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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신앙

가을에는 호박!

by 윤작가

나를 살린 두 단어, 엄마와 신앙!

위층 아주머니가 준 호박으로 전 만들 준비!

가끔 위층 아주머니는 텃밭에서 수확한 파나 가지, 호박 같은 먹거리를 준다. 이번에는 늙은 호박처럼 커다란 크기인데, 아직 색깔은 파란 호박이다. 미리 사놓은 쌀 부침가루 써서 호박전을 만든다. 물론 만드는 이는 내가 아닌 어머니.

"어머니, 50만 부 이상 팔린 책을 쓴 작가님이 장기 기증하고 죽었대요."

이야기를 들은 어머니는 안타까워하신다. 평소 어려운 이들을 가까이하고 사랑이 많았다는 가족의 말에서 좋은 사람이니까 장기 기증까지 하고 가셨구나 싶다. 30대의 이른 나이라서 더 애잔하기도...


맏이를 위해 남겨둔 두 조각을 동생이 홀랑 먹어버려 다시 부친 호박전.

평소 밥을 잘 먹지 않는 동생이 식사하러 와서 언니 몫의 호박전을 홀랑 먹어버렸다. 일부러 쌀 부침가루까지 사서 먹고자 한 마음이 조금 아쉬웠다. 어머니는 동생네를 위해 이미 한 접시 푸짐하게 내려준 참이었고.

다음날 냉장고에 썰어둔 호박 조각을 꺼내어 잘게 썰고, 다시 부친다. 급하게 만드느라 처음보다 바삭한 맛은 덜하지만, 어머니 손맛과 정성이 스며있어 맛있다.

"이성적으로 가난해도 감성적으로 빛나는 사람이고 싶다."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를 쓴 백세희 저자의 말대로 감성적으로 빛나는 어머니 덕분에 생전 노름꾼 아버지 밑에서 차곡차곡 쌓이는 트라우마 못지않게 하늘빛 사랑도 쌓인 게 아닐까 생각한다.

어머니는 대학을 나왔거나 사회적으로 이름난 분은 아니다. 하지만 신앙을 물려준 사람이자 딸이 시집은 못 갔어도 여태 따뜻한 마음 한 조각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사랑 준 대단한 위인이다. 오늘도 어머니 음식 찍고 이곳에 글 쓰는 이유, 단 하나! 나중에 그녀가 부재하더라도 기억하기 위함이다.


지난 주일, 막내 조카 생일 파티상! 물론 내가 차린 건 아니지만.

어머니는 나뿐만 아니라 동생과 조카들의 입맛까지 기억하고 챙기는 사람이다. 한 끼 식사를 못 하면 죽는 것처럼 걱정하는 사람. 생전 아버지로 죽음이 떠오를 때마다 남은 어머니가 걱정되어 지금까지 견뎠다. 그 와중 신까지 만날 수 있어 운이 좋은 편이었다. 애먹이는 아버지란 사람으로 죽고 싶었던 적은 많았지만, 병원 약을 처방받을 정도로 심한 우울증을 겪지는 않아서 우울증을 앓는 분들의 심경을 정확히 모른다. 모르기 때문에 함부로 속단할 수 없고 말할 수 없다. 각자에게는 나름의 사정이 있다. 남이 이래라저래라 할 수 없고, 해서도 안 된다.


스레드에서 어느 편집자가 백세희 저자의 죽음에 대한 기사를 올렸길래, 믿기지 않는 마음으로 찾아보았다. 거짓 뉴스인가 했더니 사실이었다. 책꽂이에서 그녀의 책을 꺼냈다. 오늘 다시 읽어볼 참이다. 5명에게 장기 기증까지 하고 뒷모습조차 아름다운 그녀. 장기 기증만으로도 참으로 따뜻한 사람이구나 싶다. 자신의 치부라고 할 수도 있는 경험담을 누군가를 위해 글로 써서 위로를 전했던 사람. 그 진심이 닿아 60만 부에 가까운 책이 팔리는 기적도 일어난 게 아닐까?


엄마와 신앙! 나를 살린 두 단어. 두 단어 외 한 글자도 나를 살렸다. 그것은 책이다! 사고 사도 또 살 책이 보이고, 쓰고 써도 또 쓸 글이 생긴다. 이만하면 행복하다. 비록 경제적으로는 자립을 못 했고, 학원 아이들도 수가 적어 월급도 파탄 지경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가을, 어머니 손맛 깃든 호박전 실컷 먹고 그것을 소재 삼아 글 쓸 수 있어서. 어제는 학원 아이에게 페친 작가님 사인본을, 복싱 한 달 배우다 그만둔 막내 조카에게 <<헤드샷>>을 선물했다. 오늘은 지인에게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의 대표작이 배달될 터.

가을이라는 단어는 '갓(끊)다'라는 말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추수하는 절기. 이번 가을, 아끼는 이들에게 책 선물을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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