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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동안 10만 불, 버즈 알 아랍

돈의 모습을 보았다.

by 영동 나나

"내일 피아제 시계를 사러 갈 테니, 가게 좀 알아봐요."

"네, 알겠습니다."

"시계 사는 게 제일 중요한 일정이에요."


공항에서 버즈 알 아랍 호텔로 가면서 일행 중 한 분이 말한다. 나는 여덟 명 중 누가 리더 인지 알아낸다. 일정의 모든 결정은 이분의 의견을 따르면 되는 것이다.


돛단배 모습의 호텔이 보이고 입구 차단기가 올라가며 7성급 호텔 손님의 자존심도 올라간다. 하룻밤에 300만 원이 넘는 이곳에 머물 수 있는 사람은 흔치 않다. 붉은색 장미로 장식된 정면의 분수대, 금색 기둥, 우드 향이 넘치는 호텔 로비, 아랍풍의 유니폼을 입은 직원을 따라 방으로 안내된다.


피아제를 사겠다고 한 분이 내게 도움을 청한다. 자신은 영어를 못하니 방까지 와서 도와달라고 한다. 버틀러의 긴 설명이 끝나자 피곤한 듯 피아제 님은 백팩을 조카에게 던지며, “야, 이거 금고에 넣어”한다. 돈이라는 것을 직감하지만 무심한 척한다. 나중에 보니 현금 10만 불이었다.


다음 날 아침 파도가 없는 조용한 아라비아해가 커다란 거울 같았다. 그것을 배경으로 일행은 런웨이 모델처럼 등장했다. 에르메스, 루이뷔통, 펜디, 구찌, 돌체 앤 가바나, 샤넬, 적어도 하나 이상 들고, 입고 있다. 이럴 줄 알았다. 미리 눈치챈 나도 프라다 백을 들고 나왔다.


쇼핑몰 문을 여는 10시에 맞추어 샵에 도착하고 피아제 님이 미리 정해 놓은 모델을 고른 후 흥정을 한다. 시계 하나가 6만 불이었다. 오래전 일이니 지금 그 모델이 10만 불 정도 하는 것 같다. 백팩에서 현금을 꺼내 돈을 세기 시작한다.


새 돈을 세는 것이 이렇게 힘들 줄이야. 손에 물을 적시고, 살짝 침도 칠해 보지만 쉽지 않다. 한 장이라도 잘못될까 봐 손가락이 마비될 지경이었다. 지폐가 얇은 비닐처럼 달라붙어 있다. 나와 조카가 빳빳한 600장을 세어 매장 직원에게 넘겼다.


돈을 넘겨주고, 포장 전 시계를 차 보겠다고 했다. 아뿔싸! 덩치가 있는 피아제 님의 팔뚝이 너무 굵다. 이틀 후 출발인데 긴 시곗줄이 오려면 두 달이 걸린다고 한다. 사는 것을 포기하고 돈을 돌려 달라고 하자, 지불한 지폐가 위폐인지 확인하러 갔으니 기다리라고 했다. 그 시간은 일행이 피아제 님을 위로하는 시간이었다.


한참 후 돈이 도착했고, 매장 직원이 돈을 세어 나에게 주면 나는 조카에게 넘겼다. 결국은 300불이 부족했다. 피아제 님은 한국말로 욕하며 매장에서 나왔다. 직원은 이해를 못 하고 한국말을 알아듣는 나를 포함한 일행만 욕을 먹었다.


두바이를 떠나는 날 아침이다. 만나자마자 피아제 님이 쇼핑몰로 가자고 한다. 다시 샵에 가서 자기 팔목에 맞지 않는 시계를 샀다. 꽉 끼는 피아제 시계를 차고 베르사체 양복을 입은 그는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잘 모르겠지만 아쉬운 것은 말과 행동이었다. 두바이에 명품 말과 행동을 파는 곳이 있다면 알려 주고 싶었다.


3일 동안 나는 내 손으로 10만 불을 지불했다. 카드가 아닌, 손 끝의 긴장감이 느껴지는 빳빳한 현금이었다. 그 돈의 진짜 주인은 내가 아니었지만 전달자인 나의 스트레스가 풀린 것 같기도 하고, 돈의 모습이 보였다.

돈이 많고 적은 것보다 사람의 태도와 성향, 기쁨과 두려움, 욕망과 자존심 같은 것이 생각났다. 돈의 모습은 허세도 아니고, 화려함도 아니며, 그저 사람을 드러내는 거울이었다.









P.S 모든 일정을 마치고 호텔 27층 바에서 야경을 보며 조카가 물었다. “가이드하면서 제일 많이 받은 팁이 얼마예요?” 팁을 주려는 신호라는 걸 알았다. 전에 모그룹 회장님이 주셨던 금액을 이야기했다. 피아제 님 일행에게서 받은 팁은 얼마였을까?

1,000불

1,500불

2,000불

2,500불

정답은 다음 이야기에서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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