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대학교 입학하면서 찾아온 공허함과 우울함에 대해 누군가는 갱년기라고 하고 누군가는 제2의 사춘기라고 했다. 나는 둘 중에 고르라고 한다면 제2의 사춘기라고 하고 싶었다. 바쁘게 사느라 잊어버렸던 진정한 나의 마음을 찾아 더 성장하고 싶은 이유에서다.
아는 언니가 캘리그래피를 배워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물어보았다. 옛날부터 배워보고 싶었지만 여러 가지 핑계로 매번 뒤로 미뤄두었었는데 이번에는 꼭 해야만 했다. 사막 모래 구덩이 같은 이 마음에서 벗어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일부러 여러 사람이 같이 배우는 곳으로 정했다.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서 생활의 활력소가 되기를 바랐다. 캘리그래피 배우는 첫날, 긴장과 설렘 때문인지 새벽에 눈을 떴다. ‘무언가에 도전한다! 첫발을 내딛는다! 온전히 나를 위한 시간이다!’ 생각하니 오랜만에 즐거워졌다.
“ 처음부터 너무 욕심내지 마세요, 조금씩 천천히 꾸준히 하다 보면 달라질 겁니다.”
선생님의 이 말씀이 마음속에 깊이 박혔다.
한지에도 앞면, 뒷면이 있다. 구분이 잘 안되지만 만져보면 앞면이 더 부드럽고 결도 곱다. 글씨는 앞면에 써야 한다. 그래야 글씨가 더 매끄럽게 써진다고 한다. 내 마음도 그렇다. 이제부터는 거친 뒷면보다는 부드러운 앞면에 글씨를 더 많이 써야겠다고 다짐했다.
첫 번째로 선 긋기를 한다. 붓을 잡는 자세를 배우고 가로, 세로, 대각선 등 여러 가지 선 긋기를 한다. 기초부터 잘 배워야 필력이 좋아진단다. 몇 날 며칠을 한지에 선 긋기를 했다. 온전하고 멋진 글씨를 쓰기 위해 나의 잘못된 버릇을 바로잡는 훈련이었다. 내 마음도 이렇게 바로잡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두 번째로 한글 자음과 모음을 정자로 쓴다. 한지에 적히는 ‘가나다...’를 보니 다시 어린아이가 된 것 같았다. 매일 보는, 다 아는 글씨인데도 새롭고 신기했다. 글씨를 쓰는 게 내 마음을 새로 쓰는 기분이 들었다.
세 번째로 한글 자음과 모음을 변형된 글자로 쓴다. 평소에 내가 쓰지 않던 글씨체를 연습하다 보니 마음대로 되지 않고 너무 어려웠다. 하지만 새로운 도전을 하는 나에게 어느새 응원하는 마음이 생기고 스스로 대견했다.
캘리그래피 수업을 듣고 오면 가족들에게 그날 썼던 글자를 보여주며 자랑했다. 가족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너무 잘했다~ 멋지다~ 대단하다~’ 어깨가 으쓱으쓱 해지고 마음도 가뿐해졌다. 내 마음속 작은 곳에서도 ‘명진아, 잘했어’라는 소리가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