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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에 대하여 2.

지난주에 학교에서 평생교육원장님과 면담이

있었다. 지난 학기에 새로 부임하셨는데

첫 업무로 평생교육원 강사들과 면담을 선택하셨고

어색한 첫 만남을 지난 학기에 경험한 터라 이번학기에 또 면담이라는 말에 ‘굉장히 맡은 바에 열심이신 분이로구나’ 생각했다.

그렇지만 이번엔 나에게 꼭 할 말이 있으셨던 거였다.


나는 이 대학 평생교육원에서 거의 8년 정도 오르간을 가르치고 있는데, 그 이전에 같은 대학 음대에서 11년 학부와 대학원에서 오르간을 가르쳤다.(과거형이다)

더 이상 대학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되면서 대학평가에  연연하기 시작할 때쯤 소위 강사를 위한다는 ‘강사법’이라는 법안이 발휘되면서 수많은 대학강사들이 우수수 모가지가 날아간 적이 있었다. 그때 나도 시대흐름에 편승해서 트렌디하게 그 대열에 합류하게 되었다. 11년간 한 대학에서 온갖 눈칫밥 먹으며 자리보존하다가 20년을 못 채우고 그만 한순간에 실직한 것이다. 다행히도 나는 자비를 얻어 동 대학의 평생교육원에서 일반인을 상대로 강의를 이어 갈 수 있었다. 물론 음대에 다닐 때 받았던  여러 핍박도 고스란히- 아니

어쩌면 더욱 풍성하게-이어받으면서 말이다.


내가 가느다랗게 목숨을 연명하게 되었을 때 깨달은 바가 많았다. 학생을 가르칠 수 있다는 것이 큰 복이라는 것과 내가 오르간으로 생계를 여전히 유지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말이다. 대학강사 시절의 시건방졌던 내 마음은 아주아주 작아졌다.

그런 풍선바람이 싹 빠지고 나서 나는 진짜로 행복해졌다.

내가 얼마나 오르간을 사랑하고 있는지 알게 되었고 오르간이 내 삶의 전부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는데, 그와 동시에 온전히 오르간을 배우고 사랑하는 찐 학생들을 만나기 시작했고, 나는 그분들에게 진심으로 도움이 되려고 노력하게 되었다.

그렇게 즐거운 시간을 한참 이어오고 있던 중이었다.


다시 면담으로 돌아가자.

우리 학교 평생교육원장은 동 대학의 교수님들이 2년 임기로 돌아가면서 직책을 맡는 시쳇말로 ‘얼굴마담’ 자리다.

새로 부임하신 인문학부 교수님은 정말 다정하고 좋으신 분이셨다. 첫 어색한 면담자리에서 내 칭찬을 어찌나 하시던지 아주 황송했었고, 즐거운 스몰토크로 편안하게 이야기 나누고 왔었다.

그래서 나는 이번 면담도 가벼운 발걸음으로 면담 자리로 향했다.

그렇지만 그것은 나의 순진한 생각으로 밝혀져버렸다.


대학이 제 역할을 못하는 것은 아직까지도 진행 중이었고, 평생교육원이라고 해서 그 그림자를 피할 수는 없었다.

정부에서 지원하는 기술관련된 강의와 수료 자격증이 나오는 과목( 예를 들어 도배과정) 이외의 일반 강좌는 학교에서 없애버리기로 결정했다고 했다. 내가 출강하기 몇십 년 전부터 개설했던 오르간 과정도 이번 학기로 마무리해달라고 말씀하셨다. 물론 원장님은 굉장히 정중하셨고 미안해하셨다.

순간 그 자리에서 머리가 하얘졌다.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 수십 가지 생각이 오고 갔다.

‘ 울분을 토하며 책상을 뒤집어엎을까? 아니야 저렇게 미안해하시는데 저분이 무슨 죄야? 정중하게 괜찮다고 해야 하나?….’

결국 그 자리에서 나는 그 간에 서운했던 여러 가지와

세상한탄을 하다가 정식으로 대면해서 최대한 정중하게 통보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을 남기고 그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렇지만 내가 가장 걱정이 되는 것은 오랫동안 나를 믿고 배우고 계신, 열정 가득한 나이 지긋한 학생들이 받을 상처였다.

원장님께 한 분 한 분께 죄송하다고 잘 말씀드려 달라는 부탁을 드리고 나오긴 했지만 나는 그분들께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정말 고민된다.


오늘 오후에 나는  오래된 수강생 몇 분을 만나기로 했고 이 이야기를 전해드리려 한다.

지난주는 추석명절이었는데 일주일 내내 이 소식으로 정신을 놓고 지냈다.

‘ 뭐라고 말씀을 꺼내야 하나, 향후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잘 말씀드려야 할 텐데…’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에도 걱정이 한가득이다.


이후의 스토리는 다음 편에 적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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