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옷 다른 느낌
세대 차이일까?
모든 집이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명절을 앞두고 어머니는 파김치를 담그신다. 가정일 엄청 싫어하는 딸이지만, 명절에는 콩나물도 다듬고 어머니 심부름도 하고 곁에서 보조 역할을 한다. 그러면 전통적인 가치관을 가진 어머니는 좋아하신다. 신이 나신다. 그런데 나는 이 일이 하나도 즐겁지 않다.
"저는 정말 집안일이 싫어요!"
다시 한번 깨달을 뿐이다. 식구들 입에 음식 들어가는 게 낙이고 보람인 어머니와 사고방식이나 생활패턴까지 비슷한 딸인데 이상하게도 요리에는 큰 관심이 없다. 즐거움이 없다. 생존 수단으로 식사를 하는 것일 뿐, 즐거움이 아닌 일같이 여겨진다.
내게는 불청객!
봉황(어머니)의 큰 뜻을 참새(나)가 어찌 알랴마는 육류나 비린내 강한 생선을 비위 약한 나는 싫어한다. 그 식감도, 냄새도 취향이 아니다. 어릴 적부터 해물을 좋아해서인지 어디서든 새우향이 감돌면 기분이 좋아지지만, 고기는 봐도 아무런 감흥이 없고 도리어 기분이 상한다. 가깝게 지내는 언니가 LA갈비를 선물해 줘도 속으로는 반갑지 않았다. 이런 나이다. 아직 철이 없다.
어머니는 바닷가에서 커서 그런지 생선이 들어오면 반가워하신다. 사실 생선을 손질하기도 쉽지 않거니와 자주 먹을 일이 적은데, 냄새에서 벌써 질려버린다.
횟집을 하시는 어머니 지인이 전어를 주셨다고 한다. 평소 더운 날 생선 다듬고 찬거리 준비하느라 덥고 힘들어 보여 커피를 몇 번 건넨 모양이다. 그 고마움을 생선으로 갚으셨단다. 횟집 사장님에게 좀 다듬어 달라고 해서, 손질까지 되어있는 상태로 집에 가져와 칼질을 했다. 꼬들꼬들해질 때까지 선풍기 바람으로 말려야 한다며 집안에 이 아이들을 두니, 예민한 내게는 고욕이다.
만약 우리 집이 시댁으로 바뀌고, 어머니가 시어머니였다면 어떻게 했을까? 상상은 자유!
좋아하는 것은 흥미가 생기지!
평소 채소나 과일을 좋아하기에 파김치는 언제든지 환영이다. 명절, 느끼한 음식을 많이 먹게 되기에 어머니는 마음먹고 잔파를 샀다고 한다. 이제 힘이 들어 직접 다듬지는 못하고 돈을 더 내고 다듬은 파를 사셨단다.
어머니 손끝으로 버무려지는 파김치는 예술 그 자체이다. 하나의 명화 같다. 노란 양동이에 갖가지 양념을 끼얹은 파가 돌아가며 춤을 춘다. 찬기에 나누어 담은 후 버리기 아까운 양념을 밥과 섞어 주먹밥을 만들면 꽤 근사한 간식이 된다.
어릴 적부터 집밥을 먹고 컸는데도 불구하고 요리에 흥미가 없는 것은 다른 데 흥미가 있다는 뜻이겠지. 어머니 기분보다 내 취향을 앞세워 말라가던 생선 친구(?)들은 냉동실에 들어가고, 기어이 책상에 앉아 노트북을 켰으니까, 나도 별난 사람이다.
그래도 이것이 행복
"일상적인 행복은 그날의 상황에 달려 있다. (중략) 반면 깊은 행복감은 조건과 무관하다. 그것은 주의력 문제다."
- 메리 파이퍼, <<나는 내 인생이 참 좋다>>
상황에 따라 행복이 달라지는 나는 일상을 살아가는 지극히 평범한 개인주의자이다. 반면 조건과 무관하게 주의력을 기울여 타인을 먼저 생각하는 어머니는 이타적 개인주의자다. 어찌 됐든 우리는 각자의 취향대로 행복을 추구한다.
사실 이런 어머니가 계시기에 내가 무탈한 것을 안다. 배부른 소리 그만하고 모든 것에 감사해도 부족한 처지인 것도 안다. 그럼에도 아직 철부지라 생선 냄새난다고 투정 부리고, 요리하시는 어머니를 찍기 바쁘고, 다 같이 모인 식구들 챙기기보다 생각났을 때 써야 한다며 혼자 자판 두드리는 나란 인간.
"신이시여, 아직 이 모양입니다. 죄송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