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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건우 May 07. 2016

여우와 포도 (3)

나는 포도를 어찌할까?

잡념이 넘쳐납니다.


포도 사진 감상  https://youtu.be/USj5j9Lyz30


여우와 포도 1(원판)https://youtu.be/Q3X3hjisCX0

여우와 포도 2  https://youtu.be/vUFeSXV5sJA

여우와 포도 3  https://youtu.be/1pYiqxQ5zrU

여우와 포도 4  https://youtu.be/wmQyVfh-2bY

여우와 포도 5  https://youtu.be/B1PVn7dlCSI


여우와 포도밭  https://youtu.be/dw-edEevaSY


나는 15만 종류가 넘는다는 포도 중 몇 종류나 먹어봤을까?

글을 시작하기 전에 이용할 포도와 관련된 여러 가지를 찾아보았는데

종류, 포도주, 생산량, 예쁜 이미지, 포도 관련 기네스 기록, 포도당, 포도상구균 등의 내용에서 그다지 재미있는 것이 없었다.

그러던 중 눈에 아주 익숙한 사진 한 장을 찾았다.

아주 익숙한 사진, 미국 캘리포니아주 소노마 카운티의 한 포도농장 전경

 1996년 미국 사진작가가 차를 타고 지나가다 포도밭과 하늘이 조화롭게 보이는 이 곳을 하늘색이 너무 예뻐 차를 세워 찍은 사진이라고 한다. 그 후 그 장소를 다시 찾아가서 찍었지만 이러한 장면을 사진에 담을 수 없었다고 한다.

 나는 텔레토비가 뛰어다닐 만한 잔디밭인 줄 알았다.


느슨하고 여유롭게 생각한다.


 내가 읽은 많은 수의 이솝 우화에는 비슷한 동물들이 여러 이야기에서 등장한다. 개, 여우, 늑대, 고양이, 뱀, 개미, 베짱이, 토끼, 거북이, 당나귀, 사자. 약 6세기 경에 살았던 노예이자 이야기꾼 아이소포스(이솝)가 동물들을 의인화하여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그 시절 그 사람이 가지고 있던 동물에 대한 이미지가 지금까지도 이어져 온 것이 참 대단하다. 욕심과 나눔, 어리석음과 현명함, 게으름과 부지런함, 고집, 거짓과 진실, 협력과 같은 추상적 이미지를 동물에 빗대어 사람의 삶에 대해 생각하게 한 것은 천천히 생각해 보면 어른이 된 나에게도 많은 생각을 준다.

 그중 여우와 포도 이야기를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여우와 포도 이야기는 조금 다른 주제로 2가지가 있다. 아주 짧게 이야기하면 '높이 매달려 있어 먹을 수 없는 포도를 바라보며 저 포도는 엄청 실 거야 라고 말하는 여우 이야기'와 '배고픈 여우가 포도밭에 포도를 먹기 위해 작은 울타리 구멍에 들어가기 위해 굶고, 들어가서 실컷 먹었지만 나오기 위해 다시 굶어서 들어가기 전이나 나오기 전이나 배고픈 똑같구나를 느낀 여우 이야기' 가 있다.  이 두 가지 이야기를 나에게 비춰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먹고 싶어 하는 포도를 보며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떻게 행동하는 여우인가?

 우화 속 여우와 같이 행동하는가? 나만의 판단/행동 방식이 있는가?


포도가 먹고 싶은 여우.

                                         개소리와는 다른 여우소리          https://youtu.be/v2AKBzvHIGQ

 포도를 바라보는 나는 어떤 여우일까? 어느 때 어떤 여우처럼 행동하고 사고하는가?

