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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ngwoo Kim Feb 07. 2024

눈보라가 치는 날, 고군산군도를 방문하다

한국판 아틀란틱 로드 체험하기

바다 위의 성


고군산군도라는 이름은 국립익산박물관에서 처음 들었다. 본래의 군산의 이름을 갖고 있었고, 조선시대 새로운 군산이 설치되었지만 다시금 수군 기지가 설치되면서 지금의 이름이 되었다고 한다. 오랜 기간 서해를 관장하는 수군 기지로서 기능했고, 고려 대에는 중국에서 오는 사신단이 개경에 도착하기 전, 고려에서 그들을 맞이하는 첫 장소였다. 


"바다 위의 성"이라는 워딩은, 영화 "한산"에서 동일하게 사용된 바 있다. 이 때는, 전진 속도는 느리지만 방향전환이 빠른 판옥선과, 반대로 전진속력은 빠르지면 첨저선의 한계로 방향전환이 상대적으로 느린 아타카부네의 차이를 극대화하는, 한산도대첩을 대하는 조선 수군의 전략 기본 개념이었다. 


여기서 "바다 위의 성"은 국립익산박물관 특별전시의 이름이며, 현재 전라북도 군산시 옥구면 내 장자도-선유도-신시도-무녀도-대장도 등을 포함한 수십 개의 섬을 총괄하여 지칭한다. 앞에 언급된 다섯 섬은 한반도와 교량으로 연결되어 있고, 그 외의 섬은 여전히 물길로 연결된다. 고군산군도를 잇는 교량은 남쪽으로는 부안군과, 북쪽으로는 군산시를, 동쪽으로 김제시를 잇는다. 이 도로는 모두 새만금 간척을 위한 새만금 방조제 위에 건설되었다. 


신시교차로 위. 좌측(남)은 부안군 방향, 우측(북)은 군산시 방향, 아래는 김제시 방향이다. (새만금간척박물관)

불침항모라는 말이 있다. 원래는 해양의 주도권을 위해 멀리 떨어진 섬을 군사기지화 해서(특히 공군) 주변의 제해권과 제공권을 확보하고자 하는 용어이다. 고군산군도를 비롯한 주변의 많은 섬들은, 고려와 조선시대 서해상의 불침항모 같은 역할을 맡길 수 있는, 천혜의 지형이었다. 다만, 작은 섬들이 많아 피항할 공간이 많은데다, 그 섬들은 생각보다 지형이 험준하여 도적이 들끓기 십상이다. 중앙의 통제가 충분치 않다면 되려 해적 같은 세력이 똬리를 틀 수 있게 생겼다. 실제로 고려시대 이전까지만 해도 해적이나 왜구, 또는 다른 해상세력들이 이 지역을 거점으로 삼고 활동했다고 한다. 


한국판 아틀란틱 로드


저 멀리 노르웨이에는 아틀란틱 로드, 또는 술 취한 다리라고 불리는 도로구간이 있다. 거칠기로 이름난 북대서양을 맞대는 노르웨이의 피오르드와 중간중간의 섬을 잇는, 12개의 교량을 포함한 구간이며, 매우 위험하지만 동시에 매우 아름다운 드라이브 코스로 선정된 바 있다(CNN). 


고군산군도를 연결하는 고군산로의 모습. 신시도에서 찍은 것 같다. (새만금간척박물관)

처음 이 고군산로를 운전했을 때 아틀란틱 로드가 떠올랐다. 둘 다 섬과 거친 지형을 연결하고 거친 바다와 맞닿는다는 개념이 유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운전대를 잡은 상태에서 시야에 들어오는 모양은 사뭇 다르다. 아틀랜틱 로드는 도로 좌우가 트였다. 그냥 바다다. 산을 뚫고 나가거나 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바다가 거칠어지면 도로를 덮치기도 한다. 고군산로는 아틀랜틱 로드의 섬들보다 훨씬 큰 섬을 잇는다. 그리고 그 섬들도 웅장한 외형을 갖추고 있고, 숲도 많으며, 게다가 섬의 해안가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높은 산과 산 사이를 훑으며 지나간다. 역동적인 자연에 맞서 춤 추는 듯한 동적인 모습을 둘 다 갖고 있지만, 아틀랜틱 로드는 도로에서 그 모습을 확인할 수 있지만, 고군산로는 항공사진(혹은 드론사진)으로 보아야 비로소 보인다. 

