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데없는 오지랖은 그만 넣어두세요

내 말은 줄이고...

by 윤작가

"고쳐주고 싶겠지만 고치려고 하지 말고, 간섭하고 싶겠지만 간섭하지 말자. 숨은 이야기까지 들으려고 한다는 것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수용한다'는 의미다."


- 말그릇, 김윤나, 카시오페아


이 문장, 아니 이 책을 읽으며 그동안 내가 다른 이들에게 말했던 어투와 내용, 깊이는 말할 것도 없고 듣는 태도와 감정, 입에 밴 습관적인 말하기까지. 부끄러운 게 한두 개가 아니다. 고민을 토로하는 지인들에게 충고한답시고 "이래라, 저래라." 단정지어 말한 적이 어디 한두 번이어야지. 괜한 오지랖이 발동하여 우위에 서 있는 듯한 착각은 얼마나 자주 일어났던지. 이 책을 읽으며 떠오르는 기억에 다시 아찔해진다.


저자는 코칭심리학자로 오랜 기간 강의를 해왔다. 그러면서 사람들이 하는 말이 관계에 미치는 영향을 보며 '말 그릇'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소개한다. 누군가가 하는 말은 그 사람이 가진 말 그릇의 상태에 따라 말의 수준과 관계의 깊이가 천차만별로 달라진다고 설명한다.


흔히 듣기에 좋은 말을 해서 사람 좋다는 소릴 들을 수 있지만, 개인은 각자의 감정과 공식에 따라 말하고 듣는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조카가 블럭으로 팽이를 만들었다. 그리고 내게 그 팽이를 잘 보관하라고 부탁했다. 며칠 후 청소를 하다 탁자 위에 놓인 팽이를 떨어뜨린 내게 조카는 이렇게 말했다.


"다 이모 때문이야!"


자신이 애써 만든 것이 망가져서 속상한 것을 이모에게 책임을 미루는 것이다. 이럴 때 저자의 주장을 적용하면 조카에게 이렇게 이야기해줄 수 있을 것이다.


"네가 애써서 만든 것이 망가져 속상하겠다. 속상할 때는 화내지 말고

속상하다고 하면 돼. 이모도 네가 열심히 만든 것을 일부러 망가뜨리려고 한 게 아닌데.

조금 더 조심해서 청소할 걸... 미안해!"


우리는 대화를 하다가 자신도 모르게 욱 하고 터져버리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그만 말이 그릇에서 빠져나오는 경험을 자주 한다. '호수형'에 가까운 말하기 유형을 가진 나는 평소 차분하게 상대방의 말을 듣고 귀를 기울이려고 애쓰지만 원하는 방향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거나 억울한 감정이 들면 그만 폭발할 때가 있다.


"선생님, 그게 다 부정적인 생각이에요.

그런 생각을 자꾸 하면 더 우울해지잖아요!"


아무 것도 하기 싫고 만사가 귀찮다는 지인에게 충고랍시고 오지랖 넓게 직언과 충고를 잔뜩 해버렸으니 상대방은 나의 말을 들으면서 얼마나 섭섭하고 답답했을까? 오히려 나의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잘 받아준 상대가 오히려 말그릇이 큰 사람이 아닌가 뜨끔해진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수용한다는 것은 뻔히 보이는 결론이 짐작됨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의 기분을 헤아려 충고나 훈수를 두기 전 잠잠히 그 모습을 바라봐주는 것, 인정해주는 것을 뜻하는 것이리라. 작가가 말했듯이 우리에게는 '교정반사'라는 게 있어서 상대의 잘못을 바로 고쳐주고 싶은 본능이 있다. 좋은 마음으로, 선한 의도로 해준 말임에도 불구하고 상대의 표정이 어두워지고 행동의 변화가 없다면 그때 우리는 말을 하는 대신 조용히 들어주는 타이밍임을 빨리 눈치해야 한다.


현장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선생 노릇하느라 쉽게 문제점을 지적하고, 아이들의 감정에 공감해주는 언어 대신 자로 대듯 딱 부러진 해결책만 제시하기 바빴던 내 모습이 아른거린다. 때로는 그런 선생님의 모습 때문에제자들은 더 입을 닫게 되고 긴장했을지도 모르겠다. 이 책을 읽으니 미안해지는 사람은 점점 늘어나고 입을 열기가 조심스러워진다. 이제는 솔직하고 자유로운 발언만 최고라고 자부할 게 아니라 말그릇을 키워 상대의 진심을 열게 하는 진정한 소통을 하고 싶다.


'말 한 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는 속담은 빈 말이 아닌 것이다. 단지 '말재주'가 좋아 남의 이목을 끄는 사람이 아니라 적절한 때에 조리있는 말로 말의 향기가 느껴지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화가 날 때는 심호흡으로 그릇을 한번 더 키운 후 이야기하고, 상대의 말에 바로 발끈할 게 아니라 숨은 이야기까지 들을 수 있는 귀를 가져보자.


입에 밴 말을 처음부터 고쳐나가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생각하고 말함으로써 누군가는 더 웃게 되고 행복의 순간은 늘어갈 것이다. 나의 마음 또한 그리될 거라 믿는다. 아이가 태어나서 하나의 온전한 인격체로 성장하기까지 무수한 시간과 노력이 들듯 우리의 말과 언어, 들음에도 훈련이 필요하다. 누군가와 말이 안 통한다고 툴툴대기 전 나의 말그릇은 어느 정도인지 헤아려보는 지혜가 모두에게 필요한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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