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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종수 Aug 25. 2016

개들은 달리고 싶다

신화를 찾아가는 인문학 여행 / 그린란드  14


차라리 하늘의 별이 되어...



1.


아주 먼 옛날, 그야말로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부터 개는 인간과 함께 살았다. 개는 인간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그런 존재였다. 그래서인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개는 신화 속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주요한 캐릭터이다. 때로는 인간의 충견으로서, 때로는 인간과 동격인 반려견으로서 마치 사람처럼 등장한다. 모두가 인간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개의 존재를 부각하고 강조하기 위한 것이리다. 


우리나라에도 개에 관한 전설이 적지 않다. 그중에서도 ‘오수의 개’ 이야기는 으뜸이다. 불이 난 것도 모르고 잠든 주인을 구한 개 이야기가 바로 그것이다. 전라북도 임실에 살던 김개인이란 사람이 잔치집에 다녀오다 술에 취해 잠이 들었는데 들불에 휩싸여 죽음에 이르게 되자 개가 온몸을 적셔 잠든 주인 주변을 뒹굴어 불이 접근하지 못하게 한다. 그리고 개는 실신해 죽고 만다. 나중에 잠에서 깨어난 주인이 이를 알고 개를 묻어주고 지팡이를 무덤에 꽂았다고 하는데 후에 나무가 자라났다고 한다. 훗날 개‘오’ 자와 나무 ‘수’ 자를 합쳐 그 마을 이름을 ‘오수’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외국에서도 갓난아기를 개가 온몸으로 감싸 불길이 닿는 것을 막고 자신은 불에 타 죽고 말았다는 뉴스가 보도되기도 했다. 이처럼 개와 관련된 감동적인 이야기는 흔할 정도로 많이 있다. 그만큼 개는 인간과 밀접한, 떼려야 뗄 수 없는 반려견임에 틀림이 없다.


<사진 설명> 썰매는 모두 열다섯 마리의 개가 끄는데, 앞줄에 다섯 마리 뒷줄에 열 마리가 달린다. 앞줄에는 노련한 나이 백이 개들이 서고 뒷줄에는 경험이 적은 어린놈이 가운데, 좌우측에는 노련한 나이 먹은 녀석이 선다. 방향을 바꾸려 할 때는 마치 자동차 깜빡이처럼 뒷줄 좌우측 끝에 있는 개들에게 채찍으로 신호를 보내면 개들이 반응을 하고 좌우 방향으로 나아간다. 



비단 인간세상에서만 개의 활약이 두드러진 게 아니다. 개는 그야말로 인간의 마음이 닿는 곳 어디든 함께 한다. 우주로 날아가도 개는 여전히 주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하늘의 별자리에도 개가 주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니 그렇단 말이다. 


밤하늘에 별자리 이름을 가지고 있는 별은 모두 88개뿐이다. 밤하늘에 빛나는 별이 수없이 많은 데도 이름을 가지고 있는 별이 고작 그 숫자밖에 안된다니 의아하기만 하다. 아무튼 얼마 되지 않는 이름을 가진 별자리들 중에 개와 관련된 별자리가 무려 4개나 있다는 사실 역시 놀랍지 않은가.


별자리 이름들은 모두 그리스 신화에서 따왔다. 그중 겨울에 유독 빛나는 별이 있다. 오리온자리 별이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오리온은 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아들이다. 힘센 사냥꾼 오리온은 사냥의 여신이자 달의 여신인 아르테미스와 사랑하던 사이였는데 아르테미스의 오빠인 태양의 신 아폴론이 반대를 한다. 오리온의 성격이 난폭하고 신과 도저히 어울릴 수 없는 인간이라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아폴론은 아르테미스와 오리온이 결혼하려는 순간 대지의 신에게 부탁해 오리온에게 전갈을 보내 독침으로 찔러 죽이려 한다. 동생인 아르테미스가 이를 눈치채고 반발하자 아폴론은 한 가지 제한을 한다. 만약 오리온이 전갈과 싸워 살아남는다면 더 이상 그를 미워하지 않겠다고 한다. 결국 오리온이 싸움에 이기지만 전갈에게 찔린 독침 때문에 죽게 된다. 그 후 아폴론은 오리온과 전갈 모두를 하늘에 올려 별자리가 되게 한다. 


<사진 설명> 썰매를 끄는 날 아침이면 힘을 써야 하기에 생선 한 마리를 얻어먹지만 썰매를 끌지 않으면 일주일 내내 생선 한 마리 조차 먹을까 말까 할 정도라고 한다. 썰매개들의 야성을 보존하기 위한 것이라고는 하지만 너무 굶기는 듯하다. 그래서인지 그린란드 썰매개들은 편균 수명이 10년이 채 안된다.



오리온자리는 사냥개인 큰 개와 작은 개가 황소와 맞짱 뜨는 형태로 함께 있다. 큰 개자리는 가장 밝은 일등성인 시리우스를 포함하고 있어 찾기가 쉽다. 오리온자리 남쪽에서 찾을 수 있다. 그런데 이 ‘큰 개’는 아르테미스 여신의 명령으로 주인인 악타이온을 물어 죽인 사냥개이다. 아르테미스는 자신이 목욕하는 장면을 몰래 훔쳐본 악타이온을 벌하기 위해 그를 사슴으로 변하게 하고 그녀의 사냥개인 ‘큰 개’가 물어 죽이게 했다.(제발 여신들의 목욕장면 함부로 훔쳐보지 마시기를!) 


