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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시험

by 고래씌 Nov 17. 2023


"내일은 출근시간 1시간 연기된거 알지?"

사무실 내 누군가 상기시켜주는 말로 어제가 수능시험일이라는 것을 알았다.

주변에 해당하는 사람이 없다보니 별다른 체감을 못했던 11월의 어느 목요일이었을 11월 16일 말이다.



나는 대학에 가고 싶지 않았다. 왜 가야하는지, 무엇이 하고 싶은지 목적성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나는 고3 때 전학을 했다. 집안 사정으로 부득이 이사를 하게 되어 고3을 앞두고서는 이례적이라는 전학을 하게 된 것이다. 나를 받아주고자 하는 학교도 별로 없었다. 어쨌든 수능공부도 왜 해야하는지 모르겠는데 낯선 곳에 적응도 해야한다니 앞이 캄캄했다.  


고3 첫 3월 모의고사에 처참한 숫자들을 받아들고 담임선생님과 면담을 했다.

"서울 촌년, 너 어쩌려고 그래? 원하는 학교 있어?"

"뭐 .. 어디 인서울 야간대학교나.. 아니면 뭐 지방대를 가던가 그래야할 점수 아닌가요."

되려 자포자기같이 덤덤하게 말하는 내게 불같이 화를 내셨던 선생님 얼굴이 생각난다.


목적이 없으니 낙담도 자괴감도 들지 않았다. 그렇지만 딱 하나 걸리는 것이 있었다.

바로 엄마다.

성당 활동을 누구보다도 화려하고 활발하게 했던 나다. 성당에 가기 싫어하는 자녀들을 둔 엄마 주변 성당 형님들이나 자매들은 성당에 열심히인 우리 자매들을 칭찬했다.

막상 대학에 갈 즈음이 되니 그런 내 활동이 되려 엄마에게는 독이 되는 건 아닐까 걱정이 들었다. 공부도 안하고 성당만 열심히 다닌애. 그런 수군거림이 들릴 것만 같았다.(어디까지나 나의 생각이다.)

그래서 남은 기간 동안엔 조금 더 열심히 공부를 했던 것 같다. 여전히 어떤 목적은 없지만 엄마를 창피하게 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 하나로 수능날을 맞이했다.


수능날을 떠올리면 늘 생각나는건 도시락이다.

별로 선호하지 않는 급식만 먹다가 오래간만에 엄마가 싸주시는 도시락을 먹을 수 있어서 들떠있던 나다. 일찌감치 수능날 내가 좋아하는 동태전과 호박전을 넣어달라고 엄마에게 주문한 상태였다.

그리고 든든히 먹어야하니 고기반찬도 주문했다. 날씨가 쌀쌀하니 안먹던 국도 싸주면 좋겠다고 했다.

그렇게 주문을 하고 보니 나는 보온도시락을 2개나 싸가는 수험생이 되었다. 한 책상에 내 도시락 반찬통을 다 펼수도 없었다. 조금 많이 부끄러웠던 기억이 난다. 아침도 야무지게 먹었다. 속이 부드럽고 편안하려면 청국장을 먹어야할 것 같다고 주문했다.그리고 비장하게 평소 입지도 않던 교복을 정복으로 차려입었다. 넥타이에 조끼까지 입고서-

마치 무슨 의식을 하듯이.


이 모든 먹고 입고의 의식은 시험 내내 불편감을 주었다. 배가 든든하니 잠이 왔고, 배가 든든하니 옷이 옥죄었다. 그냥 오바하지 말고 평소 입던대로 교복치마에 맨투맨티하나 입고 갔더라면 편안했을텐데 말이다. 하하하.


그리고 시험장 앞에서 나눠주는 아웃백 언니들의 양송이 스프도 야무지게 얻어먹고 들어갔다. 담임선생님이 시험 잘보라고 인사를 하시는데도 양송이 스프를 받지 못할까봐 안절부절했다.

나도 내가 왜 그랬는지 이해가 잘 가지 않는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제2외국어를 보는 학생들은 5교시까지 남아있었어야했는데-

제2외국어가 끝나자마자 교문 빗장이 열리면서 제일 먼저 우리엄마가 내 세례명을 부르며

양팔을 벌리고 달려오던 게 생각난다. 그때 그장면은 내 인생에서 인상적인 몇 장면 중 단연 최고의 장면으로 꼽힌다.

아마도 종일 나보다 더 마음을 졸이셨을 엄마다. 어쨌든 나는 엄마를 아주 자랑스럽게는 아니지만 부끄럽지는 않을 대학에 진학했으니 학기 초의 면담이 무색하게 할 노력은 다했다고 생각한다.  


올 수능시험이 끝났다. 얼마나 홀가분할까. 아닌가?

우선은 수능날이 지나갔다는 것에 날아갈듯 해방감이 들었으면 좋겠다. 점수나 그 밖의 일들은 차치하고서라도.

그때의 내 세상에서도 수능. 엄마에게 창피함을 주고 싶지 않던 그 대학 합격증이 너무나도 중요했기때문에 그 마음이 어떨지 감히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하고 싶다. 그렇지만 수능이 다가 아니라는 뻔한 말이 불쑥 떠오르는 것도 어쩔 수가 없다.  

지난 시절을 다 지나온 사람으로서, 이제는 로또 당첨이나 꿈꾸는 낭만적인 회사원이 되었지만,

여전히 삶 속에 크고 작은 수능시험이 도처에 나를 기다리고 있고, 한 시험을 넘기면 또 다른 시험이 시작되는 그냥 인생이 그런 날들의 연속인가보다 받아들이며 나이를 먹어가게 되는 것 같다고 말해주고 싶다.  

그저 이제 한고비의 수능을 치뤄낸 많은 친구들이 스스로에게 큰 위로와 지지를 해줄 수 있기를 바랄뿐이다.


니네 진짜 개멋있어! 좀 놀아도 돼!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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