싫어 병에 걸린 아들이랑 귀찮아 병에 걸린 엄마
5화 네 살과 열네 살의 공통점
"차에서 내리자."
"싫어."
내렸다.
"으.. 너한테 백 년 된 냄새난다 씻고 나올래?"
"싫어."
"너 오늘만 싫어 열 번 넘게 한 거 알지? 네 살 때랑 똑같아."
"씻을래, 엄마의 발 냄새를 맡을래?"
"윽, 싫어 낄낄낄"
씻으러 갔다.
이넘의 싫어는 반항도 아닌 게 사춘기 반쯤 걸쳐진 상태로 능글능글하게 웃으며 먼저 싫어 를 외친 후 행동한다.
싫어는 싫은데, 안 하고 싶은데, 아.. 싫다. 이런 변형을 거치기도 한다.
좋아하는 오리 백숙을 사주며 물었다.
"너네 사춘기 애들 말이야 학원 가기 싫어 이러면 어른들이 그럼 다니지 마 이러면 더 화나는 거야?" 끄덕끄덕
...
"가기 싫은 마음 알아달라는 거지? "
"음.. 어른들은 무슨 매뉴얼이 있는 거야? "
"아니, 애들이 학원 가기 싫어해 놓고 가기 싫음 다니지 마. 이럼 다 화낸다더라고. 어쩌라는 건지 모르겠어. 내 생각엔
그냥 힘드니까 가기 싫다고 말하는 거고 가기 싫은 마음 알아달라는 거 같기도 해서. 그게 맞는 거야?"
멋쩍게 웃는 걸 보니 맞는가 보다.
맞다. 아이가 네 살 때 싫어를 남발했다.
이거 할래? 싫어
저거 할래? 싫어
이건 어때? 싫어
아는 말이 싫어 뿐인가 싶을 정도로 '싫어' 의 연속이었다.
'싫어'는 "안 할래 잉잉" 또는 "저거 저거 저거 할래 잉잉" 으로 변형되었다.
뭐 이러다 보면 백만 번의 '싫어' 끝에 '좋아'를 찾다가 하루가 갔다. 꼬마지만 처음 자기 의견이 생기는 생기는 때였던 것 같다. 그래서 좋고 싫고 호불호가 어찌나 단호한지, 고맘때 아이들 키우는 부모는 '싫어' 병을 일찌감치 경험하며 미운 네 살이라 부른다.
그로부터 십 년 후 열네 살의 싫어 병이 도진 것이다. 북한군도 무서워한다는 중2가 몇 달 앞으로 다가오고 살짝 긴장도 된다. '싫어' 병이 또 어떻게 바뀔지...
그런데 결국은 싫어라는 표현이 아이들이 학교에, 학원에 숙제까지 하느라 밤늦게까지 지치고 힘든 마음의 표현일 수도 있겠다 싶다.
한창 감수성 예민한 나이에 하루 종일 책상에 앉아 계절이 오고 가는 것도 모르는 아이들이 안타깝다. 이 '싫어' 병은 '귀찮아' 병에 걸린 나처럼, 해야 하는 건 아는데 귀찮고 힘드니 일단 마음을 밖으로 내뱉는 말인가 보다. 의사표현을 막 하기 시작하여 다양한 표현이 채 되지 않는 네 살의 아기는 아니지만 이 사춘기 아이들 또한 자기 마음의 소용돌이가 표현이 안 되는 시기인 것이다. 몸은 성장하느라 힘들고 2차 성징에도 적응해야 하는 데다가 학업량은 갈수록 느는 고난의 시기이기도 하다. 친구와의 관계도 더 섬세해지고 이제껏 의지해 온 부모보다는 또래에게 고민을 나누는 시기가 된 아이들.아이는 성장하고 있다... '싫어'를 남발하면서.
네 살 아기가 '싫어'를 외치며 쑥쑥 컸던 것처럼 열네 살도 '싫어'를 외치며 쑥쑥 성장하기를 바란다.
유일하게 아직 고기 먹을래? 치킨? 요런 거에는 '좋아' 를 외쳐주니 고맙다. 누군가 그랬다. 고기로 꼬실 수 있을 때가 행복한 거라고..
아직 치킨 좋아해 줘서 고마워. 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