 <1번 여우>  

   먹고 싶은 포도(얻고자 하는 것) 앞에서 자신이 없어서, 또는 나의 노력으로도 먹을 수 없을 거야 라고 판단해서, "저 포도는 실 꺼야"라고 말하며 도전을 피하거나 노력의 의미 없음을 스스로에게 각인시키는 여우

 <2번 여우>

  배도 고프고 포도가 너무 먹고 싶은 간절함으로 울타리를 통과할 수 있을 정도로 더욱 굶어서 결국은 울타리 안으로 들어가 포도를 배부르게 먹는다. 하지만 다시 바깥으로 나오기 위해 또 굶어야 하고 울타리 밖으로 나와 들어가기 전이나 나와서나 배가 고프기는 마찬가지 임을 깨닫는 여우


  1번 여우는 포도를 얻기 위한 더 많은 노력 부족이 아쉽다. 몇 가지의 노력으로 포도를 따먹는 성공을 할 수도 있을 텐데. 왜 포도 탓을 하지? 내가 못 먹을 것이라고 해서 굳이 먹어보지도 않은 포도를 실 것으로 말하거나 생각할 필요는 없잖아. 신 포도인지 단 포도인지는 먹어봐야 알지. 시다고 말해 놓으면 다른 여우도 그리 생각할까? 결국은 먹어본 여우만 그 맛을 알고 배도 부르겠지?

  2번 여우는 포도를 먹기 위한 노력이 참 가상하다. 먹고 싶은 포도를 위해 더 굶다니 그렇게까지 먹어야 할 포도였을까? 왜 그 울타리 안의 포도를 먹어야만 했을까? 다른 먹이를 찾아봤다면 굶는 노력보다 쉽게 찾아내지는 않았을까? 맛있게 먹어 봤으면 됐지 끝내는 먹고 나와서 허무함을 느끼다니 그것이 여우가 느낀 깨달음인가? 적절한 깨달음인가?


 나라면

 먹고 싶은 포도가 있다면 먹어야 한다. 한 송이를 모두 못 먹더라도 한 알이라도 먹어야 한다. 더 높이 뛰어보고 가지를 흔들거나 나무를 오르고 쓰러뜨려서 라도 먹겠다.  울타리를 뛰어넘거나 구멍을 키워서 라도 먹겠다. 나를 희생하여 굶는 방법을 택했다면 적어도 그 구멍 안으로 들어가 먹고 나서 다시 굶어 나왔을 때 허무함을 느끼지 않을 것이다.

 혹시 더 높이 뛰어도 닿지 않고 가지를 흔들어도 떨어지지 않으며 나무를 오르지 못하고 쓰러뜨리려 해도 끄떡없다면 그때는 스스로 그냥 한 마리의 먹고 싶은 포도를 먹지 못한 배고픈 여우로 생각하면 된다. 포도를 먹지 못했다고 토끼가 되어 버린 것도 아니고, 황새로 바뀌는 것도 아니다. 또 배가 홀쭉해져 울타리를 다시 나온 후 "그 포도 참 맛있었는데, 이젠 뭘 먹으러 가지?"라고 말하며 다음 먹이를 찾아 가면 안될까?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내가 포도를 바라보며 저 포도를 먹어? 말고 그냥 가? 만을 선택하는 것이다. 우화 속에서는 다른 내용이 없었으니 각 이야기 속 여우의 선택을 최선의 선택이라 생각한다면 그냥 간 1번 여우는 못 먹은 포도에 대한 미련만 버리면 되는 것이고, 맛있게 먹고 나온 배고픈 2번 여우는 굶는 노력이 있었으니 '먹어 보기도 하고 다시 나오기도 하고 손해 본 것은 없군.' 배부를 때의 행복만 기억하면 되는 것이다.


 내가 포도를 바라보고 먹고 싶다는 상황에서 그것을 먹는 선택을 하든 그냥 가는 선택을 하든 그 판단은 지금까지의 내가 알고 생각하는 틀 안에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다만 타인의 권유이든 다른 상황에 따른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했다면, 빨리 "그 선택도 내가 한 것이다"라고 바꾸는 것이다. 다른 이유를 들어가며 선택의 책임을 떠넘기다 보면 선택의 결과가 나타나기도 전에 먼저 좋지 않은 결말의 이유를 나 자신이 아닌 다른 곳에서 찾게 되는 것 같았다.

 내 앞에 놓여있는 수없이 많은 선택에서 좋은 결말이든 좋지 않은 결말이든 나의 선택에 의해 벌어진 것을 기억하며 좀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는 나의 생각의 틀을 만들어 가는 것이 내게 필요한 것이다.




예시

<1> 짜장면을 먹을 것인가? 짬뽕을 먹을 것인가?

<2> 짜장면을 먹을 것인가? 짬뽕을 먹을 것인가? 짬짜면을 먹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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