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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ather Jan 25. 2019

비행기 마일리지가 쌓였다.

이제, 돈 없이도 떠날 수 있게 됐다. 


5년쯤 됐을까. 친구의 추천으로 마일리지가 쌓이는 신용카드를 만든 게. 물론, 돈을 써야만 쌓이는 마일리지였지만 그 당시 버는 족족 돈을 썼던 나였기에 고민할 이유가 없었다. 별다른 혜택도 못 누리며 카드사에 좋은 일만 해주는 기분을 느꼈던 내게 비행기 마일리지가 쌓이는 카드는 신세계였으니까.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흘러, 드디어 내게도 아시아나 5만 마일리지가 쌓였다.  


지금은 연회비 15만 원을 내야 만들 수 있는 하나 크로스마일 카드. 내가 이 카드를 만들 당시엔 연회비는 1.5만 원 정도였고, 외환카드의 상품이었는데 그 사이 많은 게 바뀌었다. 물론, 혜택도 줄었다. 하지만 중요한 건 많은 게 바뀌는 중에도 마일리지는 계속 쌓였다는 것. 


그리고 요즘 난 그렇게 모인 마일리지로 떠날 생각을 한다. 시도 때도 없이. 그냥 다 팽개치고 떠나고 싶은 요즘이다. 화장실에 가서 변기에 앉아있다가도 무심결에 아시아나 항공 앱에 들어가 '마일리지로 항공권 예약하기'를 누른다. 


5만 점이면 어딜 갈 수 있지...? 후쿠오카도, 호치민도, 타이페이도 가능하다! 5년이나 모은 마일리지가 동남아 여행 한 번에 끝나버린다는 게 허무하긴 하지만 돈이 없어도 떠날 수 있는 상황이 됐다는 사실에 설렌다.


'매년 3월 내 생일엔 생일을 기념하며 혼자 여행을 떠나보자!' 라며 호기롭게 나와의 약속을 정했지만 몇 번 지켜지지 않았다. 그래도 1월 초, 혹시 모르는 마음에 생일 다음날 하루 연차를 냈는데 찾아보니 예약 가능한 표도 꽤 남아있다. 


(예전엔 관심도 없던) 후쿠오카에 가서 무거웠던 외투를 벗어던지고 정처 없이 걷고 싶기도 하고, 맛있는 장어덮밥 같은 걸 먹으며 한국에서의 쳇바퀴 같은 일상을 비웃고도 싶었는데.


갑자기 엄마가 아프다. 


동생의 뇌종양 수술이 끝나기 무섭게 몸이 급격히 안 좋아진 엄마. 엄마의 몸에서 혹이 발견됐다. 다행히 한쪽이 없어도 정상적으로 생활할 수 있다는 신장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어느덧 엄마 나이 60이 훌쩍 넘었다. 감기만 걸려도 위험한 나이, 치매가 와도 어색하지 않은 나이가 엄마에게도 찾아온 것이다. 


엄마가 없는 삶을 생각해본 적이 있었던가. 늘 '난 절대 못 살아.' 하고 외면했던 그 시간이 언젠간 기어코 오고 말겠지만 지금은 엄마랑 하고픈 것들이 정말 많다. 이제야 조금, 엄마에게도 무언가 해줄 수 있는 딸이 됐는데.


얼른 엄마 수술이 잘 끝나길 바랄 뿐이다. 그리고 엄마 손을 꼭 잡고, 꼭 여행을 가고 싶다. 내겐 마일리지도 있으니까 엄마만 건강하면 된다. 그렇게 조금 가뿐해진 마음으로 엄마와 공항으로 향하는 꿈을 꾼다. 


가을에 교토에 가면 어떨까? 교토에 처음 갔을 때 들었던 생각은 '아, 엄마랑 꼭 다시 와야지!'였다. 그 생각을 하고도 벌써 몇 년이 지났는데 엄마랑 제주도 한 번을 못 갔네.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는데 왜 늘 주저하는 마음이 앞서는 건지. 그런 의미에서 올해가 가기 전엔 무조건 엄마랑 여행을 가야겠다. 엄마가 건강해질 때까지 쓸 생각 말고 차곡차곡 모아야겠다. 나의 마일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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