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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바지

by 고래씌 Aug 31. 2023

아마도 지난 겨울 언제쯤 끄적여두었던 것 같은 글을 다시금 꺼내어 적어본다.


겨울이지만 날씨가 제법 포근한 출근길 아침.

그래도 겨울은 겨울인지라 원피스 사이로 사늘한 바람이 스몄다.


'아 겨울용 속바지를 새로 샀어야했는데.'

지난 여름 수술 후 두달의 병가를 마치고 내 집으로 돌아갈 채비를 할 즈음 엄마는 내게 BYC 직영점에 가자고 했다.


인견 속치마를 사입었는데 너무나 시원하고 몸에 휘감치지 않아 참 좋았다는 말과 함께,그래서 꼭 너희에게 사주고 싶었다며 거듭 이야기를 했었다.


'내가 나이가 몇인데 엄마는 내 손을 끌고 와 속바지를 사주려고 했을까?'

원피스 안에 긴 슬립을 입는다던가 하는 장면을 드라마에서 종종 봐왔는데 내가 입는 옷들은 굳이 슬립을 입지 않아도 민소매와 면속바지를 챙겨 입어도 충분할 만한 그런 옷들이 대부분이다.


가끔 정장 차림을 해야할때, 너무나 더운 여름날에는 하나쯤 준비해둘걸 싶었던 때도 있지만 굳이 생각하지 않았던 일이었다.


때문에 엄마 손을 잡고 속바지를 사러가지 않았다면, 아마도 나는 그 여름에도 속치마며 속바지며 아무 생각 없이 지냈을터였다.


그날, 속치마며 속바지며 필요한 것들을 사주고는 흐뭇해 하는 엄마가 귀여웠다.

오늘 아침 버스 정류장에서 문득 그날의 엄마가 생각났다.


이런 것들이 필요하지 않을까? 미리 앞서 생각해주는 엄마.

마흔을 앞둔 딸이 속옷 하나도 제대로 챙겨입지 못하고 다니는게 아닐까 늘 걱정하는 엄마.

그게 본인이 잘 가르치지 못하고 지나간 탓은 아닐까 늘 돌아보는 엄마.


​엄마의 돌봄이 나는 아직도 좋다.


당연하지 않은, 가끔은 조금 성가신 이런 엄마의 참견이 나는 참 정말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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