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 시원한 변호
"남들보다 민감한 성향은 궁극적으로 없애야 할 어떤 결점이 아니다. 당신이 남들보다 민감하다면,
자기 자신에게 쉴 수 있는 시간과 더 많은 관심과 돌봄을 제공해야 한다.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수록 남들과 어울리게 위해 더 적은 에너지를 쓰게 되고, 그만큼 더 강한 사람이 될 수 있다."
- 센서티브, 일자 샌드 지음, 김유미 옮김, 다산, 2017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에서 이 책에 대한 소개를 본 것 같은데 지인이 카톡으로 사진을
보내왔다. 놀랍게도 이 책의 사진을 말이다. 읽으라는 하늘의 계시인가? 이미 "콰이어트"라는 책을 통해
내향성에 대한 위로와 이해를 얻었던 나는 비슷한 이야기겠지 싶어서 당장 읽어보자는 생각은 못 했다.
그런데 평소 책을 거의 읽지 않는 지인이 나에게까지 이 책에 대한 사진을 보내고 괜찮은 것 같다고
한 걸 보니, 이 책이 대중적으로 영향력이 있는 것 같아 읽어보기로 하고 도서관에서 빌려왔다.
나는 어릴 적부터 반응성이 큰 아이였다. 이 책에 의하면 '반응성이 매우 높다'는 표현은 미국의 임상
심리학자 제롬 케이건이 사용한 것으로, '새로운 인풋과 변화에 노출되었을 때, 더 높은 정도의 각성이
감지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 쉽게 말해서 불안정하고 익숙하지 않은 상황뿐만 아니라 긍정적인 경험
에서도 남들보다 훨씬 더 큰 반응을 보인다는 말이다.
어머니의 말씀에 따르면 나는 갓난 아기 때부터 조금 민감했다고 한다. 눕혀 놓으면 안아달라고 끙끙.
그래서 안아주면 웃으면서 좋아하고. 그런 시기가 어느 정도 지나면 안는 것으로는 만족 못 하고 앉혀 주면
좋다고 하고. 그러다가 밖으로 나가야 만족스런 표정을 짓고. 그런 식으로 몇 단계를 다 거쳐가면서 꼭 반응을 하더란다.
조금 커서는 남들과 얼굴을 마주치는 것조차 부담스러워할 정도로 수줍음이 많고 부끄러움이 많아
학교에서 이야기도 별로 하지 않는 아이였다. 그러나 나를 바라본 선생님들은 대부분 신중한 아이로 나를
평가했고, 친구들은 또래에 비해 생각이 깊고 사려깊다고 이야기했다.
'센서티브'를 지은 일자 샌드는 자신의 성향이 민감하다는 것을 알고 그게 고쳐야 하거나 병적인 요소가
아닌 5명 중의 1명 꼴(케이건 연구 결론, 그러나 무작위 표본일 때는 다른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고 함)인, 지극히 정상이며 특별한 감각이라고 이야기한다. 사실 어릴 때부터 나서기를
싫어하고 여러 사람과 교류하며 활동하는 것보다는 혼자 무언가를 하는 게 더 편하고 좋았던 나. 많은 사람들
속에서 피상적이고 일반적인 이야기를 나누면 쉽게 지루해지고 의미가 없다고 느꼈다. 그래서 나는 단체 활동을 별로 선호하지 않는다. 홀로 사색하고 책을 보고 바람을 느끼며 꽃을 보거나 누군가와 같이 있지 않아도
충분히 편안하고 행복해한다.
"살 찐 사람들은 성격이 좋지. 마른 사람들은 좀 예민해." 라는 아빠의 말에 나는 속으로 '아닐 걸요,
살이 쪄서 좀 푸근한 인상을 줄 뿐이고 말랐다고 다 예민한 것도 아니고. 아빠는 정말 편견이 가득해.'
라고 어린 시절 생각했다.
물론 쉽게 지치고 피로감을 느껴서 자주 쉬어야 하고 혼자 몰입하는 시간을 중요시한다. 그래서 내가
책을 읽거나 글을 쓸 때, 아직 마무리가 끝나지 않았을 때 밥을 먹으라고 어머니께서 부르시면 곧장
나서지 않았다. "어디 가서 자기 밥은 자신이 챙겨야 한다."는 어머니의 지청구를 뒤로 하고서도.
평소 행동이 느리다고 '거북이'라는 핀잔을 가족에게 들을 때도 있었고, 다른 친구들의 고민을 나의
고민처럼 안고 너무 쉽게 감정이입이 되곤 했다. 사회 문제에 관심이 많고, 불의를 고쳐나가고
싶으며 다른 사람이 말하지 않아도 그들의 기색이나 기분 변화가 빠르게 감지된다.
이런 나의 성향이 그저 내향적 기질에서 기인한 거라고만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나는 매우 민감한
사람인 것이다. (내향성과 민감성은 다르다고 한다.) 그래서 시끄럽고 여러 사람들 속에서 활동하는
것보다 조용하고 혼자 작업하는 것을 더 선호한다. 입이 무겁고 다른 이들의 말에 공감하고 논쟁을 즐기지
않으므로 뒤쳐지거나 왕따 당하는 친구들과도 말을 주고 받고 남들에게 휘둘려서 무조건 따라가기보다는
내 소신대로 행동하는 편이다.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경향도 깊어서 위험을 빨리 감지하고 최악의 경우까지 생각해본다. 연상이 쉽게
이루어져서 공포 영화를 보면 몇 달간 영화 장면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고 마치 현실로 일어날 것 같은
불안감이 든다. 내면 세계를 중요시하고 감정이 풍부한 것, 예술적 성향이 있는 것 등 나의 삶의 태도와 자세가 민감성과 깊은 관련이 있었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면서 나를 더 자세히 들여다보고 발견해가는 느낌이 든다.
민감하지 않은 이들에게 '나는 이런 사람이니까 이 점은 조심해주세요.'라고 나 대신 이 책이 변호를 맡아주는 것 같아 속이 시원하기도 하고.
요즘은 자기계발 열풍에 힘입어 적극적이고 대중에게 주목을 받으며 뭔가 성취 지향적인 사람을 성공한
사람들로 보는 경향이 짙다. 말없이 은근하게 자신의 길을 가는 이들이 마치 우둔한 것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민감하다는 것은 단순히 예민하고 까다롭고 같이 생활하기 불편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남들보다
더 통찰이 깊고, 창조적이고 열정적인 면이 많다는 것을 뜻한다.
물론 새로운 환경이나 불안정한 조건 속에서 더욱 더 쉽게 힘들어하고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피로감이
몰려오기도 하지만, 민감한 것은 여러 가지 성격 유형 중에 하나일 뿐이지 고쳐야 하는 병이 아니다.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나는 해방감이 들고, 나에게 이렇게 '반짝반짝 거리는' 요소를 주신 창조주에게
감사한 마음이 든다. 나처럼 민감한 성향으로 다른 이들과의 관계 속에서 쉽게 지치고 휴식이 많이 필요
하며 남들보다 더 높은 반응성으로 고민하는 이들이 있다면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아마 자신을 더욱 더 사랑스럽게 여기고 있는 모습 그대로 충분히 소중하다는 것을 깨닫게 될 테니까.
"자, 이제 우리 모두 자신을 있는 모습 그대로 인정해볼까요?
남들과 똑같아져야 한다는 부담감은 내려놓고 이 책에서 말한 대로
우리에게 얼마나 특별한 능력이 숨어있는지 알아보자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