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 가면 회천동 새미 마을에 화천사란 작은 절이 하나 있다. 작은 절임에도 대문과 법당이 제법 그럴듯하게 갖춰져 있는데, 법당 뒤로 가면 울창한 제주 특유의 숲을 만나게 된다. 이 숲 언저리에는 크기 7-80cm 정도 되는 작은 석불 5개가 놓여 있다. 상반신의 좌상으로 보이는 이 석불들은 인근 마을이 생기기 훨씬 전인 4백여 년 전 고려시대부터 이곳에 자리를 잡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1700년대 초 절은 불이나 거의 다 타버렸는데 200여 년이 지난 1968년에 화천사 절을 다시 세우게 되었다고 한다. 물론 5 석불도 제자리에서 몇 백 년간 자리를 지켜왔기에 화천사의 미륵불로 모시고 있다. 사람들은 이 석불들 앞에서 아이를 갖게 해 달라는 등 갖가지 소원을 빌기도 하는데 매년 정월 초하룻날 석불제를 지낸다고 한다. 석불제를 지내면 무병, 수태, 득남의 효험이 있다고 하며 제주도 전역에 역병이 돌아도 오석불이 지켜주어 모두가 무사하게 된다고 믿는다.
이 5 석불은 실상 민간신앙으로서의 미륵사상을 사찰안으로 들여와 불교화한 특이한 과정을 가지고 있다고 불교계에서는 말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절 안에 엄연히 법당이 있음에도 법당 뒤 켠 숲 동산 언저리에 가지런히 앉아있는 석불들에게 더욱 관심이 갈 수밖에 없는가 보다.
제아무리 지장보살이나 문수보살이라 할지라도 여기 화천사에 이르면 이름 없는 작은 석불들에게 그 권위를 양보해야만 한다. 화천사의 작은 5 석불이 법당 안 부처보다 숲 언저리 동산에서 이끼 낀 모습으로 수백 년 동안 민중을 구원하는 미륵으로 자리해 왔기에 그렇단 말이다.
4백 년 전 이름 없는 누군가 민중들의 얼굴들을 떠올리며 하나하나 정성을 다해 깎았을 석불들이다. 그러니 때로는 꼭 거룩하고 권위 있는 부처에게만 관심을 가지기보다 이름 없고 이끼 낀 보잘것없어 보이는 석불이라도 미륵불로 모셔야 하는 이유를 알아야 할 것이다.
제주도 새미 마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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