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종수 Mar 03. 2019

백두산으로 가는 길

이 글은 몇 년 전 연변에서 개최된 남북한 한글 학자들 모임에 참석한 후 백두산과 압록강, 두만강, 그리고 북한과 중국 국경 일대를 답사한 결과를 토대로 작성한 것이다. 여러 해 동안 남북학자들 모임이 진행되었기에 그때마다 참석을 하면서 다행히 압록강과 두만강 일대를 답사하는 기회를 가졌다. 이 글은 그때의 기억들을 토대로 작성한 논픽션 다큐멘터리 기록인데 몇 번에 걸쳐 연재를 한다.        


  

1. 연변 가는 길     


인천공항에서 오전 11시경 출발 예정이던 비행기는 연길에 폭설이 내렸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출발이 지연되고 말았다. 아마 연길공항에 내린 눈을 치워야만 비행기 도착이 가능하기 때문에 눈을 다 치울 때까지는 출발이 지연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다행이라면 타고 갈 비행기 승무원이 나누어준 점심 식권을 가지고 허기를 달랠 수 있었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겠다. 막연히 무료한 시간을 공항에서 보내고 있는데 몇 시간이 지나자 드디어 잠시 후 비행기 출발이 가능하다는 소식과 함께 탑승 준비를 하라는 안내 방송이 들린다.     


인천공항에서 연길공항까지 북한 상공을 지나는 직항로가 가능했다면 부산 가는 정도의 시간밖에 안 걸릴 텐데 중국 쪽으로 돌아서 가야 하기에 시간은 거의 배가 넘는 3시간 정도 걸린다. 연변에 가까워 오면서 처음 가는 도시에 대한 생각으로 언제나처럼 조금 흥분이 되기 시작한다.     


드디어 연변(연길) 공항에 도착했다. 한낮에 도착 예정이던 것이 저녁 해질 무렵이 다 되어서야 도착하게 되었지만 처음 오는 곳에 대한 기대 때문인지 늦게 출발한 것에 대한 불만 같은 것은 어느새 잊고 도시의 낯선 모습들을 찾아 내 눈은 어느새 카메라와 함께 시내의 이곳저곳을 따라가고 있었다. 숙소에 도착해 짐을 풀고 늦은 저녁을 먹기 위해 북한 사람들이 운영한다는 유경 식당으로 향했다.     


저녁을 마치고 밤거리를 걸어볼 요량으로 거리에 나서는데 연말의 스산한 날씨 때문인지 연길 시내 거리에는 사람이 별로 보이 지를 않는다. 그냥 춥다는 생각만 들어 더 이상 산책은 포기하고 잰걸음으로 숙소로 돌아왔다. 그렇게 밤이 지나고 연길의 첫날 아침이 밝았다. 문득 호텔 창으로 바라다 보이는 시내 풍경은 낯설기만 했다. 

     

동트는 연변의 이른 아침 거리(좌),  연변일보 건물에 노을이 진다.(중앙) 연변의 야경(우)
연변대학 건물과 세미나 개회식
인터넷의 언어 표기와 지역표기는 의사소통의 기본 전제, 남북이 각기 다른 언어와 지역 식별자를 사용하기에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상황, 이를 타개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2. 연길 시내를 걸으며     


이틀에 걸쳐 진행된 세미나는 나름 성과를 거두고 다음 약속을 기약하고 헤어졌다. 북쪽 학자들은 또다시 평양으로 돌아가는 긴 여행길을 서둘러 떠나갔다. 선양을 거쳐 평양까지 기차로 이동한다고 했다.      


세미나를 마친 우리 일행은 잠시 여유를 갖고 연변 시내를 둘러보자고 나섰다. 역시 사람구경은 시장이 최고이겠다 싶어 시장으로 향했다. 가는 도중 헌책방이 보여 그곳에서 책 구경을 하려고 잠시 들렀다. 오래된 책이기는 하지만 소장가치가 있을만한 우리말로 된 책을 하나 발견하고 밥 한 끼 값을 지불하고 갖고 나왔다.    

  

연길을 몇 년에 걸쳐 가면서 느낀 가장 큰 변화는 도시의 외관이 정말 눈에 띄게 변했다는 사실이다. 지금부터 10여 년 전에는 눈을 뜨지 못할 정도로 스모그가 심해 숨이 턱턱 막힌다는 생각에 시내를 나갈 엄두를 내지 못했는데 최근에는 도시미관은 물론 교통질서까지 우리보다 낫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끔해졌다.      


교통순경은 거의 보이지 않는데도 시내 도로는 그다지 혼잡하지도 않고 사람들도 차분히(?) 무단횡단을 한다. 그런데도 지나는 차량들 그 누구도 빵빵거리지 않고 잘도 참고 기다린다. 심지어 자동차도 무단횡단(중앙선 침범)으로 유턴을 해대지만 도시가 붐비지 않아서인지 그다지 고악 해 보이지도 않는다. 도시의 느낌이 참 편하다는 생각이다.     


