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eather May 28. 2019

초록이 필요한 삶

두 번의 주말과 맞바꾼 깨달음


장장 9일간의 행사가 끝났다. 두 번의 주말을 오롯이 행사를 위해 썼다. 덕분에 주말의 귀중함을 제대로, 아주 절실하게 느꼈다. 주말이 이틀밖에 없다고 투정 부리던 와중에 주말 이틀마저 빼앗긴 삶은 그 이틀의 고마움을 깨닫게 하는 것이기도 했다.


긴 행사가 시작되기 전, 몸에 나타나는 오래된 적신호들에 신경이 쓰여 하루 휴가를 내고 - 이마저도 주말에 일하고 받은 대체휴무 - 병원에 가기로 했다. 병원은 다행히 집에서 멀지 않은 위치에 있었고, 석촌호수를 끼고 평일 낮 시간의 길을 걸어보기로 했다.



덥지도 않고 춥지도 않은 따뜻한 한낮. 벚꽃축제다 불꽃축제다 사람들로 북적이는 석촌호수만 보다가 이렇게 한산한 걸 보는 건 거의 처음인 것 같았다. 걷다가 사진을 찍고, 또 걷다가 카메라를 들게 되는 한낮의 풍경. 햇살이 비추는 길과 호수는 그냥 지나치기엔 너무 아름다웠다.



아픈 몸을 치료해 보겠다고 약값만 50만 원을 내고 다시 집으로 향하는 길에도 가벼워진 지갑을 들고 어김없이 석촌호수를 걸었다. 초록으로 가득한 길 위에서 내 마음도 바람을 맞아 흔들리는 초록잎처럼 살랑였다.


실로 오랜만에 느끼는 행복감이었다.


그렇게 두 달간을 시달렸던 행사가 시작된 뒤, 전쟁 같은 주말을 보냈다. 그러다 평일 하루는 사무실로 출근했는데 함께 사무실에 나오게 된 팀 동료들과 점심을 먹고 곧장 산으로 향했다. 주말 내내 백화점 안에 틀여 박혔던 우리에겐 산의 기운이 필요했다.


그렇게, 뒷짐을 지고 함께 산을 오르며 말했다.


아. 살 것 같다...



하루 종일 백화점에 틀여 박혀 온갖 소음과 먼지, 시간의 흐름에 대한 무감각에 시달렸다. 바삐 준비했던 행사가 호응을 얻고 매출을 낸다는 건 너무나 뿌듯한 일이었지만 동시에 바깥세상에 대한 갈망은 더 강해졌던 것 같다.


가장 예쁜 초록과 만날 수 있는 5월의 시간을 실내에서만 보낸다는 건 누구에게나 아쉬운 사실이었다. 그렇게 아쉬운 맘을 달래려다 만난 백화점 11층의 작은 정원.


놀라운 발견은, 지독한 갈망과 단순한 호기심에서 시작되는 것일까. 평소라면 가보지 않았을 곳에 발을 들이게 된 건 유리문 밖으로 보이는 초록 때문이었다.



너무나 멋진 뷰와 아름다운 꽃들로 장식된 정원. 백화점을 찾는 수많은 고객들조차 잘 모르는 장소인 듯 사람이 많지 않았다. 따가운 햇볕마저 반가워 짧지만 오래 벤치에 앉아 초록을 마주했다.



다시 행사장으로 돌아가야 하는 순간, 건너편에 있는 빈 벤치가 눈에 보였다.


주말의 한가로운 시간이 그리운 마음은 그곳에 둔 채, 일을 하러 돌아가야 하는 피곤한 몸을 일으켰다.


이제 행사도 끝났으니 마음도 몸도 초록과 함께 걷고, 앉고, 뉘일 것이다. 우리에겐 초록이 필요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