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aram Sep 17. 2022

과연 불행 옆엔 불행이 있을까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사자왕 형제의 모험>

“지금 우리는 낭기열라에서 아주 오랜 옛날을 살고 있는 거야?”
“그렇게 말할 수도 있겠지. 오래전 시대에 살고 있는 셈이니까. 그렇지만 어쩌면 어린 시절이라고 할 수도 있어. 젊고 건강하고 행복한 나날, 살아가는 것이 조금도 고통스럽지 않고 근심 걱정 없이 지낼 수 있는 그런 시절 말야.” p. 52


재인아, 너는 지금 이런 찬란한 어린 시절을 지나고 있단다. 엄마도 어릴 땐 그걸 미처 몰랐는데, 정말 그래. 이제 막 빛나기 시작한 샛별처럼 환하고 아름답지. 이 찬란한 시기에 이 책을 만나게 될 재인이가 엄마는 좀 부럽다. 이 책을 어린 시절에 접한 다는 건 큰 축복이라는 생각이 들어. 엄마는 왜 이제야 이 책을 읽게 된 걸까? 만약 엄마가 어린 시절에 이 책을 읽었더라면 지금이 엄마와는 많이 다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마흔이 넘어서 읽었는 데도 책을 다 읽고 나니 엄마 마음 속 어딘가에 불이 ‘짠’ 하고 켜진 기분이 들거든. 이 책이 재인이의 빛나는 어린 시절을 좀 더 반짝이게 할 거라고 엄마는 확신해. 


이 책의 주인공은 사자왕 요나탄과 칼이야. 용감하고 정의롭고 잘 생긴 요나탄은 형, 어려서부터 병약하고 겁이 많은 칼은 동생이지. 이상하지? 형제끼리, 혹은 자매끼리는 비슷한 경우보다는 서로 많이 다르게 태어나는 경우가 많은 거 같아. 너와 아인이가 많이 다른 것처럼 요나탄과 칼도 겉모습과 성격은 서로 많이 달라. 하지만 그 우애만큼은 끝내주는 형제였지.


정말이지 형은 나를 몹시 좋아했습니다. 그건 참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못생기고 어리석고 겁쟁이인 데다가 다리까지 절룩거리는 나를 좋아하다니 말이에요. 그런데 형은 늘 이렇게 말했습니다.
“별로 잘생기지도 않았고, 얼굴빛은 몹시 창백하고 다리를 절어도 나는 네가 좋아. 만일 그렇지 않다면 이렇게까지 널 좋아하지는 않을지도 모르지.”


어느 날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있는 칼에게 요나탄이 ‘낭기열라’에 대해 이야기를 해. 죽는 건 끔찍한 일이 아니라 굉장히 신나는 다른 세계로 가는 일이라고 이야기하지. 죽음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곳으로 가는 시작인데, 그곳이 바로 낭기열라이고 그곳에 먼저 가 있으면 요나탄도 곧 가게 될 거라고 걱정 말라고 안심시키지. 낭기열라에 가면 칼의 병은 낫게 될 거고, 외모도 근사해질 거고 신나는 모험을 즐기게 될 거라고. 칼은 모르는 게 없고, 학교 공부도 언제나 일등인 요나탄의 말을 믿었어. 칼은 더 이상 죽는 게 두렵지 않았지.  


엄마도 칼처럼 죽는다는 게 두려웠던 시절이 있어. 지금도 완전히 그렇지 않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어려서는 더 그랬지. 죽음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무서워서 고개를 절레절레 하며 죽음을 떠올리지 않으려고 애썼어. 죽는다는 게 뭔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건 대체 어떤 의미인지 상상조차 되지 않았고, 떠오르는 건 오로지 어둠, 공포, 두려움뿐이었지. ‘낭기열라’ 이런 곳이 진짜 있는지는 엄마도 잘 모르겠지만, 만약 엄마가 어렸을 때 누군가 그런 죽음 이후의 다른 세상에 대해 이야기해주었더라면 죽음을 그저 두려움으로 여기진 않았을 텐데 싶었어. 재인인 어때? 죽는다는 건 뭘까? 낭기열라처럼 신나는 모험으로 가득한 세상이 새롭게 열리게 될까?


