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관
“넌 내가 뮤지컬 배우 준비하는 걸 어떻게 생각해?”
“어쩌면 될 수도 있겠다? 어차피 가장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건 너잖아. 녹음된 목소리를 가장 많이 듣는 사람도 너고, 거울에 반사된 춤추는 모습을 가장 많이 보는 사람도 너고. 근데 아직 꿋꿋히 학원 다니는 걸 보면 가능성이 있는 거겠지. 너가 객관적으로 생각 못하는 사람도 아니고.”
‘어차피’라는 말로 간신히 흑백의 선택지를 회피한 나의 대답에 고등학교 동창 영은이는 꽤 놀란 눈치였다. 젠장. 무언가 본의아니게 위로를 해준 듯 하다. 요즘 통 그녀답지 않게 자신감이 없는 이야기를 하곤 한다. 내가 알던 그녀는 매사 자신감이 넘친다. 정확히는 생각을 하면서 행동을 하는가 싶을 정도로 대장부인 면모를 보이곤 했던 그녀였으니까.
마치 그 모습은 디자인을 처음 배웠던 시절, 나의 모습 그리고 내 옆의 친구들의 모습과 같았다. 누구나 무언가 새로운 것에 발을 들이고 제일 먼저 알고싶어하는게 있다.
‘나는 타고 났을까’
특히 내가 전공한 디자인도 마찬가지로 ‘타고난 감각'은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다. 하지만 지나왔던 어느 선생님들도 ‘감각은 타고나는 것이다’, 또는 ‘아니다'라고 정답을 내주지 않았다. 사실 그것을 알기 위해서 많은 수의 디자이너를 중장기적으로 봐야한다. 아니, 정확히는 디자인하는 사람의 결과물을 오랫동안 보고 분석해야한다. 더군다나 잘된 디자인의 정도는 척도가 될 수 없기에 치수로 나타 낼 수 없을 것이다.
정말 타고 났을까. 색감이 유난히 좋은 저 디자이너는 타고난 것일까. 그렇게 판단하기에 너무 억울하다! 어떤 노력 또는 본의 아닌 학습이 그에게 감각을 키워놓은거라 여겨야겠다. 합리화가 될 수 있겠지만 이런 합리화라도 없다면 성장은 여기서 멈추게 될 것이다.
우연히 지인의 집에 놀러가서 꾸며진 방을 보았을 때, 마치 연출된 쇼룸 만큼이나 뛰어난 감각의 공간이었을 때 느껴지는 감정. 세련된 감각은 마치 노력없이 그 사람의 뿌리 부터 타고나버린 것 처럼 보인다. 주변을 아름답게 꾸밀 수 있는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을 대하기 어려워진다. 정확히 말하면 감히 무시할 수 없게되는 것이다. 동경을 넘어서 약간의 열등감이 부여되는 상태에 가깝다.
서른이 넘어서 뮤지컬을 준비하는 영은이가 본 주변 연습생들의 노래와 춤은 갓 피어난 꽃 처럼 월등히 아름다웠을 것이다. 그 사람들을 통해 자신의 실력이 어디쯔음 도달했나 판단했을 것이다. 자신보다 어리지만 노래와 춤 모두 그녀 자신 보다 잘하는 사람을 본 것이다. 그럼에도 그 사람이 고작 연습생 위치에 있다는 것. 늦게 시작한 만큼 극복하고 넘어야하는 산들이 그녀에게 부담을 안겨주기에 충분했다. 그래서 나에게 그런 터무니없고 곤란한 질문을 했겠지.
고교 학창시절을 함께한 그녀는 나와 건축 도면 수업의 성과를 높이면서 꽤 매너리즘에 빠졌었다. 주어진 건축물의 도면을 신속, 정확, 깔끔하게 그려 제출을 하고 순위를 매겼다. 우린 항상 1, 2위를 다퉈 차지했다. 3위는 한 참 뒤에나 도면을 제출할 정도로 우리는 월등했다! 그 추억 때문인지 십여년이 지났음에도 둘이 만나 일과 학업에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면 서로의 자존감이 제법 상승한다.
그런 그녀는 학창 시절 부터 뮤지컬을 꽤 좋아했다. 질풍노도의 시기. 좋은 글을 보면 작가가 되고싶고 좋은 풍경을 만나면 사진가가 되고싶은 나이. 그녀도 마찬가지로 우리의 전공 수업인 건축을 꽤 좋아했고 보던 의학 드라마에 빠져 의사가 되고 싶다고도 이야기했다. 학교 활동으로 함께 연극 발표회도 한 적이 있다. 공부만 빼면 다 재밌는 나이. 그저 열심히 움직였고 끝 없이 상상했다. 결국 그녀는 고등학교 과목이었던 건축(특성화 고등학교를 다녔다)에 등을 돌리고 드라마 한 편의 영향으로 의생명공학과로 진학을 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고 난 뒤, 난 군대에서 우연히 본 미국 잡지 화보를 보고 영감을 받아 감자튀김 트럭 사업을 하겠다는 상상에 잠겨있는 동안. 영은이는 자신의 전공을 살려 병원에서 근무를 했다. 지금의 나는 타인의 인생에 함부러 조언하지 않지만 그 당시 난 그녀의 행보에 아쉬움을 느꼈고 다른 창의적인 일을 하라는 참견을 했다. 매사 열정적이고 상상하기 좋아하던 그녀가 왜 하얗고 딱딱한 병원에 앉아 정해진대로 움직여야하는가.
