 한다.





*시멘트 공사 :척추성형술(Vertebroplasty)

허리 시멘트 수술은 척추체 성형술이라고도 불리며, 부러진 척추뼈에 골시멘트를 주입하는 시술이다. 척추뼈가 주저앉거나 부러진 경우, 척추를 바로 세우기 위해 시행한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