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은 나를 알아가는 시작이었다.
<비예산으로 기획하기>라는 뭔가 자기계발서적에서 나올만한 제목으로 정해놓고, 뭔가 방법론적인 방향으로 글을 써 내려가는 것이 뭔가 꼰대같이 느껴졌다. 마치 '나처럼 하면 너희도 이렇게도 할 수 있어!'라며 말이다. 막상 내가 살아온 세월을 돌아보면 대단한 삶도 아니고, 정작 글을 쓸만한가라는 복잡한 생각이 든다. 그래도 사업을 시작하고 지금의 위치에서 겪는 이야기를 에세이처럼 기록해 놓으면 내게 좋은 기록이 될 것 같아 시작하게 됐다.
어떤 말로 시작할지 고민하다, 첫 시작은 "취향"으로 말하는 게 맞다고 생각이 든다. 내 모든 선택은 취향을 찾는 여정 속에서 시작한다. 취향을 찾는 여정에는 약간의 무모함과 도전의식이 있었고, 나만의 호불호를 알 수 있게 된 의미 있는 일이었다. 영화 리뷰로 브런치 작가를 처음 시작했었을 때에도 이런 취향을 찾는 여정 중에 하나였다.
내 모든 기획은 사람의 취향이나 니즈에 따라 선택하는 방향으로 전개된다. 나는 필요를 찾는 일이 기획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필요로 하는 일을 필요한 때에 하는 일, 취향파인더로서의 기획자로 살아온 날들을 기록한다.
서울 촌놈이었던 나는, 신기하게도 부산 해운대에서 부산국군병원에서 복무했다. 내 지인이나 군동기들은 대부분 강원도 인제나 철원 같은 전방부대로 입대했기에 나의 부산행은 신기한 일이었다. 여행을 좋아하지 않아 서울 외의 지역에는 관심이 없었던터라 내게 부산은 낯설고 무서운 도시였다.
그때 당시의 나는 취향이 없었다. 그저 흘러가는 대로 살아왔었다. 그렇게 수년을 나 외의 것들에 움직임에 흔들리며 살게 됐다. 사실 돌아보면 취향 자체가 없었던 것이 아니라 내 생각을 말하기까지의 시간이 오래 걸렸던 것 같다.
내게 처음 취향을 알게 해주던 해운대 좌동의 어느 상가 안에 있던 3평 정도의 크기의 에스프레소바였다. 에스프레소에 대한 기억은 쓴맛으로 가득했었지만, 어떤 도전의식이었는지 군복을 입고 들어갔었다. 당시의 카페 주인장이 날 노려보던(?) 기억이 있는데, 내가 생각해도 상가 안의 작은 카페에 군복 입고 들어오는 손님이 이상하게 보였을 것 같다.
"에스프레소를 잘 몰라서, 추천해 주시는 걸로 마시겠습니다."
"그럼, 에티오피아 예가체프 내추럴로 드릴게요"
카페 주인장은 홀빈에서부터 그라인딩 후 드라이아로마까지 시향 해주고, 맛과 향이 어떤지 질문을 이어갔다. 그 당시에는 바리스타의 다양한 질문이 뭔가 호들갑같이 느껴졌는데, 지금 생각하면 내게 다양한 표현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신 것 같다. 당시 커피는 갈려서 나온 커피파우더에는 진한 딸기향이 나고, 에스프레소를 처음 머금을 때에는 부드러운 촉감과 은은한 단맛 그리고 딸기향이 은은하게 났다. 무언가를 느끼고 표현하는 것이 낯설었던 나는 그날 내 취향을 찾아가는 재미에 빠지게 됐다.
그렇게 내 취향을 찾는 여정은 25살이 되어서야 시작됐다.
*부산의 모모스커피를 납품받았던 카페였다. 이후 카페를 창업하고 스페셜티커피 시장에 발을 담그고 난 뒤 알게 되었는데, 내가 마셨던 그해의 에티오피아 예가체프 내추럴이 가장 품질이 좋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