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맛있는 강된장의 비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by 영동 나나 Feb 08. 2025
아래로

 우리는 외식을 잘 안 한다. 이유는 외식하면 맛있게 먹지만 MSG를 많이 먹었다는 느낌이 있어서  후회된다. 다른 이유는 75세와 69세가 와인을 마시며 저녁 식사를 천천히 즐기고 싶어서이다. 마지막은 93세의 음식 솜씨가 훌륭하기 때문이다. 


 93세의 강된장과 무생채, 생선조림은 누구보다 맛이 뛰어나다. 무생채에는 인삼 가루를 넣어 알싸한 맛이 무의 시원함을 더해주고, 생선조림은 무를 큼직하게 썰어 고춧가루 등 약간의 양념을 하여 무만 먼저 한소끔 끓여 놓는다. 









 강된장을 만드는 과정은 어렵고 시간이 오래 걸린다. 모든 재료를 3~4mm 정도로 작게 잘라야 한다. 성질 급한 69세는 이 과정이 싫어서 강된장을 안 만든다. 옆에서 본 레시피는 뚝배기 하나에 두부 4분의 1, 청양고추 20개 정도, 무, 양파, 된장, 쌀뜨물, 멸치를 가위로 잘라 넣어 빡빡하게 끓이는 거다. 물론 파 마늘도 들어간다. 


두부는 칼로 밀어 쓰러뜨려 작은 조각으로 만든다. 청양고추를 잘게 썰어 많이 넣는데도 신기하게 그리 맵지 않다. 한번은 도와주는 분이 청양 고추를 맨손으로 썰다가 손이 맵고 화끈거려 일을 못 한 적도 있다. 그다음부터 69세는 고무장갑을 끼고 하는데 93세는 맨손으로 해도 끄떡없다. 이것도 일종의 손맛인지. 






 93세의 음식을 좋아하는 손님이 우리 집에 오신다고 하면 메뉴는 고정되어 있다. 무생채와 갈치조림, 강된장이다. 맵고 짠데도 맛있다고 하신다. 매운 강된장을 사람들은 눈물과 땀을 흘리며 맛있게 드신다. 어느 날 손님이 "이 맛은 천국에서 온 겁니다!"라고 감탄하실 때, 문득 생각했다. 천국 맛을 내는 비법이 과연 무엇일까?

 

또 캐나다에 살고 있는 딸은 93세가 만든 강된장을 먹고 싶다는 이야기를 자주 한다. 딸을 방문할 때는 강된장을 만들어 줄줄이 소시지처럼 엮어서 일회용으로 만들어 냉동해서 가지고 간다. 작은 강된장 덩어리에 담긴 93세의 손맛과 사랑은 그 어렵다는 캐나다 세관에 걸리지도 않고 국경을 넘어 전달된다.












69세는 비슷하게라도 만들어 보려고 몇 번을 배우고 시도를 하지만 그 맛이 안 난다. 짜고 매운 맛의 조화가 있나 보다. 그러던 어느 날 그 비밀을 알아냈다. 그날도 93세는 분주히 강된장을 만들고 계셨다. 69세는 옆에서 부엌일을 돕다가, 우연히 93세가 양념장 깊은 곳에서 무언가를 꺼내는 걸 목격했다.
그건 바로… 미원이었다.


 "엄마!"
내가 외치자, 93세는 순간 멈칫하더니 태연한 표정으로 "아주 쬐끔 넣은 거야!"라고 말한다. 그제야 깨달았다. 내가 그토록 따라 하려던 맛은 미원이 만든 맛이었다.

"미원 안 쓴다더니…"
"그래도 된장찌개에 미원 안 들어가면 제맛이 안 나!"
이쯤 되면 93세의 태연함에 두 손 두 발 다 들 수밖에 없다.


 MSG에 예민한 69세 몰래 사용하느라 미원 그릇은 양념장 안의 깊은 곳에 있었고 살짝살짝 사용해 왔다. 그러니 69세가 아무리 비슷한 맛을 내려고 해도 그 맛이 날 수가 없었다. 왜 미원 넣는 것을 얘기 안 했느냐고 하니, ‘아주 쬐끔! 넣는데 뭐’ 한다. 조금 넣는 것도 넣는 거지. 내 생각엔 다른 음식에도 분명히 나 몰래 미원을 쓰고 있는 거다. 


 69세는 93세의 익숙해진 입맛을 생각해서  MSG사용을 더 이상 문제 삼지 않는다. 오히려 그 미원이 만들어낸 맛을 떠올리면 포기하는 미소가 나온다. 


우리 집 강된장은 단순한 요리가 아니다. 세대와 사랑, 그리고 비밀스러운 MSG의 조화로 만드는 인생 요리인 것이다. 



69세: "엄마, 강된장 끓여서 양배추에 싸서 먹을까?!"
93세: "미원 넣어야 되는데…"  





    ‘미원’이라는 표현을 그대로 쓴 것은 93세가 이야기 하는 모든 MSG를 대표하는 단어이기 때문입니다.   

 


이전 04화 김장 김치 살리려다 내가 죽었다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