사실 10여 년 전 연길 시내 거리에는 인력거도 다녔는데 적지 않은 자동차들이 거리를 메우기 시작하면서 점차 보이지 않는다. 대신 거리에는 스모그가 가득했다.  마치 우리나라가 7~80년대에 무작정 개발을 서둘던 시기를 떠올리게 했다. 차를 타고 지나가는데 문득 거리 간판이 온통 한글로 된 게 잠시 신기한 기분이 들었다. 연변은 자치주라서 한글과 한자를 같이 사용한다. 그래서 이곳에서 보는 한글간판이 더 반갑기만 하다.      


연길 시내를 지나며 보이는 간판에 낯익은 글자들이 많이 보인다. 특히 김치라는 글자가 커다란 간판으로 내걸린 것을 볼 때는 마치 이곳이 한국인가 싶은 생각마저 들기도 한다. 연길은 한 겨울 한국의 도시보다 크게 더 춥다는 생각은 안 들었다. 하지만 연말이 가까운 시점에 방문한 연길의 날씨는 꽁꽁 언 손을 호호 불어야 할 정도로 추웠다.      


사람 구경을 하러 시장으로 향했다. 시장에서 만나는 것들은 거의 우리 시장에서 보던 것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특히 조미료 종류는 더 그렇다. 아마 연변 사람들이 한국을 자주 왕래하다 보니 한국시장에서 볼 수 있는 그런 것들 대부분을 이곳에서 만나게 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리에 보이는 한글 간판들
노천시장과 실내 시장 모습들
우리 시장과 별반 다르지 않다.


배가 고파오는지 근처에서 순대 냄새가 나는 게 식욕을 자극한다. 조금 늦은 아침식사를 하는지 사람들이 먹거리 가게에 몰려가 한창 맛있게 무엇인가를 먹고 있다. 그 부근에는 두부와 소고기 같은 육류들이 진열되어 있어 흔히 시장에서 보던 풍경이다. 그런데 문득 단고기(개고기)가 눈에 들어온다. 자주 보지 못한 자극적인 모습에 다소 역겨움을 느꼈지만 그래도 자연스레 카메라에 손이 갔다.      


야채와 과일, 그리고 도라지, 고사리도 보인다. 곱게 빗은 머릿결처럼 잘 정리해 놓아 우리네 시장에서 보던 것과는 모양새가 달라 보이는데 주로 북한에서 채취한 것이라고 한다. 시장에서는 역시 먹거리가 인기가 많다. 허기진 배를 채울 겸 잠시 따뜻한 국물로 요기를 하고 다시 천천히 시장을 돌아다녀 본다.     


혹시 뭔가 다를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열심히 시장을 둘러보지만 그 생각이 잘못이라는 걸 아는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역시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다는 생각이다.      


    

3. 용정 일송정에서     


연길시내에서 일송정으로 가는 길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사진으로 보았던 일송정 휴게소와 언덕 위에 자리한 일송정 정자가 보이는 곳에 다다르니 어느새 해가 중천에 떠오른다.     


일송정 푸른 솔은 늙어 늙어 갔어도

한 줄기 혜란강은 천년 두고 흐른다

지난날 강가에서 말달리던 선구자 

지금은 어느 곳에...     


선구자, 이 노래를 모르는 이는 거의 없을 것이다. 일송정 용정 고개와 해란강은 당시 독립투사들의 고향 같은 곳이라고 했다. 어쩌면 지금도 우리의 또 다른 고향이 아닐는지. 일송정 정자에서 바라본 60리 평강 벌과 그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흐르는 해란강 역시 아주 오래된 고향 마을 이름처럼 가만히 가슴속으로 파고든다. 멀리 용정시내가 보인다.      


일송정
평강 벌에 흐르는 혜란강


추운 날씨 때문인지 사람들 입에서 내뿜는 입김이 마치 해란강을 따라 평강 벌 저 멀리 말을 타고 달리던 선구자의 입김처럼 허옇게 씩씩거리는 모습을 연상케 한다. 아마 말을 달려 동지들에게 달려가는 중이었을 것 같은 그런 순간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막연한 상상을 해 보았다.     


이번에는 북쪽으로 조금 더 올라가 윤동주 시인이 다니던 용정 중학으로 갔다. 지금은 새로운 사옥으로 더 크게 시설을 확장했다고 한다. 다행히 예전 윤동주 시인이 다니던 건물은 그대로 보존해 지금은 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대성중학교라는 당시에 사용하던 학교 간판도 그대로 보존을 하고 있다.  

