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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날때부터 달랐다.

엄마인 나도, 아이도.

by 이지애

엄마인 나도 임신과 출산 시절, 유별나게 완벽했던 것 같다.
‘건강한 임산부’가 되어야 한다는 꿈을 꿨다. 배만 볼록하게 나온 예쁜 임산부가 되겠다며 늘 해오던 운동을 멈추지 않았고, 식단도 철저히 관리했다. 임신을 하자마자 회사를 그만두고, 오랫동안 꿈꿔온 작가로서 첫 책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출판사와 계약도 맺고, 프리랜서로 작은 수입을 벌며 10개월을 단 하루도 허투루 쓰지 않았다.


모든 게 평화로워 보였다. 건강, 몸매, 커리어, 적당한 수입까지.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 시간은 평화라기보단, 스스로를 향한 채찍질이었다.

나는 완벽해야 한다는 압박 속에 있었다.


아이는 내 뱃속에 있는 내내 역아였다. 마흔의 나이에 첫 아이를 낳는 게 두려웠지만, 산부인과 의사는 “아이도 효도하는 거다. 제왕절개가 더 낫다”고 했다. 결국 아이는 건강하게 태어났다.


출산 후, 나는 금세 벽에 부딪혔다.
제왕절개 흉터의 통증이 크게 느껴졌고, 아이에게 젖을 물리면서도 아이의 안정감보다 내 자세의 불편함이 먼저 떠올랐다.


내 마음이 전해졌는지 아이는 젖을 잘 빨지 않았고, 모유도 충분히 나오지 않았다.

분유와 쪽쪽이가 아이를 키웠다.


조리원에서 다른 엄마들은 하루에도 여러 번 모유 수유를 했지만, 나는 모유 수축을 하루 한 번 해내는 것도 버거웠다. 모자동 시간조차 아이를 품에 오래 안기보다, 침대에 눕혀두고 지켜보는 시간이 더 많았다.


나는 ‘아이를 낳으면 그 자체로 사랑이 전달된다’고 착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아이는 자주 깼고, 잠귀도 밝았다. 두 시간 이상 푹 자는 날이 거의 없었다.

내가 안으면 울음을 멈추지 않던 아이가 아빠 품에서는 편안해지는 걸 보며, 안도와 동시에 미묘한 허무함을 느꼈다. “내가 더 노력했어야 했나…”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때는 그저 내가 편안해지는 게 다행이었다.


아이가 태어난 지 두 달쯤 되었을 때, 코로나가 시작되었다.
그 흔한 친척 방문도 없었다. 남편은 직장이 멀어 새벽에 나가 밤 9시는 되어야 집에 왔다.

집안은 늘 조용했고, 방문객도 거의 없었다. 외출은 꿈도 꿀 수 없었다.


나는 하루 종일 아이와 단둘이 지냈다. 아이를 안고 재우면서 머릿속은 늘 미래에 가 있었다.

원고 마감, 앞으로의 커리어, 하고 싶은 일들…. 몸은 육아에 묶여 있었지만, 마음은 다른 곳을 떠돌았다.


친정엄마는 가끔 와서 도와주시며 말했다.
“이렇게 조용하게만 키우면 나중에 힘들어진다.”
그때 나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설마, 애가 예민해진다고?” 하며 웃어버렸다.

하지만 그 말은 시간이 지나면서 천천히 현실이 되었다.


지금의 눈으로 신생아 시절을 돌아보면 후회가 남는다.
조금 힘들더라도, 아이가 불편해하더라도 더 많이 안아줄 걸.
코로나가 무섭다 해도 친구도, 친척도 불러서 아이를 보여줄 걸.
내가 완벽한 임산부, 완벽한 엄마가 되겠다는 강박을 내려놓고, 그냥 같이 있어주는 시간을 더 만들 걸.


그때의 나는 몰랐다.
아이는 달랐던 게 아니다. 완벽하려 애쓴 내가 달랐던 것이다.
그리고 그 완벽함이 불안을 키우는 씨앗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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