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만은 국가대표
현재 유제품, 견과류 포함해서 일체 군것질을 끊었다. 하루 걸러 먹던 라면도 산부인과 검진 이후 한 번도 먹은 적이 없다. 삼시세끼 흰 밥과 김치, 잎채소(배추, 상추)와 오이 정도를 먹는다. 어머니가 삶아놓은 달걀도 어머니가 없을 때는 흰자만 먹는다. 물도 동냥하듯 학원과 과외집 정수기를 통해 텀블러에 채워와서 마시기도 한다. 컨디션이 조금 안 좋을 때는 텀블러에 포도당 가루를 반 스푼 넣어 냉수에 타먹는다. 이런 실정이다.
5월에 있을 산부인과 초음파 검진이 기대(?)되는 것은 마치 국가대표처럼 식습관을 철저히 관리하기 때문이다. 금양체질은 간이 약해 고기류와 밀가루를 소화시키지 못한다기에 먹지 않는다. 소심하고 원칙주의에 가까운 사람인지라 아직까지는 잘 지키고 있다. 몸무게도 자연스럽게 2kg이 빠졌다. 카페인과 모과차를 제외한 대부분의 차가 안 맞다길래, 지인과 카페를 가도 입만 적시는 듯 마는 듯한다. 해물과 생선은 괜찮다고 해서 어머니가 요즘 생선 요리를 많이 하신다. 해산물 킬러에 가깝지만, 생선은 특유의 비린내 때문에 선호하지 않았다. 그러나 어머니는 횟집 사장님과 친구처럼 잘 지내기에 다른 이보다 저렴한 가격에 생선을 사 오신다. 그래서 싫든 좋든 먹어야 한다. 동생은 생선을 안 좋아해서 먹을 사람이 나밖에 없다.
중간에 동생이 사 온 붕어빵 두 개를 팥이 들었다는 핑계로 먹기는 했다. 속이 더부룩했지만. 한 번인데 어떠랴 싶어. 사실은 그냥 먹고 싶어서 먹은 거다. 어머니는 예전과 달리 요리하는 즐거움이 적어진 것 같다. "맛 좀 봐라." 하면서 겉절이나 해초 무침 등 갖가지 양념을 넣고 솜씨 부린 반찬을 맏이가 맛보고 엄지 척해줘야 하는데 이런저런 이유로 딸이 잘 안 먹으니 속상하실 거다. 그래도 우리는 인생 동지이기에 우선 수술은 막아야 한다는 일념으로 열심히 식생활을 관리 중이다.
어머니가 만든 쌈장에 마늘 다진 것도 들어가길래 향신료가 겁이 나서 쌈장도 살짝 찍는 둥 마는 둥 해서 거의 생식으로 배추와 오이를 씹어 먹는다. 처음에는 식재료 본연의 맛이 건강하게 느껴지고 기분도 좋았다. 배추는 고소하고, 오이는 수분이 많으니 시원했다. 그런데 인간의 간사함은 입맛에도 나타나서 슬슬 지겨워지기 시작한다. 한의원에서 8 체질 검사한 지 한 달도 안 되었는데도 이렇다. 인간이여...
그래도 몸은 가볍고 아직까지는 어지러움이나 피곤함도 덜하다. 살도 빠지고 몸도 가벼워지니 일석이조다.
가족에게는 조금 미안하다. 가족들이 좋아하는 여러 가지 요리를 같이 맛있게 먹어줄 수 없고, 건강 관리를 철저히 해야 하는 이모 때문에 조카들이 고기를 눈치 보며 먹으니 마음도 좋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게 희망이다. 누군가의 말처럼 절망에서 피어나는 꽃이다. 그래서 관리할 수 있는 상황에 그저 감사한다. 창밖으로 어둠이 내려앉을 때까지 책상 앞에서 이 글을 적고 있는 순간도 행복이다.
"이주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일어난 2차 세계대전으로 아버지를 잃은 텐 세르게이는 "굶지 않기 위해" 여덟 살부터 곡괭이를 들어야 했다. 그 시절은 시온고에서 가장 늦게까지 흙집에 살았던 박 알렉산드로의 삶에 자식에게도 말하지 못한 한을 새겨놓은 시절이기도 했다."
- <<뜨락또르와 까츄사들>> 중에서
스탈린이 일본 간첩이라고 고려인들을 강제로 이주시킨 정책 때문에 아무 잘못도 없던 그들은 척박한 땅으로 쫓겨나야 했다. 경상북도와 (사)인문사회연구소가 공동 기획하고 제작한 책을 읽고 있다. 그들의 삶을 글로 마주하니 내가 하는 고생은 고생 축에도 안 들어간다. 아니, 호강이다. 할머니 세대의 수난이 읽혀 먹먹하기도 했다. 그들을 기억하며 일상을 더욱 소중히 여기고 감사하자고 다짐해 본다.
이제 걸어야 한다. 집순이인지라 굳이 외출하지 않아도, 운동기구가 없어도. 집에서 맨발로 제자리걸음이나 스트레칭으로 몸을 푼다. 식사하고 10여분 걷는 것으로도 평소 운동량이 부족한 나 같은 사람에게는 운동이 된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기 위해 몇 년 간 갖은 노력을 다하는 국가대표처럼 검진 때 수술도 안 하고 약을 안 먹어도 된다는 말을 의사 선생님에게 듣기 위해 할 수 있는 노력을 하는 중이다. 충실하게 산다는 것은 거창하지 않다.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하면 된다. 계속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