선을 넘고 주제를 몰랐던 조언은 자연스레 우리 사이를 멀어지게하는데 역할을 했다. 또는 군복무로 인해 물리적으로 떨어진 2년여 동안 각자의 자리에서 인생에서 중요한 것이 달라진 탓일지도 모른다. 이십대 초반, 보고 듣는대로 모조리 흡수할 바짝마른 스펀지 같은 상태였으니까.
난 이후에도 꽤 오랫동안 그녀와 동업하는 상상을 저버리지 않았다. 전역 후 졸업, 퇴사를 하고 이내 프리랜서로 살아가면서 사업 성공에 대한 공상을 자주했다. 그 때 똑똑하고 든든한 동료가 필요하다면 바로 이 친구를 섭외하리라 다짐했다. 같이 제도판 위에 빠르고 신속하고 정확하게 그렸던 실선들이 쌓여 건축의 도면이 되듯 어떤 사업이 우리에게 주어지더라도 기가막히게 잘 해낼 자신이 있었다.
서른 즈음. 영은이와 나는 즉흥적으로 마트로 향해 스테이크 재료를 사왔다. 그녀에게 선물로 들어온 동그란 원이 그려진 라벨의 와인. 언제였던가 TV쇼에서 봤던 ‘글라스 와인을 마시며 스테이크 굽기’를 준비 했다. 분위기를 내기 위해 마시는 와인 보다, 맥주 처럼 홀짝거리며 할 일을 하던 누구의 모습이 제법 멋져서 따라하고 싶었나보다. 야심차게 냉장고에 넣어둔 와인을 꺼내고 투명한 잔 두개를 내려놓고 나서야 유감스럽게 와인 오프너가 없음을 깨달았다.
대체할 무언가를 찾았지만 눈에 들어오는 것은 쇠 젓가락과 가위 였다. 어김없이 젓가락으로 코르크 마개에 구멍 뚫기를 시도했지만 마음처럼 쉽게 되지 않았다. 우선 가위 한쪽의 날을 세워 난도질 후 젓가락으로 길을 만들고 다시 가위를 사용하며 반복했다. 손이 베일 것 같은 긴장감에 살짝 더워졌고, 그로인해 신경쓰지 못한 살치살 스테이크는 오버쿡이 되어가고 있었다.
나도 지치고 아마 코르크 마개도 지칠 무렵, 한번만 더 젓가락으로 코르크를 살짝만 찔러넣어 뽑으면 마무리 될 것 같은 단계가 왔다! 그렇게 젓가락을 누르는 찰나. 코르크 마개는 ‘푹’ 분수를 일으키며 병안으로 들어가버렸다. 어디서 들어보지 못한 경쾌한 소리와 화려한 율동감의 분수쇼! 우리는 몇 초 동안 상황을 파악한 뒤, 엉망이 된 부엌 가운데서 자지러지게 웃었다. 오 분 넘게 박장대소를 하고나서야, 사방으로 퍼진 와인을 닦아내기 시작했다.
와인의 얼룩들을 닦느라 오버쿡이 된채로 차갑게 식은 스테이크와 가니쉬를 깔아놓고, 진중한 이야기, 실없는 이야기, 학창시절 이야기를 하다가 좀 전의 와인 분수쇼에 대한 묘사가 시작됐다.
“이렇게해서 펑 하더니… 난 천정에 튀는줄….”
나의 말과 취기에 과장된 제스처를 따라 우리 둘의 시선은 천정을 향했고 그 자리엔 정말로 와인 분수의 흔적이 처참히 남아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한참을 2차 대폭소를 치뤘다.
우리가 마시는 와인의 떫음이 이 와인의 떫은 맛인지 코르크마개 가루들이 주는 떫음인지는 아직도 알 수 없었다. 서른을 넘어가는 나이에 이런 처참한 사고에 실없이 웃어 재낀다며 서로를 걱정하다가. 벌써 서른임을 와인의 쓴 맛 처럼 되새김질하며 정적이 흘렀다. 순간 와인병 안에 표류하고 있는 코르크를 보았다.
‘여전하다'.
지금 보다 어렸을 때 비슷한 경험을 했던 기억이 있다. 그 때도 와인오프너가 없어 젓가락으로 시도해 결국 코르크를 빠트렸던 기억. 병안에 두둥실 떠 있는 코르크 마개도 여전했지만 나와 이 친구의 삶도 여전했다. 어설프고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그 깨달음이 슬프거나 서럽지 않았고 오히려 안도감을 주었다. 우린 언젠가 당연하다는 듯 부엌 두번 째 서랍에서 와인오프너를 꺼내고 능숙히 따버리는 모습의 어른이 되자는 다짐을 했다.
서로가 생각하기에 충분히 똑똑하게 성장한 서른 살의 사람이지만 자신의 춤과 노래의 비전을 물어볼 만큼 여전히 불안정하다. 내가 생각했던 성숙한 서른의 나이가 되었지만 스스로를 정의내릴 만큼 성숙하지 않았다. 와인 오프너가 준비되지 않은 우리의 모습. 삶에 대한 불안함은 아니었다. 와인병이 깨져버리거든 다시 돈을 지불하고 와인을 사오면 되는 것이니까. 오히려 병 안에 코르크를 보고 마음이 놓이는 저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