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담수화 공장
'이제 두바이는 망했다!’
꿈속에서 나는 그렇게 소리쳤다. 버즈 알 아랍(Burj Al Arab) 호텔 중간이 동그랗게 신비한 푸른빛을 내며 타고 있었다. 두바이 상징이 불이 난 것이다. 잠에서 깨어 마음을 진정시키려 집 밖으로 나와 버즈 알 아랍을 바라보았다. 내가 살던 집에서 큰길만 나오면 멀리 그 호텔을 볼 수 있었다. 현실의 호텔은 아무 일 없이 조용했다. 이상한 꿈이었다.
꿈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내 전화기가 불이 난 듯 울리기 시작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바라카 원자력 발전소(Barakah Nuclear Power Plant)'를 계약하기 위해 아부다비에 온다는 것이었다. 후보 시절에는 일반인인 내가 가이드를 하였지만 이번엔 그분 근처에도 갈 수 없었고, 관계자들의 일정을 의뢰하는 것이었다.
그 순간, 예전에 카이스트를 방문했을 때 본 장면이 떠올랐다. 물속에서 스스로 열을 내며 신비한 푸른빛을 발하는 우라늄 연료봉이 생각났다. 내가 꿈에 보았던 불꽃은 우라늄의 그 빛과 같았다. 신비로운 푸른빛이 원자로의 핵반응을 상징하는 장면이었다. 내 꿈이 원자력 발전소 계약을 예고해 준 것이었다.
신문은 바라카 원전 수주를 대서특필했고, 대규모 공사가 시작되었다. 혹시 그 근처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싶어 직접 현장을 찾아갔다. 두바이에서 아부다비까지 145km, 자동차로 1시간 반, 아부다비에서 바라카까지 280km, 4~5시간 정도 걸렸다. 가는 길은 좁고 사우디아라비아 국경으로 가는 큰 화물차들이 줄지어 가고 있어 속도를 낼 수가 없었다. 오른쪽은 바다, 왼쪽은 사막의 연속으로 모래바람과 뜨거운 햇빛이 사람을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현장에 가까이 접근할 수도 없었지만, 철책 너머로는 아무것도, 사람의 인기척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 곳에서 20년의 공사가 이루어지는 것이었다. 공사가 한참 진행되고 삼성 건설의 한 임원이 현장을 방문해 직원의 노고와 외로움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렸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어느 공사장이나 힘들겠지만. 중동의 공사장은 사막과 숙소뿐이다. 나는 그 삭막함을 덜어주기 위해 주말마다 현장 직원들이 두바이를 방문해서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진행했었다. 힘든 상황을 겪고 16년이 지난 지금 4호기까지 완공하여 시험 운전 중이라고 하니 고생했던 모든 분께 박수를 쳐 주고 싶다.
1970년대 중학생 시절, 지금은 과학이라고 부르지만, 그때는 물상 시간이었다. 선생님께서 “바닷물을 단물로 만들 수만 있으면 큰 부자가 될 수 있어”라고 하셨다. 우리나라는 ‘금수강산’이고 물이 많은 나라인데 무슨 물이 더 필요해서 바닷물을 단물로 바꿀 필요가 있을까 생각했었다.
30년이 지난 후 그것이 현실이 되었다. 나는 두바이에서 바닷물을 담수화한 물을 쓰게 되었고, 그 공장을 방문하기도 했다. 최근 중동의 여러 나라와 아랍에미리트 연합(UAE)의 담수화 공장 대부분이 한국 기술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 공장에서 생산된 물은 품질이 좋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예전 사우디에 살 때 설거지하고 나면 소금기가 남아 그릇에 흰점이 생기고, 또 남편이 가까운 나라에 출장을 다녀오면 머리카락에 소금기가 있어 마치 뻣뻣한 빗자루 같았다. 하지만 한국 기술로 만든 담수는 우리가 쓰는 수돗물과 차이가 없다.
푸자이라(Fujairah)*의 담수화 공장 현장을 갔을 때, 협력 업체 소장은 두산 중공업을 극찬했다. “앞으로 어떤 프로젝트를 하든 두산중공업과 함께하고 싶습니다”라는 말을 해서 일행에게 감동을 주었다. 담수화 설비의 핵심인 터빈, 보일러, 증기 발생 장치들은 계약 체결과 동시에 창원 공장에서 생산되어 현장으로 운송되었다. 운송 시 새벽에 가로수를 뽑았다 다시 심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공사 기간을 1년 이상 단축할 수 있었다고 했다.
선생님의 꿈같은 이야기가 한국 기술이 되어 전 세계에 수출되고 있다. 1970년대, 우리는 프랑스 회사의 하청업체로 사우디 담수화 사업에 참여했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기술을 발전시켰고, 마침내 세계 무대에서 경쟁력 있는 수준까지 도달했다. 우리는 우라늄도 없고 석유도 없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사람밖에 없다. 세계에서 원자력 발전소, 담수화 공장을 설계하고 만들 수 있는 기술을 가지고 있는 나라는 한국 프랑스 일본 스페인 정도라고 한다. 너무 훌륭하지 않은가.
1963년 독일 광부, 간호사 파견을 시작으로 월남전 참전, 중동 붐에 이어 건설, 의료, 군인, 교육 분야를 거쳐, 이제는 부가 가치가 높은 K-Culture로 발전하였다. 60년 만에 한국 사람들이 이룬 업적이다. 물론 아직 개발해야 할 분야도, 성숙해야 할 과제도 남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자부심을 가질 자격이 있다.
배우고자 하는 의지, 그 배움을 자기 것으로 만들고 다시 새로운 기술로 창조해 내는 능력. 우리 민족에게는 그 DNA가 있다. 앞으로도 잘 해낼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푸자이라(Fujairah):푸자이라(Fujairah)는 아랍에미리트 연방을 구성하는 7개 아부다비, 두바이, 샤르자, 아지만, 푸자이라, 라스 알 카이마 토후국 중 하나이며, 페르시아 만이 아닌 오만 만에 접해 있는 유일한 토후국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