요나탄과 칼의 예상과 달리 낭기열라에 먼저 간 건 요나탄이었어. 두 형제의 집에 불이 났고 용감한 요나탄은 칼을 구하기 위해 불 타는 집으로 뛰어들었어. 그리고 안타깝게 요나탄은 죽고 말았어. 아니, 낭기열라로 먼저 떠났지. 그리고 이어 칼도 낭기열라로 가게 되지. 낭기열라에 가자 칼은 정말 달라졌어. 다리를 절지도 않았고 건강해졌지. 칼은 스스로에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지만 사자왕이라는 별칭도 얻게 되고 늠름한 말도 생겨. 


하지만 요나탄의 생각과 달리 낭기열라는 걱정거리 하나 없는 신나는 곳만은 아니었어. 형제가 살게 된 벚나무골짜기는 평화로웠지만 비참하고 불행한 마을도 있었지. 바로 들장미 골짜기였어. 들장미 골짜기는 텡일이라는 폭군의 손아귀에 있었어. 텡일은 낭기열라를 짓밟고 싶어 했고 카틀라는 괴물까지 거느리고 있으니 천하무적이었지. 들장미 골짜기 사람들은 하루아침에 자유를 잃었어. 텡일에게 거역하는 사람은 누구라도 카틀라의 먹잇감이 되었으니 그의 말을 따르지 않을 수 없었던 거야. 


 요나탄와 칼은 이 텡일에게 맞서싸우다 잡혀간 오르바르를 구하기 위해 모험을 떠난단다. 정확히 말하자면 형이 먼저 떠나고 칼은 형을 보기 위해 조금 나중에 떠나지. 칼은 요나탄과 함께 누군가를 구하는 모험을 할 만큼 용감한 아이는 아니었어. 현실세계에서보다 건강해지긴 했지만 여전히 겁이 많았지. 다른 이들이 자신을 사자왕이라고 부르는 걸 부끄러워할 만큼 말이야. 하지만 낭기열라에서의 모험을 통해 조금씩 진짜 사자왕이 되어가지. 오르바르를 구하기 위해 두 형제가 겪는 사건들 속에서 칼은 결정적인 역할을 여러 번 했어. 전쟁 전날 엉엉 울만큼 현실적인 겁보지만 주어진 자신의 몫은 톡톡하게 해낼 줄 아는 아이로 성장해나가. 


특히 정말 깜짝 놀란 부분은, 책에서 두 형제가 오르바르를 구해서 나오는 길에 텡일의 부하들에게 쫓기는 장면이 있는데 이 장면에서 자신이 뒤에 타고 있어서 말이 속도를 못 내자 스스로 말에서 내리기를 택해. 언제 누구에게 잡힐지 모르는 상황에서 형을 믿고 형을 기다리겠다고 선택하는 거야. 책을 읽는 내내 엄마는 칼이 정말 작고 연약하게만 느껴졌는데 그 순간에는 어찌나 멋있던지. 옆에 있었다면 “칼 너 언제 큰 거야?” 하고 눈이 동그래져서는 머리를 수십 번 쓸어내렸을 거야.


엄마는 요나탄이 참 멋있어.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요나탄이 전설의 왕자님처럼 멋진 외모를 가지고 있어서만은 아니야. 황금빛으로 빛나는 머리칼에다 아름답고 짙푸른 눈, 그래 물론 멋지지 그런데 그보다 더 멋진 건 요나탄의 마음이야.

요나탄은 용감했지만 어떤 경우에도 사람들을 죽이지는 않았어. 이런 요나탄을 보며 오르바르는 “사람들이 모두 자네 같다면 죄악은 영영 사라지지 않을 텐데.” 라고 걱정을 하지. 하지만 칼의 생각은 달랐어. 칼은 반대로 모든 사람이 요나탄 같다면 죄악 따위는 아예 생겨나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했지. 

너의 생각은 어떠니, 재인아? 정말, 정말 정말 못된 사람이라면 그 사람에겐 폭력을 써도 될까? 아니면 애초에 그런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잘못이고 문제를 폭력으로 해결한다는 생각을 바꿔먹으면 모든 사람이 그럴 수 있다면 세상에 폭력 따위는 존재하지 않을까? 참 어렵고, 힘든 문제인 거 같아. 엄마 생각엔 이 책을 쓴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은 칼의 생각에 동의하는 것 같지만 이야기는 다르게 흘러. 요나탄은 뜻이 다른 사람을 죽이는 전쟁에 앞장서게 돼. 사람들에게 용기를 북돋아주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던 거 같아. 현실도 때론 이와 같단다. 나의 의지와 관계없이 내가 옳지 않다고 생각한 일을 하게 되는 경우도 있지. 아, 이런 때 정말 마음이 힘든데, 아마 요나탄도 그랬을 거야. 얼굴이 하얗게 질려버릴만큼 끔찍하게 싫었을 거야.  


