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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태원 Taewon Suh Aug 17. 2021

성공의 반감기

마이클 잭슨 케이스

1983년 1월이었다고 기억합니다. R&B 계열의 음악에 맛을 들이고 있던 사춘기의 필자는 이후의 음악 취향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는 LP 두 장을 구입하게 됩니다. 하나는 Prince의 [1999]이었고 다른 하나는 마이클 잭슨의 [Thriller]였습니다. 프린스의 경우는 그 시대를 앞선 펑키 사운드에 이미 반한 상태였으나 Thriller 앨범은 마이클 잭슨이라기보다는 첫 번째 싱글 [The girl is mine]의 협업자였던 폴 매카트니에 대한 당시 높았던 충성도로 인해 구입한 것이었습니다. 두 번째 싱글 [Billie Jean]이 발매되기 바로 전의 시점이었지요.
새로 산 LP를 대하는 필자의 루틴은 첫 번째 트랙을 들은 후 이미 발매된 싱글 넘버를 들으며 LP에 포함된 속지의 앨범 소개 내용을 숙독하는 것이었습니다. 평론가의 추천곡이 있다면 한 두 곡 더 듣기도 하지요. 앨범에 대한 '완전한' 감상은 시간에 걸쳐 점진적으로 계발되는 것이었지요. Thriller는 경우가 달랐습니다. 첫 곡인 [Wanna be startin' something]을 듣자마자 신선하고도 강렬한 R&B의 비트와 멜로디에 호기심이 폭발했지요. 2번 트랙은 조금 진부한 R&B였지만 첫 싱글을 포함한 Side A를 다 듣게 됩니다. 타이틀 트랙인 [Thriller]는 에픽 넘버였습니다. "뭐, 견고한 히트 앨범이네." 하며 Side B로 판을 돌려 트는 순간 필자는 자세를 고쳐 앉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가올 트렌드를 정의할만한 첨단의 사운드가 매력적인 멜로디를 얹고 차례차례 (Billie Jean, Beat It, Human Nature 그리고 P.Y.T.) 귀에 꽂힐 때 이전의 생각은 바로 최고 상한가로 바뀝니다. 전작 [Off the Wall]의 성공적인 후속작이란 Side A의 판단은 Side B에서 "필연적인 다이아몬드 앨범!"으로 교체됩니다.


필자의 생각은 사실 틀렸습니다. Thriller는 1천만 장을 넘어서 2016년 시점에서 전 세계 음악협회에 공인된 판매량만 5천만 장에 이릅니다. 업계의 추정치로는 7천만 장에서 1억 장까지 얘기되기도 합니다. 누구도 이 정도의 성공을 예견하지 못했습니다. 마이클 잭슨 자신은 물론 제작 회사도 말이지요.


[Thriller]의 상상 이상의 성공은 여러 가지를 바꾸게 됩니다. 무엇보다도 마이클 잭슨에 대한 대중의 기대, 본인의 기대, 그리고 제작사의 기대는 역사상 최고치로 상승하게 됩니다. 누적 추정 판매량 4천만 장 안팎을 기록한 후속작 [Bad]를 아무도 대성공이라고 얘기하지 않습니다. 전작의 성과에 크게 못 미쳤기 때문이지요. 사실 그 성과를 뛰어넘는 것은 가능한 일도 아녔으며 따라서 현실적인 목표치가 될 수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마이클 잭슨에게는 그것이 희망 목표치가 되었습니다. 매번 앨범 제작 시기마다 Thriller를 뛰어넘는 목표를 얘기하며 그에 합당한 지원을 요구하게 됩니다. 요구가 관철될 때까지 제작사 대표에게 시간을 가리지 않고 새벽마다 전화를 합니다. 급기야 앨범 제작 비용은 최고 약 4천만 달러까지 상승합니다. 예를 들어, 마이클 잭슨의 1995년 작 싱글 [Scream]의 뮤직 비디오의 제작에만 약 7백만 불이 소요되었습니다. 1990년을 전후한 시대의 최고의 프로모션 수단이었던 뮤직 비디오의 메인스트림 제작비 평균은 당시 약 20만 불 정도였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업적 성과는 하향세를 지속할 수밖에 없습니다. 1991년의 [Dangerous]의 글로벌 판매량은 약 3천2백만 장이었고, 1995년 신곡을 포함한 더블 컴필레이션 앨범 [HIStory...]은 약 2천만 장이 팔렸습니다. 2001년 [Invincible]은 8백만 장이 팔리며 1980년대 이후 천만 장을 넘지 못한, 마아클 잭슨의 첫 정규앨범이 됩니다. 앨범의 상업적 성과는 방사능 물질처럼 반감기를 거치며 하강합니다.


마이클 잭슨은 이 하락세의 모든 원인을 제작사의 무관심(?)과 무능 그리고 악마성(!)에 귀인합니다. 앨범 Invincible의 실패(?) 이후 음악 업계의 인종주의를 항의하는 공식 석상에서 제작사 Sony/Columbia의 당시 사장이었던 Tommy Mottola를 인종차별주의 devil이라고 부르며 말이지요. (Kanye West는 마이클 잭슨의 죽음 뒤에는 Tommy Mottola가 있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반대의 시각에서, 토미 모톨라는 본인의 정당성을 설명하는 데 많은 노력을 투여합니다. 그가 자신의 자서전에서 밝힌 한 일화는 다음과 같습니다:


소니/콜럼비아 레코드는 Invincible 앨범 제작을 위해 마이애미에 있는 Hit Factory를 통째로 빌립니다. 6개의 스튜디오가 있는 이 공간에 대한 렌트 비용은 매일 5천 불이었습니다. 토미 모톨라와 그의 세 번째 부인 Thalia가 어느 날 이 컴플렉스를 함께 방문했을 때 6개의 모든 스튜디오는 텅텅 비어있었습니다. 이곳저곳을 헤매다 마이클 잭슨을 찾은 곳은 건물 주차장에 세워져 있던, 녹음 시설이 구비되어있는 트레일러였습니다. 마이클은 그 차 안에서 모든 작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건물에는 들어가지도 않고 말이지요. 이곳에서 얘기 끝에 마이클은 자신의 어린 시절에 겪었던, 아버지에 의한 심리적 학대에 대한 개인적인 얘기를 털어놓아 부인인 탈리아를 눈물짓게 만들었답니다. 일 년도 안되어서 마이클은 토미를 악마라고 부르게 됩니다.


토미 모톨라는 제작사가 투자한 비용을 근거로 마이클 잭슨의 하락세에 대한 원인을 전적으로 음악 퀄리티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Thriller 앨범 이후의 모든 앨범은 Thriller 앨범의 2-4배의 비용을 투자하여 제작되었습니다. 제작사로서는 할 수 있는 최선의 투자를 했다는 것이지요.


음악 산업의 개별 사례에서 마케팅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혹은 음악 상품의 본질적인 가치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에 대해서는 명확한 대답을 하기 어렵습니다. 상업적인 성공은 다양한 요인들의 총합에 의해 영향을 받는 것입니다. 그 요인들에는 사람이 컨트롤할 수 없는 부분도 있지요. 화려하고도 측은한 영혼, 마이클 잭슨은 30년에 걸친 하락장을 뒤집지 못한 채 2009년 의문의 죽음을 맞이합니다.



*Title Image: The cover of his posthumous album [Michael] (2010)


[Scream] by Michael Jackson ft. Janet Jackson (1995)

"Stop pressurin' me. Just stop pressurin' me. Stop pressurin' me. Make me wanna sc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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