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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 놓쳐요! :두바이 팜 아일랜드

동행하는 사람들

by 영동 나나


“이제 일정의 마지막 장소, 팜 아일랜드를 떠나 저녁 식사를 하고 공항으로 가겠습니다.” 나는 익숙한 멘트로 안내를 시작했다. 야자수 모양의 인공섬, 셰이크 모하메드의 상상력이 만든 이 거대한 프로젝트는 언제나 손님들이 감탄하는 장소다. 그날따라 버스는 설명이 끝나도록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았다. 평소처럼 흘러가야 할 일정이 어딘가 어긋나기 시작했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앞쪽에 사고가 났다는 이야기를 들은 건 한참이 지난 뒤였다. 우리가 가진 시간은 2시간도 채 남지 않았고, 공항에는 늦어도 밤 9시까지 도착해야 했다. 평소 같으면 40분이면 충분한 거리였지만, 버스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저녁 식사를 할 시간은 이미 날아가고, 내 머릿속은 쉼 없이 돌아갔다. 기다릴 것인지, 아니면 다른 결정을 할 것인지를 정해야 했다. 만약 비행기를 놓친다면? 30명 편도 항공권 구매, 급박한 호텔 숙박, 단체 식사, 뒤따를 원망과 책임…. 결국 나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지금 이 섬을 빠져나가야 한다’고 결정했다.


그룹 리더와 빠르게 의견을 나눈 뒤, 나는 마이크를 들었다.

“지금 상황이 쉽게 풀릴 것 같지 않습니다. 공항에 제시간에 도착하려면, 지금 이 자리에서 버스를 내려 아까 타고 오셨던 전철을 이용해야 할 것 같습니다. 짐은 각자 챙겨주세요.”

손님들도 상황의 심각성을 느꼈는지 “그럽시다, 어서어서 움직여”라며 동의를 해 주셨다. 그 순간, 두바이 인공섬에 대한 감탄과 가이드에 대한 좋은 인상은 사라져 버린다. 짐칸에서 줄지어 캐리어를 꺼내고, 20kg 넘는 큰 가방을 끌고 작은 짐을 든 30명이 아틀란티스 전철역 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500미터가 한없이 길게 느껴졌다. 전철역으로 향하는 우리를 다른 차의 승객들이 쳐다보고 있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다들 짐작하고 있었다.


나는 그 사이 직원에게 준비해 놓은 버스를 보내 달라고 하고 현금 1,000불을 10불짜리로 바꾸어 공항으로 오도록 했다. 먼저 달려가 전철표를 사서 나누어 주고, 기다리는 동안 내 눈은 어디를 보아야 할지 몰라 이리저리 바쁜 척하며, 그중 짐이 많은 분의 가방을 가지고 전철을 탔다. 과연 새로 준비한 버스는 제 자리에 와서 기다리고 있을지, 오지 않았다면 또 얼마나 기다려야 하는지 내 핸드폰은 불이 난다. 전철이 종착역에 도착하기 직전 새 버스가 도착했다. 가슴을 쓸어내리며 큰 소리로 외친다. “내리시는 대로 엘리베이터를 타시고 G 층을 누르고 내려서 기다려 주세요.” 30명이 짐을 가지고 내려가려니 엘리베이터 두 대가 움직여도 시간이 꽤 걸린다. 다행히 눈치 빠른 기사가 출입구 가까운 쪽에 차를 세워 놓고 기다리고 있다. 버스가 출발한 시간이 8시 20분, 막히지 않고 가야 겨우 9시에 도착한다.


초조한 나는 대한항공 사무실로 전화했다. “ 단체 30명이 지금 공항으로 가고 있는데요, 혹시 몰라서 그러는데… 조금만 기다려 주실 수 있을까요?” 우리를 기다려 달라는 말도 안 되는 부탁을 했다, 그저 가이드로써, 책임을 진 사람의 간절함이었다.


공항으로 가는 버스에서 마지막 일정에 관해 설명을 했다. 그날 일정이 아부다비를 다녀오는 것이었고, 아침에 팜 아일랜드를 먼저 들렀다가 이동하는 계획이었다. 아침 일정이 조금씩 밀리더니, 결국 리더분이 “돌아가는 길에 팜 아일랜드를 보자.”라고 하셨고, 나는 그 결정을 받아들였다. 그 결정이 이 상황을 만들었다. 아무리 그래도 모든 일정은 가이드가 책임을 지고 진행해야 한다. 손님은 나를 믿고 다니는데, 우리 차 앞에서 사고가 날지 누가 알았겠는가. 인공섬 팜 주메이라가 출입하는 길이 하나여서 한번 큰 사고가 나면 길이 이렇게 마비가 되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었겠는가.


신기한 것은 손님 중 한 분도 불평이나 원망을 하시는 분이 없었다. 차라리 “우리 하루 더 두바이에 있다가 갈게요, 재워주기만 하세요” “출근 안 해도 되네.” ”천천히 해요, 어떻게 되겠지.” 다행히 모두 남자분으로 자기 짐을 들지 못하는 분은 없었고, 다만 저녁 식사를 못 해 배고프다는 말씀을 하시는 분은 있었다.

대한 항공의 도움으로 빠르게 체크인을 마쳤다. 헤어지기 전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봉투에 넣은 30불을 하나씩 나누어 드렸다. 출국 신고를 한 후 식사를 하시라고 드렸다. 한 마디씩 농담을 하시며 수고가 많았다는 이야기를 듣는 해피엔딩의 시간이었다.


여행사나 가이드를 할 때 순간적인 판단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그 결정은 손님의 안전과 회사의 경제적인 손해가 적어야 한다.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면 손해배상을 해야 하고 신뢰를 잃는다. 매번 크고 작은 해프닝이 벌어지지만, 이 일만큼 나를 긴장시킨 일은 없었던 것 같다. 가이드를 하려는 후배들에게 경험담을 이야기할 때 “마지막 일정으로 팜 주메이라는 잡지 마세요. 그 섬은, 한 번 막히면 길이 없어요!”라고 꼭 이야기한다.


30명이 함께 걸었던 그 500m는 평생 잊지 못할 장면이 되었다. 불평 없이 짐을 나르고, 가벼운 농담을 하며 위기를 넘기는 모습이 사진보다 더 선명하게 내 기억에 남아있다. 여행은 현지를 즐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동행하는 사람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 알게 해 준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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