   

대성중학 건물 근처에는 윤동주 시비도 있다. 대학을 다니던 시절 학교 교정에 있던 윤동주 시비 앞에서 연일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 없기를 다짐하며 지냈던 일이 새삼 떠오른다. 건물 내에 마련된 박물관에는 윤동주의 학생 시절 모습과 그의 친필 작품들까지 전시하고 있었다. 마치 친근한 누군가의 서재에 들어서는 그런 느낌이 들었다. 금방이라도 어디선가 찻잔을 들고 나타나 그가 쓴 시를 읽고 차근차근 시에 대한 이야기를 해줄 것만 같은 그런 분위기가 감돌았다. 죽은 이를 모신다는 건 어쩌면 이렇듯 공감할 수 있는 자연스러운 분위기를 꾸며 놓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1946년 용정에 있던  대성, 동흥, 은진, 영신, 광명여고, 명신여자중학은  길림성립룡정중학교를 설립하고 통합한다.  윤동주가 수학한 대성중학 건물은 기념관이 되었다.
윤동주 기념관 내에 있는 윤동주 관련 자료들과, 연세대에 있는 시비

  


4. 백두산으로 가는 길     


드디어 백두산으로 가는 여정이 시작되었다. 연길을 출발해 백두산으로 가는 내내 곳곳에 백두산이 아닌 장백산이란 글자가 우리를 반긴다. 북한을 통해 가는 백두산이 아니라 중국을 거쳐 가야 하기에 그런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는 도중 내내 참 많은 조선족을 만났다. 모두가 친절하다.     


드디어 백두산 입구 매표소에 당도했다. 백두산 공원 입장료 가격이 만만치가 않다. 그런데 산 정상까지 한겨울 추위에 어찌 오르나 했더니 무조건 자동차로 움직여야 한단다. 우리나라 캘로퍼같이 생긴 일본 도요다 차량이 대기하고 있다. 이제부터 저걸 타고 움직여야만 한다. 

    

산을 오르는 내내 자작나무 숲을 지나고 또 지나고 참 겁나게 달린다. 차를 모는 운전자의 운전 솜씨가 눈이 오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무섭게 내지른다. 가끔 간이 콩알만 해지기도 하는데 조금이라도 더 빨리 운전을 해야 다른 손님을 한 번이라도 더 태워 나를 수 있을 테니 장사하는 입장에서는 그럴 수 있을 법한 일이지만 간혹 이런 난폭 운전 솜씨 덕분에 낭떠러지로 굴러 떨어지는 사고가 발생한다고 한다. 아무튼 백두산 정상이 가까워 올수록 가슴이 두근대기 시작한다.   

   

날이 그다지 좋지가 않아 천지를 볼 수 있을까 내심 걱정을 하는데 잠시 반짝하고 해가 난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금방 해는 사라지고 계속해서 눈보라만 날린다. 드디어 정상에 닿았지만 차에서 내려 천지 부근으로 발을 옮기는데 도저히 눈을 뜰 수 조차 없을 지경이다.     


간신히 천지에 당도해 내려다보려 하지만 아무것도 보이 지를 않는다. 하는 수 없이 증명사진만 하나 찍고 다시 되돌아와야 했다. 천지는 역시 삼대가 덕을 쌓아야만 볼 수 있다는 게 거짓이 아닌가 보다. 바람이 심해 눈을 뜨기가 쉽지 않았다.   

  

산장으로 후퇴를 하고 점심으로 컵라면을 사 먹는다. 우리나라 컵라면이다. 점심을 대충 때우고 다시 천지 쪽으로 가보려 생각을 해 보지만 여전히 바람이 심하게 불어대는 바람에 하산을 결정하고 말았다. 아쉽지만 다음을 기약하는 수밖에 별다른 방도가 없다. 

    

역시나 3대가 덕을 쌓고 와야 하는가 보다.
비룡폭포로 가는 길목, 온천수가 솟는 곳이 많다.
서파에서 오르다 본 흰머리산(백두산). 북한 지역에서 본 백두산(우)


결국 산아래로 내려와 비룡폭포 쪽으로 가보기로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비룡폭포라고 하기에 이곳 사람들에게 비룡폭포를 물어보지만 장백폭포라는 말에 익숙한 저들은 무엇을 찾는 거냐는 듯이 멍하니 쳐다만 본다. 폭포로 오르는 길목에 개천에서 샘솟는 온천이 많이 보인다. 온천수가 끊임없이 흘러내려 근처에는 온천탕이 적지가 않다. 폭포로 오르는 길목 역시 너무 춥고 바람이 심해 안전을 위해 비닐로 터널을 만들어 놓았다.  

   

드디어 비룡폭포가 보이는 곳까지 왔다. 역시 바람이 너무 거세다 보니 폭포가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근처에 있는 어떤 장사치가 하마(말린 개구리)를 자꾸 사라고 권한다. 내려오는 길가에는 옥수수와 달걀을 온천물에 담가 익혀 파는 상인들이 있다. 유황냄새가 거슬려 그다지 먹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백두산,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설레는 곳, 아주 오래전부터 그곳에 올랐던 것처럼 느껴지는 곳. 마치 보고 싶은 연인을 만나러 가는 것처럼 두근대는 마음을 안고 오른 곳. 하지만 그곳에 백두산은 없었다. 그냥 겨울산이었다. 아니 장백산만 자리하고 있었다.               




이전 03화 두만강 발원지를 가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