두 형제의 활약 속에서, 오르바르, 소피아 아주머니, 후베르트, 마티아스 할아버지 등 두 형제와 뜻을 같이 하는 선한 사람들의 조력을 통해 텡일의 세계는 막을 내리고 들장미 골짜기는 평화를 되찾아. 단지, 괴물 카틀라를 다시 있던 곳으로 데려다 주는 과정 속에서 형은 카틀라의 불길이 몸에 닿아 몸이 점점 마비되거나 목숨을 잃을 위기에 처하고 말아. 이제 막 모든 것이 끝이 나고, 행복의 시작을 앞둔 상태에 새로운 불행과 맞닿게 된 거지. 


하지만 요나탄은 불행을 불행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칼에게 새로운 행복에 대해 이야기 해. 죽어가는 칼에게 처음 ‘낭기열라’를 이야기하며 희망을 심어주었듯, 이번엔 ‘낭길리마’라는 새로운 세상에 대해 이야기하지. 먼저 돌아가신 마티아스 할아버지가 계신 곳. 요정과 도깨비가 존재하는 재미있고 신나는 모험의 세계. 춤과 노래가 그치지 않는 즐거운 곳을 꿈꾸지. 그 근사한 곳이 있다고, 낭기열라가 끝이 아니라고, 맞닿아 있는 다른 세상을 통해 희망을 이야기해.  


두 형제는 낭기열라를 택해. 재인아, 물론 어른인 엄마의 눈으로 볼 땐 조금 안타까운 장면이었긴 해. 스스로 죽기를 택한 거잖아. 하지만 낭기열라나 낭길리마를 꼭 죽은 이후의 세상으로 생각하지 말았으면 해. 사후 세계가 아닌, 지금의 절망을 이겨낼, 또 다른 희망 정도로 해석해도 괜찮지 않을까? 힘들고 괴로운 순간에 현실에서 절망하기 보다는 더 나은 희망을 그려야 한다는 것 아닐까? 물론 그 희망의 세계가 내 생각과 다를 순 있어. 낭기열라의 텡일이 그랬듯 어디든 악의 존재, 삶의 어려움은 어디에든 있을 수 있지. 

하지만 인생은 그게 다가 아니라는 거야. 그것에 빠져 절망하지 말고, 내 마음속 낭기열라, 낭길리마 같은 곳을 꿈꿔보라는 의미 아닐까? 반드시 모든 것은 끝이 있고, 그 끝엔 결국 빛이 있을 거라는 거지. 


“내가 형을 업을 게. 지난 번에는 형이 나를 업었으니까 이제 공평하게 됐네.” p.325
“사자와 스코르판, 무섭지 않니?”
“아니, 형.... 사실은 무서워. 하지만 해낼 수 있어. 지금. 바로 지금 할 테야. 그러고 나면 다시는 겁나지 않겠지? 다시는 겁나지....”
“아아, 낭길리마! 형, 보여! 낭길리마의 햇살이 보여.”p.326


낭길리마로 떠나는 두 형제의 모습. 죽음의 장면이라기엔 너무 아름답지 않아? 죽음으로 시작해 죽음으로 끝나는 책이지만 결코 슬픈 죽음을 이야기하지 않아. 죽음을 새로운 삶의 시작으로 그리고 있지. 어쩌면 삶과 죽음이라는 건, 기쁨과 슬픔이라는 것, 행복과 불행이라는 것 서로 먼 곳, 완전히 반대편에 있는 것 같지만 바로 옆에 맞닿아 있는 건지도 모르겠어.


재인아, 재인이는 이 책을 언제쯤 읽게 될까? 적어도 그게 너무 오랜 뒤는 아니었으면 좋겠다. 너랑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 책이거든. 오래 기다리기 어려워서 엄마가 먼저 마구마구 이야기할지도 몰라. 

책을 읽고 난 후, 연약한 칼 같던 엄마 마음이 용감한 요나탄처럼 튼튼해진 기분이야. 이 책을 읽고 나면 누구나 마음이 사자왕처럼 튼튼해질 거라 믿어. 


곧 만나자, 사자왕 연재인!


-선배 사자왕, 엄마가 

매거진의 이전글 너의 첫 번째 연애편지가 궁금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