그런데 재미있는 건 하늘에는 ‘사냥개’ 자리라는 별자리가 따로 있다는 사실이다. 사냥개자리는 북두칠성이 높이 떴을 때 국자의 손잡이 남쪽으로 3등급과 4등급의 두 별을 찾을 수 있다. 양치기가 몰고 다니는 두 마리의 ‘사냥개’는 17세기 말 폴란드의 천문학자 헤벨리우스가 만들었다. 사냥개자리에는 눈에 띄는 별이 2개뿐이지만 구성 성단이나 외부 은하 등 망원경으로 관측할 수 있는 좋은 대상들이 많이 모여 있다. 


가만 보면 사냥개자리 근처에 사냥감인 토끼자리도 있다. 유독 오리온자리 근처에 대성운들이 많이 있음을 알수 있다. 역시 오리온의 사냥꾼 다운 면모 때문인지 아폴론이 근처에 사냥감들을 잔뜩 풀어놓았나 보다. 어쩌면 오리온 별자리가 그리 빛나는 건 바로 이 ‘개들’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2.


개가 신화 속에서 주인공으로 등장할 때는 대부분 충성심과 사회적 역할이라는 측면에서 다루어진다. 더욱이 인간과의 관계가 강조되는 장면에 이르게 되면 그 충성심은 개와 인간이 거의 동격으로 묘사된다. 즉 개와 인간의 지위가 같아진다는 말이다.


개가 인간과 같은 지위를 누리는 것은 이누이트 신화에서 그 원형을 찾을수 있다. 이미 세드나 신화 이야기를 정리한 앞의 글에서 보았듯이, 세드나 신화의 한 장을 세드나가 개와 부부로 살아가는 이야기로 풀어나가는 것을 보면 그린란드에서 개의 중요성을 강조함은 물론이고 개가 없으면 안 되는, 거의 인간처럼 절대적 존재로 귀결되는 느낌이다. 


만일 이누이트들에게 개가 없었다면 그들이 삶을 영위하는데 가능했을 가라는 생각마저 든다. 그런데 문득 한 가지 의문이 떠오른다. 왜 그린란드 어디에도 개의 동상을 볼 수가 없는 걸까? 세우지 않아서 일까? 혹시 필자가 보지를 못한 걸까? 그러고 보면 우리나라의 ‘오수의 개’ 동상이나 뉴질랜드 테카포 호수 언저리에 우뚝 서있는 잉글리시쉽독(양치기 개) 동상은 복 받은 거라는 생각이 든다. 당연히 동상을 세워 개들의 희생을 추모하고 기리는 일인데도 문득 인간을 위해 희생하다 최후를 맞은 개들보다 못한 인간이 너무 많지 않은가라는 생각에 씁쓸함을 감출수가 없다.


<사진 설명> 두 시간 좀 안되게 달리다 이제야 휴식, 물 한 모금 안 먹고 그저 휴식만 잠시, 

겨울이 되면 썰매개들은 잔뜩 기대에 부풀어 있다. 배가 고파도 신이나는 가 보다. 주인이 이제나 저제나 썰매를 이용하는지 눈치를 보면서 서로 데려가 달라고 울부짖는다. 달리고 싶단 말이지.



3.


이누이트들은 일 년에 한 번씩 바다의 지배자인 세드나를 위해 제를 올린다. 앙가코크(무당)가 이누이트들이 바다로 나가 편안히 사냥을 할수 있도록 바다의 여신 세드나를 위해 기도를 올리고 주문을 외우는 의식을 행하는 것이다. 


앙가코크(무당)가 ‘이누야’, ‘이누야’를 외쳐대며 세드나를 달래기 위한 주문을 읊조려 보지만 세드나는 간혹 풍랑을 일으켜 애꿎은 사람들을 아들리분(세드나가 사는 바닷속 궁전)으로 불러들인다. 세드나의 남편은 그녀가 있는 아들리분 입구에서 보초를 선다. 그녀의 남편은 다름 아닌 개. 개는 세드나 신화에서 인간과 동격으로 신격화되어 있다. 그래서 세드나와 개가 혼인을 해 낳은 자손이 인류의 시조가 될수 있었던 게다. 


세드나가 무서워 바다로 나가지 않고 썰매를 타고 쿠들리분(Kudlivun: 착한 영혼들이 모여 사는 곳)으로 간다. 그곳은 온통 흰 눈과 얼음으로 뒤덮여 있다고 했다. 인간과 개가 하늘의 별처럼 자신의 이름을 가지고 살아가는 곳, 그저 고요하고 평화스럽기만 하다니 그 분위기가 어떨지 궁금하기만 하다. 자 그럼 이제 쿠들리분으로 가자.


<사진 설명> 대개 4월 중순부터 시작되는 여름철은 눈이 녹기 시작하면서 썰매를 이용할 필요성이 없어지고 만다. 겨울이 될 때까지 개들은 그저 더위를 이기며 기다리고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더구나 요즈음엔 기술의 발달로 모바일이 늘어나면서 썰매의 인기도 점점 하락 추세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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