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라이드 치킨의 장인
“이제 다음 집으로 갑시다.”
회장님께서 일어나 앞서 나가신다. 가이드인 나는 빠르게 움직여 회장님과 나란히 걷다가 다음 식당의 문을 연다. 레바니즈 식당에서 후라이드 치킨을 시킨다. 음식이 나오자, 부위별로 한 점씩 먹어보고, 바로 일어나
“다음 집으로….”하며 회장님이 벌떡 일어난다. 그렇게 알 사트와(Al Satwa) 거리의 튀김 닭집을 돌며 한낮 ‘치킨 탐험’이 이어졌다. 무더운 날씨에 신사복 차림의 남자 셋과 여자 하나가 줄지어 식당에 들어가는 모습은 이상하게 보일 수 있지만, 그 시간은 장인의 모습을 경험하는 시간이었다.
한국에서 유명한 양념통닭 프랜차이즈를 운영하시는 회장님이 오셨다. 유럽으로 가는 도중 두바이에 들러 중산층의 입맛을 알고 싶다고 하셨다. 필리핀, 인도, 이란, 아랍 사람들이 많이 사는 알 사트와 지역을 소개했다. 그 사람들도 튀긴 음식을 좋아해서 카페 앞에 기름 솥이 걸려있다. 그중 닭튀김은 단연 KFC가 일등이지만 우리와 다르게 바삭한 것보다는 약간 눅눅한 느낌의 오리지널 치킨을 좋아한다.
이 거리엔 KFC와 꼭 닮은 치킨 가게가 하나 있었다. 간판만 보면 누구든 “오, 여기 KFC 있네?” 하고 들어갈 수 있지만, 사실은 우리가 아는 그 KFC가 아니었다. 들리는 이야기로는, 두바이에 처음 KFC가 들어왔을 때 한 현지 업체가 프랜차이즈 계약을 맺고 운영을 시작했다. 장사가 잘되고 몇 년이 지나자, 로열티를 계속 내는 게 억울했던 모양이다. 자기 회사는 ‘KUWAIT FRIED CHICKEN’이라며 독립을 선언했다. 간판과 메뉴도 KFC와 거의 똑같다. “이 정도면 우리도 할 수 있다”라는 자신감이 있었던 것 같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옆에 진짜 KFC가 들어섰고 그 순간부터 이 ‘짝퉁 KFC’는 점점 손님을 잃기 시작했다. 가짜는, 결국 진짜를 이기지 못한다.
회장님은 두바이에서 전 세계 후라이드 치킨을 다 경험하셨다. 쇼핑몰 푸드 코트에 있는 미국과 유럽의 유명 브랜드는 모두 테스트를 하였다. 직원은 매번 그런 경험을 하겠지만 나는 그 일정이 끝난 후 한참 동안 닭 냄새도 맡기 싫었다. 회장님은 역시 달랐다. 닭을 한 입 먹으면,
“이건 냉동이네!”, “닭 날개 크기 보니 브라질산이야.”
“향신료는 로즈메리랑 타임, 카레, 기름은 해바라기유네”
라며 이야기하는 모습은 ‘닭장인’ 그 자체였다. 어느 유명 프랜차이즈 가서는
“이건 오래전에 튀겨둔 거죠?”
라는 한마디에 직원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당황하던 모습이 생생하다.
회장님의 닭에 대한 열정은 닭고기뿐이 아니었다. 투어를 하면서 장식품 파는 곳에 가면 닭 모양으로 생긴 것은 무조건 샀다. 지나가다 앤티크 샵에서 나무로 조각된 ‘닭 가족’을 샀다. 크기가 크고 특수 포장을 해서 한국으로 부치는 비용만 오천 불이었다. 회장님 말씀이 자기 회사 빌딩에는 전 세계에서 온 닭 모양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고 했다. 닭을 사랑하시나 보다. 사랑한다는 표현이 좀 그렇긴 하다.
이 회사는 특별한 기름을 사용한다고 알려져 있고, 회장님과 함께하면서 좋은 평판을 받는 것이 이해가 갔다. 원래 닭 납품을 하는 회사에 근무하다, 독립해서 양념통닭 프랜차이즈를 세웠다고 했다. 사업에 성공하는 요인은 많겠지만, 현장에서 직접 보고, 먹고, 느끼고, 개선하려는 사람은 결국 이긴다.
한국인의 열정과 끈기는 이제 전 세계가 인정하고 있다. 지하자원 하나 없는 나라가 이만큼 성장할 수 있었던 건, 결국 사람이다. 그 사람들 속엔, 내가 만났던 회장님처럼 한 가지 일에 전심을 다 하는 이들이 있었다. 그날의 일정은 단지 치킨을 먹은 날이 아니었다. 요즘 전 세계가 주목하는 ‘K-Food’도 그런 사람들의 땀과 집념이 쌓여 이룬 결과일 것이다. 그날, 회장님과 함께한 ‘치킨 탐험’을 통해, 닭다리 하나에 담긴 한국인의 자부심을 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