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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삶을 쓰다

한 길만 고집하지 말고

이 없으면 임플란트? 고기 대신 두부

by 윤작가

나노고 합격

검은 프라이팬에 노릇노릇 두부

눈 뜨자마자 들어갔다. 공고가 없다. 교육청 고등학교 입학 정보를 검색해 보니 10시에 합격 발표가 난다고 되어있다.

10시까지 기다리는 마음은 기대 반, 초조함 반! 큰 염려는 하지 않았다. 생전 아버지가 심장 수술 들어갔을 때는 다리와 손이 벌벌 떨릴 지경이어서 주변 사람들이 보든 말든 찬송가를 부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꼭 붙게 해 달라는 기도 대신 신의 뜻대로 되길 바라는 여유까지 부리며(?) 느긋한 모습을 보였으나... 합격 여부를 확인하는 이모의 마음은 두근거린다. 곁에는 어머니도 계신다.

"합격! 최종 합격이에요!"

가족 단톡방에 동생이 먼저 합격을 알렸다. 어머니는 지인에게, 나는 페북에 알렸다. 조카 팔불출 이모라서 면접 보기 전 서류 1차 통과하고 나서도 SNS에 먼저 올릴 정도로 과감하고 용감무쌍, 저돌적인 홍보(?). 미혼이라 자식도 남편도 없는 이모가 조카 일이 자식 일처럼 기쁘고 들떠 자동 팔불출이 되었다.


고기 대신 두부

어머니 요청에 부추 양념장도 나오게 찰칵!

금양체질이라 밀가루와 고기가 해로운데, 단백질 공급은 어떻게 하냐는 질문을 받는다. 단백질 공급원은 해산물과 두부이다. 해산물은 자주 사 먹기에는 부담스러워 두부를 자주 이용한다.

담백하고 구워도, 데쳐도, 찌개에 넣어도 입 안에서 살살 녹는다. 어머니는 부추를 잔뜩 썰어 양념장 만들어 솜씨를 발휘한다. 살찌는 것에 예민한 첫째 조카도 안심하고 먹는 두부인지라 우리 집 밑반찬으로 손색이 없다.

살다 보면 대체물로 만족해야 할 때가 생긴다. 면을 지독히 사랑했던 내가 자궁근종으로 라면과 과자를 끊은 지, 벌써 8개월이 지났다. 단번에 끊을 수 있어 놀랐다. 사람이란 정말 의지의 동물이구나 싶어서. 공부하기 싫어 인문계 고등학교 대신 마이스터고를 선택한 막내 조카는 취업을 위해서 더 철저히 성적 관리를 해야 하기에 공부를 안 할 수 없게 생겼다.


어느 길이든 길이기에

이모가 반대할까 봐 원서를 접수하고 며칠 지나 털어놓은 아이. 누나에게 미리 들은 바 있어 대충 알고 있었던지라 새삼 놀라울 것도 없었다. 학기 초, 학교 설명회 온 마이스터고 선배들의 말을 듣고 좋아 보였단다. 중간에 흔들리기도 했지만, 공부보다는 돈 벌고 싶었고, 대학보다 취업 위주의 학교에 가는 것에 거리낌이 없었다. 중학교 1, 2학년 때는 친구 따라 학원도 여기저기 옮기더니 3학년 되자마자 포경 수술하고 학원이란 학원은 다 끊고 대놓고 놀던 아이. 학원 강사이기에 공부는 억지로 되는 게 아님을 누구보다 잘 알아서 강요하지도 못했다.

"어느 고등학교에 갈래?" 종종 물어봐도 모르겠다고만 대답한 아이. 담임선생님과 의논하며 원서 넣고, 서류 통과하고 인적성 검사 후 면접 보고 오더니 망쳤다고 했다. 다른 아이들은 자기소개도 미리 준비해 와서 5분 정도 말했는데, 본인은 그냥 그 자리에서 3분 정도 말해서 면접에서는 자신 없다고 했지만, 다행스럽게 최종 합격!


배드민턴 시켜달라, 친구 따라 양궁부 들어가겠다, 복싱 배우겠다, 종합 학원 가겠다, 여긴 안 맞다, 다른 학원 가겠다, 이제 학원 안 가겠다 등. 수없이 의견 바뀌며 본인이 하고 싶은 대로 해 온 아이. 당구나 볼링 치러 간다며 이모에게 만 원만, 만오천 원만 달라던 요구는 얼마나 많았던가. 그 아이가 해냈다. 우선 지금은 합격 통보만 받아 뭐가 뭔지 모를 테지만, 앞으로 더 중요한 여정이 남아있다.


예전에는 대학 안 나오면 인간 취급 못 받고, 움츠려드는 경우도 많았다. 제도권 아닌 학교 밖 청소년들을 향한 별다른 시선도. 세상이 변했다. 이 길만이 답이다, 이런 게 존재할까? 공부를 하든 돈을 벌든, 무엇을 하든 조카가 직접 고르고 움직인 것에서 성과가 나서 반갑고 고마울 뿐. "이 없으면 잇몸"으로 대신한다는 속담이 있다. 우리 인생에서 이 길이면 좋겠다고 바라며 준비했던 것들이 틀어지고 실패의 늪에 빠진 듯 보일 때도 낙심하지 말고 다시 시도해야 하는 것은 어느 길이든 목적지에 향하는 방법은 다양하기 때문이다. 유명인이 걸으면 다 멋지고, 성공이라 불리고 우리가 걸으면 보잘것없는 길이 되는가? 아닐 것이다. 정말 중요한 것은 보이지 않는다고, 너무 소소해서 무시하기 쉬운 요소라도 끌어안고 자신만의 길을 차근차근 가다 보면 그 자체가 길이 될 것이다.


우선 한시름 놓았다. 이제 기다리던 곳에서 수상이라는 단어가 도착하면 좋겠다. 그 걱정은 잠시 미뤄두고, 오늘은 오늘을 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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