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그림일기
오랜만의 가족여행이었다. 그리고 친구 식구들과 동반한 여행이었다. 아이들 넷은 텐트 안에서 게임을 공유하면서 놀았고, 우리는 바구니 가득 캔 조개를 한 켠에 두고 늦은 점심으로 즉석 떡볶이를 후후 불면서 먹기 시작했다. 떡볶이를 먹기 시작했을 때부터 날이 흐려지기에 숟가락을 빠르게 움직였지만, 어느새 빗방울이 떡볶이 그릇에 떨어지지 시작했다. 그리고 순식간에 비가 후두둑 떨어지자, 아이들을 먼저 차로 대피시키고 짐을 정리하는데 한 순간에 사방에서 몰아치는 비바람에 박스는 찢어지고 말았다. 텐트를 정리하고 짐들을 손에 쥐고 차에 옮기기를 여러 번, 마지막 짐을 들었을 때 우리는 처마 밑으로 비를 피할 수 밖에 없었다.
"5분만 있으면 그칠꺼야. 조금만 여기서 기다려보자" 라고 신랑이 말했다. 처마 밑에서 비바람에 흔들리는 나무와, 점점 더 거세지며 방향을 종잡을 수 없는 비바람과, 우리가 방금 전까지 떡볶이를 먹었던 곳이 흔적도 없이 종이박스만 날라가는 것을 보니 너무 재미있어서 웃음이 나왔다. 이렇게 재미있는 순간에 아이들이 우비를 입고 장화 속에 찰랑거리는 빗물을 발 끝으로 느끼며 나와 같이 뛰어다니면 좋겠는데. 아쉽다고 생각했다. 나는 비를 너무 좋아한다. 그리고 그 생각 끝에 차에 남아있는 아이들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안되겠다, 그냥 우리 뛰어가자. 얘들이 걱정할 것 같아"
그리고 신랑과 빗 속을 뛰어가는데 열 발자국도 채 가기 전에 속옷까지 쫄딱 젖어버렸고, 가죽 시트가 물에 젖는 것을 싫어하는 신랑과 달리 나는 냅다 차에 올라탔다. 우리가 차 문을 열자마자 아이들은 "어디 있었어!!!!!!!!!!" 하고 소리쳤고 다은이는, "엄마아빠가 없어서 차에서 언제까지 살아야 하는지 걱정했잖아! 할머니도 없고!"하면서 엉엉 울며 나를 와락 안았다. 입안으로 스미는 빗물의 비릿한 맛과, 필사적으로 나를 붙잡는 아이의 강한 힘에 한순간 속없이 즐겼던 것이 무척 미안해졌다. "아, 미안해. 비가 엄청 많이 와서 올 수가 없었어. 많이 걱정했어? 엄마가 너네를 두고 어디 가니-. 항상 너네 옆에 있지.... 미안미안. 근데 너, 힘 되게 쎄다?" 하니
"내가 그만큼 엄마 사랑한다는거야!"
하고는 두르고 있던 쪼끄만 스카프를 풀어 나를 닦아주기 시작했다. 나는 그냥 아이가 시키는 대로 얌전히 움직이며 빗물을 닦았지만 내 마음은 촉촉히 빗물이 스며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