위에서부터 차례로 장자대교, 선유대교, 고군산대교. 셋 모두 모양이 다르고 멋있다. 

눈폭풍이 몰아칠 때 새만금방조제를 운전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만일 기회가 된다면, 안전하다는 전제 하에 절경을 볼 수 있다. 서해는 수심이 얕아 동해나 남해에 비해 바다가 덜 거칠 거라는 편견이 있었다. 방조제는 육지에서 꽤 떨어진, 바다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건축물이다. 그렇다보니, 마치 폭풍우 속 배에서 볼 만한 광경을 목격할 수 있다. 눈폭풍은 바다에서 에너지를 얻어 육지에 눈을 뿌린다. 바다와 맞붙은 새만금방조제는 강한 눈보라를 바다에서 육지쪽으로 뿌리고, 이것은 북극 한파 속 시베리아에서 목격되는, 눈 앞을 하얗게 가려버리는 체험판 블리자드의 느낌을 준다. 


바람이 심할 때, 고군산로의 첫 교량인 고군산대교를 지나는 것은 생각보다 스릴있다. 고군산대교는 현수교이다. 수십개 이상의 철제 와이어의 장력으로 교량을 유지한다. 강한 눈보라는 그 바람의 속도로 수십개 와이어를 때린다. 교량 위에 올라가면, 와이어 수십개가 강하게 떠는 소리가 울린다. 장관이라 생각하면 장관일 수 있고, 혹자는 공포스럽다 생각할 법한 소리이기도 하다. 


눈보라는 쳤지만, 눈구경은 어려웠다


24년 1월 중순, 서남해를 중심으로 폭설 예보가 내렸다. 사실, 이럴 때는 안전상 집에 있는게 좋다. 스키도 못타고, 눈밭을 구르는 것도 싫어하면서, 이상하리만치 눈 그 자체를 매우 좋아한다. 사람 적은 곳에서 눈을 밟고 싶고, 얼굴이 얼겠지만 눈도 맞고 싶었다. 서해는 원체 눈이 많이 오는 지역이고, 그 서해 한가운데 있는 곳이라, 기대를 안고 방문했다. 

밤새 눈보라가 쳤지만 거의 쌓이지는 않았다. 사진은 선유도 해수욕장 앞 모습.

밤새 눈보라가 쳤다. 하얀 눈보라에 묻혀 눈 앞이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그러나 눈이 수평으로 내렸다. 눈꽃이 예쁘게 송이가 져서 산들바람을 타고 하늘하늘 내려야 땅에 눈이 소복이 쌓일텐데, 눈 앞에 눈이 가득했지만 내 눈을 지난 눈은 땅에 거하지 못하고 그대로 옆으로 사라졌다. 거진 열 시간이 넘게 눈이 내린 후였지만, 내가 기대하는, 눈길을 밟는 경험은 할 수 없었다. 


도로 위는 이미 다 녹았고, 인도에도 거의 쌓이지 않은 모습이다. 사진은 무녀도에서 촬영. 뒤에 보이는 현수교는 고군산대교.


서해의 또다른 다도해


서남해안에는 다도해 해상국립공원이 있다. 고군산군도는 그만큼 섬이 많지는 않다. 하지만 꽤나 다양한 지형을 갖고 있고, 도시와 꽤 멀리 떨어져 있다. 가까운 거리에 거친 바다와 잔잔한 바다, 넓은 갯벌과 깊은 숲 속 자연휴양림, 넓은 모래사장과 암벽으로 가득한 거친 절벽이 혼재하는 흔치 않은 곳이다. 


2024년 1월초, 장자도의 일몰. 카페의 실내등이 유리창에 살짝 비춰 보인다. 

서해와 남해, 그리고 동해는 다르다. 섬의 모양도 다르고, 바다와 땅이 맞닿는 모양도 너무 다르다. 몽돌해변 느낌보다는 고운 모래 기반의 해수욕장이 많고, 동시에 넓은 갯벌이 존재한다. 겨울바다의 차가운 바람을 막아 줄 지역도 있고, 그 바람이 더 차갑게 느껴지는 공간도 있다. 숲과 절벽이 많아 여름 더위를 식힐 만한 바람도 기대할 만 하다. 다만, 갯벌이 원체 많고 수심이 낮은 물가가 많아 한국 여름 특유의 모기 등의 벌레 문제가 더 심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아직 여름의 고군산군도를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속단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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