싫어 병에 걸린 아들이랑 귀찮아 병에 걸린 엄마
7화 학원 싫어
아이는 자유분방한 영혼이었다. 요즘 유행하는 mbti 검사에서도 그러했다. 그는 내향적 자유 영혼을 가지고 있었고 나는 외향적 자유 영혼을 가졌다.
일곱 살에도 동네 공원에서 밤 아홉 시까지 놀다 집에 가면 씻고 재우기 바빴던 나는 엄마들이 학교에 갈 준비 시키느라 밤에 학습지를 시키는지는 꿈에도 몰랐다. 물어보지 않았잖아 라는 말이 엄마들의 대답이었다. 한글을 일찌감치 떼고 책을 좋아하는 아이여서 학습지는 필요치 않다고 생각했다. 놀이를 좋아하는 아이여서 근처 갈 만한 곳들은 다 놀러 다녔다. 미술관, 박물관, 도서관, 키즈카페, 궁궐과 전시회, 어린이 뮤지컬 등 아이와 정말 많은 체험을 다니고 여행 다녔다. 우리에게는 많은 추억이 털실의 타래처럼 말아져 있다.
처음 학교를 보내고 운동장을 갔지만 그곳은 텅 비어 있었다. 오후 한 시의 운동장에는 학원 가기 전 십 분내지 이십 분을 보내는 아이들뿐이었다. 친구들이 다 학원으로 떠나고 아이와 나는 손을 잡고 쓸쓸히 집에 돌아왔다. 그리고 다음 분기, 나는 일과로 가득 찬 시간표를 짰다. 모두 아이가 선택해서 배우고 싶다는 것들이었다. 그렇게 몇 개월이 지난 어느 날, 인라인 연습을 하기 위해 차로 아이를 데려다주고 있었다.
"엄마, 이번에는 또 어디 가?"
아이가 묻고는 창 밖을 바라보았다. 눈빛에 먼 하늘만 가득했다. 운전석 미러에 비친 아이의 눈에 반짝임이 사라져 가고 있었다. 아차 싶었다. 나도 아이도 이곳저곳 다니느라 조금 지쳐 있었지만 덜 외로웠던 것도 사실이었다. 운동장에는 없던 아이들이 학원이나 각종 교육 시설에 가면 쉽게 볼 수 있었고 그곳에는 아이들도 엄마들도 북적였다. 아이들은 배우느라, 엄마들은 매니저 하느라. 그곳에 있으니 나도 아이를 위해 뭘 하는 것 같았고 외롭지가 않았다. 어린아이가 다음에는 어디 가냐고 묻는데 내 대답은 퉁명스러웠다. 모두가 따르는 이 경로를 이탈하기가 두려워 그러고 싶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나는 망설였다. 여느 엄마들처럼 나도 아이 교육에 관심이 많았고 자유분방한 유치원 시기를 보내고 나면 학교에 가서는 공부를 자연스레 할 거라는 생각을 가졌었다. 다른 아이들처럼 그냥 시키는 대로 하지 않는 아이도 조금 원망스러웠다. 하지만 분명 이건 뭔가 잘못된 것 같았다. 어린아이들이 놀이터 아닌 교육기관을 돌고 놀이터에서 놀던 아이가 더 놀고 싶다고 울면서 엄마 손에 채여 영어학원으로 가는 모습들을 보았다.
점점 나와 아이는 어린 나이에 학원을 도는 게 잘 맞지 않았다. 나도 가슴이 갑갑했고 아이도 그러했다.
"이거 다니기 싫어?"
"응, 싫어."
"네가 다니고 싶어 했잖아."
"응. 그런데 힘들어. "
"그래서 진짜 싫어?"
"응. "
"그래, 알았어."
남편과 긴 대화를 나누고 나는 아이가 정말 하고 싶어 하는 태권도를 하나 남긴 채 다 끊었다. 내가 욕심을 부린 것 같아서 미안했다. 내가 좀 외로우면 되는 것을.
그 이후로도 아이는 본인이 선택한 방과 후 과정 요리나 마술, 만들기와 예체능만 배우러 다녔다. 그래서 시간적 여유가 있었고 아이의 표정은 밝았다. 주체적인 선택권이 주어졌기에 그럴 테다. 아주 어린아이 일지라도 본인이 선택을 하는 것은 비록 실패할지라도 중요한 것이었다. 그 과정에서 아이는 배우는 것이 있었다. 평일에 학교를 마치면 사람이 없는 과학관에도 가서 놀고 여유롭게 서점에 가서 책도 읽고 공원에 가서 산책을 하고 도시락을 먹었다. 학원 대신 궁궐, 박물관, 미술관, 전시를 보러 갔고 여행을 다녔다. 학원을 가보는 게 어떤지 가끔 물었다. 다니고 싶지 않다고 했다. 아이의 의견을 존중하기로 했다. 사실 조금 불안했다. 하지만 그건 내 불안이니 엄마가 다스리는 게 맞았다. 엄마들은 내게서 학원 정보를 얻을 수 없으니 연락이 별로 없었다. 정말 취미가 맞거나 성정이 맞는 사람들만 남았다. 이런 내가 안타까운지 나에게 학원 정보를 주며 가르치는 사람들도 있었다. 부모가 짜 놓은 스케줄대로 하지 않는 아이는 나이기도 했다. 나는 간섭 없이 자유롭게 자라 학원 도움 없이 내가 하고 싶은 대로 공부했다.
학원이 싫다던 아이가 드디어 학원을 다니며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그가 잘하든 못하든 나는 또 마음을 가다듬어야 한다. 내 아이만 보면 어려운 일이 아니다.
아이와 나는 헤매는 듯 보였으나 헤매지 않았다. 우리에게는 실을 잣는 시간이 길었던 만큼 즐거운 유년의 시간이 겹겹이 쌓여있다. 아이가 앞으로 세상을 살아가는데 즐거웠던 추억이 많은 위로와 힘이 되어줄 거라 믿는다. 아이가 힘들 때는 제 안의 단단한 실타래를 풀어나가면 된다.
보석을 품은 아이들은 기다려주어야 한다. 어떤 아이들은 자신 안의 보석을 내보이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린다. 원석과도 같은 아이는 보듬을수록 아이 스스로 자신의 것을 갈고닦을 시간을 가지고 빛을 낼 것이다.
아이 키우기는 현재 진행형이고 나는 이후로도 많은 시행착오를 겪을 것이다. 오랜 시간 동안 실을 잣는 시간을 가진 만큼이나 나는 이제 물을 적당히 주고 때를 기다리는 마음의 꽃밭을 가꾸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