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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잃은 통역사,
에미리트 팰리스 호텔

프로토콜을 아세요?

by 영동 나나

“당신이 경찰에 연락했던 사람이 맞지요?”


대통령께서 아랍 에미리트 연합국(UAE) 방문을 마치고 돌아간 다음 날, 두바이 경찰에서 전화가 왔다. 귀빈 전용 대기실에서 중요한 물건이 발견되었다는 것이었다. 나는 당시 대통령을 수행한 신문 기자단의 가이드를 맞고 있었고, 묵고 있는 호텔의 주차 문제로 경찰과 여러 차례 통화를 한 일이 있었다.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그 경찰관은 내 번호를 기억하고 연락을 한 것이었다. 지금은 두바이에 영사관이 있지만, 그 당시는 아부다비에 대사관만 있어서 급히 연락하고 중요한 물건을 찾아가도록 하였다.


VIP를 모시는 행사는 늘 예상하지 못한 일이 생긴다. 그해 대통령의 행사는 유난히 해프닝이 많았다. 대통령을 모시고 가는 현지 경찰선도 차량 두 대가 서로 다른 방향으로 가서 그 뒤를 따르던 VIP 차가 당황했던 일, 공항에 중요한 물건을 두고 간 일, 그런가 하면 대통령 전속 통역사가 회의장이 있는 호텔에서 길을 잃어 15분 늦게 도착한 일도 있었다.


그 상황에서 그녀가 어떤 심정이었을지 지금 생각해도 내 가슴이 뛴다. 행사가 있는 에미리트 팰리스(현 에미레이트 팰리스 만다린오리엔탈) 호텔은 동서로 길게 1km 이다. 8층은 사우디아라비아, 바레인, 쿠웨이트, 카타르, 오만의 왕이 오면 언제나 묵을 수 있는 룰러스 스위트(Ruler’s Suite)가 있으며, 로비 층이 4층이다. 헷갈리게 되어있다. 엘리베이터 수는 102개나 된다. 눈여겨보지 않고, 정확한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으면 직원도 헷갈릴 수 있는 구조이다. 15분 동안 어디를 어떻게 헤매고 다녔을지, 자신이 호텔의 어디에 있는지조차 설명할 수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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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P 행사는 완벽하게 준비하고 모든 움직임이 프로토콜이라는 외교적 약속에 맞추어 진행하기 때문에 매 순간 긴장을 한다. 대통령의 15분은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시간이다. 그 상황에 회의장 앞에서 길을 잃었으니 얼마나 황망했을까. 다행인 것은 시간관념이 조금은 느슨한 중동이라는 곳이고, 행사 전 담소를 이끌어 갈 수 있는 외교부 직원이 있어서 그 시간을 넘길 수 있었다고 한다.


한번은 대사님을 모시는 행사에서 차를 후진해야 하는 일이 생겼다. 기사에게 뒤로 움직여 달라고 하였더니, 내 말과 반대로 빨리 앞으로 움직이는 것이었다. 놀란 나는 소리 지르며 뒤로 가 달라고 했다. 기사 말이 “이차는 뒤로 갈 수 없습니다”라는 것이었다. 외교적인 행사에 참여한 VIP 차량은 ‘앞으로만’ 움직이는 것이 원칙이라고 했다. 그런 내용을 모르고 행사 진행을 하고 있다는 것이 너무나 창피하고 민망했다. 내가 몰랐던 하나의 원칙이, 눈에 보이지 않는 많은 약속을 흔들 수 있다는 사실을 그제야 깨달았다. 프로토콜은 단순한 ‘규칙’이 아니라, 서로 다른 문화가 충돌하지 않고 조화를 이루게 하는 장치였다.


그 일을 통해 나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또 인정받고 싶어 한다. 완벽하게 준비해도 예측 불가능한 변수가 생기기도 하고, 실수를 하기도 한다. 그때 일어난 상황을 인정하고 대처하는 능력이 그 사람의 진가를 알게 한다. 실수를 인정하는 연습도 필요하다. 실수를 인정함으로써 자신의 불안감이 해소되고, 주변 사람의 시선에서 벗어날 수 있다. 계속되는 실수는 문제가 있지만 자신의 약점을 알고 노력함으로써 자신의 입지를 높일 수 있을 것이다.


“완벽은 없다. 그럼 나는 어디까지 어떻게 준비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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