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키면 한다!
식재료 사서 다듬고, 씻고, 양념 만들어 상 차리는 순간까지. 수저 놓는 것조차 전혀 시키지 않던 어머니다. 어릴 적부터 시키지 않으셨다. 그래서 딸들은 미리 헤아리지 않고 안 시키니 안 한다.
어느새 칠순인 어머니는 힘에 부치는지 시키기 시작한다.
"소금 좀 가져와라."
"저기 있는 흰 통 좀 가져와라."
"설탕 있지? 그것 좀 가져와라."
"김치통 좀 열어라."
하기 싫지만, 시키면 하는 딸. 위생 장갑 낀 어머니 대신 그녀의 손이 된다. 설탕 뿌리고, 액젓 넣고, 간 보고 소금은 생략. 깨소금 뿌리고 김치통 바닥에 내려놓기. 이제야 겨우 한다. 콩나물 다듬기에 이어 요즘은 쪽파도 시든 끝자락을 자르며 손질하는 것을 돕는다.
파김치를 여러 개의 통에 나눠 담은 후, 남은 양념을 소금에 살짝 절인 배추에 묻혀 겉절이를 담근다. 다 집반찬이다. 이제 보니 위생 장갑이 아닌 고무장갑이네.
세월이 더 지나 어머니가 지금보다 힘이 빠지면 이런 과정을 즐기거나 구경할 틈도 사라질 것이다. 눈으로 보고 어깨너머로 익히고 사진으로 남긴다. 그저 자식 입에 제 손으로 만든 음식 넣어주고 싶어 잠시도 쉬지 않는 어머니, 나의 어머니여!
어찌 찬사가 저절로 나오지 않겠는가. 생전 아버지 복 없어도 어머니 복은 정말 타고났다. 고난 중에 만난 숨구멍이다.
지난주에 멀리서 손님들이 오셨다. SNS에서 알게 된 분들인데, 모두 다른 이들을 살갑게 챙기는 분들이라 기념이 될 만한 빵을 선물로 사드렸다. 그 이야기를 들은 어머니가 딸은 맛도 못 보고 선물만 했다고 '탑산 카스텔라'를 사가지고 왔다.
이런 사람이다. 말하지 않아도 배려해서 움직인다. 철부지 딸이 어머니 마음 닮아가려면 아직 멀었지만, 이런 어머니의 사랑을 받고 있으니 얼마나 큰 복인가.
그런데 오늘 아침, 어머니가 빵을 담은 봉지를 마음대로 잘라서 버리려 한다고 큰 소리를 냈다. 글쓰기에 필요한데 그것을 묻지도 않고 자르시면 어찌하냐고. 불효막심한 딸이다. 나란 인간이 아직도 이렇다.
"뭐 한다고 그 집 빵, 소문낼 일이라도 있냐?"
하면서도 잠잠히 있는 사람. 빵 한쪽을 잘라, "밤도 들어있어요. 드셔보세요." 하니 꿀차를 건네신다.
십 대도 아닌 청춘도 아닌 중년의 딸 뒷바라지에 허리 펴기 힘든 그녀는 딸의 투정에도 자식이 많이 먹으면 좋아한다. 얼굴에 살이 있어야 팔자주름 안 생긴다며 뭐라도 많이 먹으면 흐뭇해한다. 문제는 사진에 보이는 것만 먹는 게 아니라는 점이지. 마실 나가서도 간식거리 사 오고 집에 뭘 채워야 하는지, 손주들에게 필요한 게 무엇인지 사사로이 살펴보는 이. 이 무슨 복인지. 잘하자! 정신 차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