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바이 국제공항 터미널 3 (DXB)
“안녕하세요? 이쪽으로 나오셔서 늦게 나오시는 분들을 기다려 주세요.”
25명 단체 중 15명이 먼저 모습을 드러냈다. 그중 한 분이 급하게 항공권을 꺼내며 말했다. "이거 뭔가 이상한데요?" 티켓을 확인해 보니, 두바이 시각으로 4시간 후에 출발하는 비행기이다. 설마, 하고 나머지 분들의 항공권을 봤더니 모두 똑같았다. 원래 계획은 밤 11시에 도착해 호텔에서 하룻밤 자고, 다음 날 하루 투어를 즐긴 뒤 새벽 3시 비행기로 귀국하는 것이었다. 여행사 측의 실수로 유럽에서 막 도착한 이분들은 바로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돌아가야 했다. 공항 밖으로 나왔던 손님들은 두바이의 모래바람도 느끼보지 못하고, 아쉬움 속에 두바이를 떠나야 했다.
두바이 국제공항(DXB)은 “전 세계를 연결하는 초대형 환승 허브”다. 가장 바쁜 시간은 밤 10시부터 새벽 2시. 이 시간에 유럽과 아프리카에서 온 항공기들이 도착하고 떠난다. VIP들은 이 시간에 비행기에 올라 잠을 자고, 아침에 내려 곧장 회의실로 향한다. 에미레이트 항공의 일등석이 호화스러운 이유가 있다. 말 그대로 '공중 호텔'을 운영 중인 셈이다.
두바이 공항은 연간 약 1억 명이 이용한다. 그중 절반이 두바이를 최종 목적지로 삼고, 나머지 절반은 잠깐 머무는 환승객이다. 이 잠깐이라는 시간을 어떻게 '쓸모 있게' 만들지가 관건이다. 두바이는 반나절 투어, 야간 투어, 새벽 사막 사파리 등 다양한 환승 상품을 개발 중이다. 실제로 두바이관광청에 따르면, 2018년에는 환승객 중 시내로 나오는 이들이 8%에 불과했지만, 2024년에는 무려 60%가 공항을 나와 관광을 즐긴다고 한다. "잠깐 들렀다가 간다"는 두바이가 이제는 "하루라도 머물고 싶다"라는 도시가 된 셈이다.
두바이 공항은 24시간 운영된다. 새벽 2시에도 커피를 내리는 바리스타가 있고, 향수 샘플을 뿌려주는 면세점 직원이 있다. 공항이 쉬지 않으니, 도시도 쉬지 않는다. 이 시스템은 경제적으로 큰 효과를 낸다. 2014년 공항의 경제 효과는 두바이 GDP의 약 27%를 차지했다. 면세점은 밤에도 성업 중이고, 공항 밖에서는 택시, 호텔, 여행사, 레스토랑이 쉴 틈 없이 손님을 맞는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라는 말이 이제는 “모든 항공 길은 두바이를 통한다”로 바뀌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구 390만의 도시가 세계 최고의 공항과 항공사를 보유하고 있다. 100여 개 항공사가 주간 8,500회 이상 운행하며 전 세계 270개 도시를 연결한다. 두바이는 ‘오픈 스카이 정책(Open Sky Policy)’*을 통해 더 많은 항공사를 유치하고 있으며, 하늘길의 주인이 되어가고 있다.
셰이크 모하메드는 두바이가 ‘지구의 중심이 아니라 우주의 중심’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주메이라 비치 호텔 벽에는 두바이가 태양계와 남아프리카공화국 사이의 중심임을 표현한 장식이 있다. 과장이 심하다고 하겠지만 그런 상상력이 오늘의 두바이를 만들었다. 크기나 인구로 보면 작지만, 하늘과 바다에서 만큼은 중심의 역할을 하고 있다. 정치적으로도 중동에서 완충지 역할을 하며 이익을 얻고 있다.
반면, 인천국제공항의 평가는 "고객 만족도가 높고, 문화적 체험이 있는 동북아 관문 공항"으로 세계 5~6위권에 있는 공항이다. 하지만 '세계'가 아니라 ‘동북아 관문 공항’이라고 말한다. 최고 수준의 시설을 갖췄지만, 밤이 되면 공항은 조용해진다. 면세점 불은 꺼지고, 활주로는 움직임이 없다. 이유는 소음 규제, 주민 보호, 시설 유지보수, 운항 안전 때문이다. 이런 문제는 다른 나라의 공항도 겪고 있지만, 싱가포르나 홍콩 공항도 24시간 운영한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야간 이착륙이 허용되면 연간 수천억 원의 이익이 가능하다고 한다.
공항에서 일정을 예약하고 기대했던 손님을 돌려보낸 경험이 생각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 본다. 우리는 누구에게도 지고 싶지 않고 기술이 좋아 최고의 것을 잘 만든다. 하지만 그 활용도가 떨어지면서 이익을 내지 못하고 있는 시설이 많은 것 같다. 각 개인의 이익을 보호하고 보장받으려다 보니 전체를 돌아볼 힘이 없어진다.
두바이를 다녀가는 모든 분에게 가능하면 장점만을 이야기하려 했다. 왜냐하면 좋은 것을 배워서 가시길 원했기 때문이다. 가장 개방되어 있다는 두바이도 살다 보면 문제가 많고,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많다. 하지만 우리가 그것을 배울 필요는 없고, 그들이 잘하고 있는 것을 찾아내서 알려드리고 싶었다.
20년 동안 두바이 공항에서 환영을 하고, 배웅했던 많은 분이 과연 무엇을 마음에 담아서 돌아가셨을까. 또한 한국을 방문하고 떠나는 외국인들은 우리에게서 무엇을 배우고 가는지 궁금하다.
* 오픈 스카이 정책(Open Sky Policy)
두바이의 오픈 스카이 정책(Open Sky Policy)은 항공 자유화 정책의 일환으로, 특정 국가의 항공사가 두바이 노선에 자유롭게 취항할 수 있도록 하는 정책입니다. 이는 두바이를 허브 공항으로 활용하여 항공 운송 및 관광 산업을 활성화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