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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kim Jun 27. 2021

소소함을 한껏 느끼는 여름.

독일에서 코로나 시간 보내기

한국에서의 짧았던 여행을 끝내고 독일로 돌아온 지 언 두 달이 되어간다. 오월의 시작을 앞두고 돌아온 터라 따뜻한 독일을 기대했었다. 웬걸, 이건 아직도 벚꽃도 피지 않은 초봄이었다. 2021년 독일의 5월은 추웠고, 비가 왔고 진눈깨비가 흩날렸다. 록다운도 영원히 끝나지 않을 기세로 진행 중이어서 한참 동안 집에 틀혀박혀 컨퍼런스 준비만 해야 했다. 다행히 컨퍼런스가 끝나고 곧 여름이 찾아왔고 가게들도 조금씩 문을 열었다. 그리고 1-2주 사이에 정신을 차릴 수 없을 만큼 많은 규제가 풀려 시내에 나가면 얼얼한 느낌이 들었다. 


독일에서 박사과정을 시작한 지 햇수로는 벌써 3년째 (헉), 정확하게는 2년 차가 되면서 이곳 생활이 조금씩 파악되는 느낌이다. 이과든 문과든 간에 모든 것이 '케바케'인 것 같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나는 DAAD에서 장학금을 받으면서 거의 독학 수준으로 혼자 공부하지만 같은 장학금을 받는 내 친구들은 같은 학교임에도 다른 전공을 하는 만큼 학점도 따야 하고, 교수님 일도 도와야 하고, 학생 지도도 도와야 한다. 독일 박사과정은 무조건 코스웍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것도 전공에 따라 다른 모양이었다. 지도 교수가 나의 학업에 관여하는 정도도 모두가 다르고, 방에 따라 모이는 분위기도 당연히 다르다. 그건 한국도 마찬가지인 것 같긴 하다. 어쨌든 이제 조금 이곳 생활이 이해되면서 하루, 일주일, 한 달의 스케줄을 규모 있게 짜려고 노력하고 있다. 적당히 사람도 만나고 취미생활도 하면서 이래저래 노력 중이다.



하루를 부지런하게 보내는 데에는 강아지만 한 조력자가 없다. 하루에도 몇 번이나 산책을 나가야 하기 때문에 공부와 시간을 잘 맞추려면 부지런해져야 한다. 더구나 낮이 너무 뜨거울 땐 산책을 갈 수 없기 때문에 여름에는 아침 일찍 일어나는 게 필수다. 내 감정 기복을 낮춰주고 운동부족 대학원생을 걷게 하는 정말 중요한 파트너들이다. 


이젠 버스도 기차도 조금 더 잘 탄다. 근데 너 왜 통로에 앉아있니



지난 일요일 오후 집 근처를 걷다가 이웃집 앞에서 박스를 발견했다. 쓸만하고 어쩌면 아주 유용한 물건들을 깨끗이 상자에 담아서 내어놓았다.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자신의 물건을 이웃이 가져갈 수 있게 둔 것이다. 가끔 이렇게 집 앞에 더 이상 쓰지 않는 물건들을 나눔 하는 걸 볼 수 있는데 그때마다 기웃기웃하며 뭐가 있나 둘러보게 된다. 작은 보석상자와 소스통을 득템 하고는 뿌듯함을 안고 돌아왔다. 



독일에 돌아오기 전 강원도에서 텃밭을 가꾸는 친구가 잘 말린 쑥 두 봉지를 건네줬다. 한국에서 쑥가루를 넣은 빵을 너무너무 먹고 오고 싶었는데 이번 봄에는 내가 원하던 빵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독일에 와서 록다운 때문에 심심한 날들 중 하루를 골라 쑥 파운드를 만들었다. 그 귀한 쑥을 아주 많이 갈았는데도 갈아놓고 보니 너무 양이 적었다. 그래서 한 봉지는 벌써 거의 반을 써버렸다. 쑥 파운드는 아주 담백하고 그 향이 진해 먹는 내내 행복했다. 그래도 쑥이 아까워 또 만들지는 못하고 있다.


왼쪽 음식은 몽골 친구가 만들어준  몽골 음식 + 김밥, 등등.. 몽골식 홍차를 처음 먹어봤다. 


요즘 나를 가장 들뜨고 즐겁게 만드는 활동은 친구들과의 만남이다. 뭐니 뭐니 해도 타국에서는 외국인 유학생들끼리 통하는 마음이 있는 것 같다. 지금까지 알고 지낸 친구들은 모두 한국인 아니면 독일 친구들이었는데 DAAD 모임을 통해 다른 나라 친구들을 새롭게 사귈 수 있었다. 만난 기간은 짧지만 요즘 유독 정이가고 만나면 맘이 편하다. 학부생일 때 교환학생들끼리 모여서 친해졌던 시간도 다시 생각이 나고, 지금은 대학원생들끼리 할 수 있는 이야기, 그리고 비슷한 삶의 단계를 밟아가는 사람들이 만나서 할 수 있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좋다. 


드디어 독일도 카페, 레스토랑이 문을 열었다. 비록 간단한 코로나 테스트를 받고 들어야 하여야 하는 곳도 있지만 야외에서 취식을 한다면 테스트가 필요 없다. 뜨겁고 강한 태양 아래에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뭔가를 먹을 수 있는 게 과연 얼마만인 걸까. 거의 7개월 만인 것 같다. 다시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자유가 생겼다는 건 너무 즐거운 일이다. 


한동안 브런치에 글을 올리지 못했다. 어떨 땐 정신없이 바빠서였고, 또 어떨 땐 일상에 파묻혔기 때문이었다. 박사과정이 진행되면서 점점 백수 같던 생활도 조금씩 사라지고 해야 할 일들이 쌓여가는 게 느껴진다. 어쨌든 감사한 일이다. 지금도 만약 맘을 붙이지 못하고 내 역할에 대해 혼란스러워했다면 일상이 괴로웠을 테니까. 

에어컨도, 시원한 얼음물도 없는 독일이지만 따뜻하고 뜨거운 여름이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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