싫어 병에 걸린 아들이랑 귀찮아 병에 걸린 엄마
4화 녹즙 아줌마, thank you
"이빨 제대로 닦아."
"싫어."
"녹즙 아줌마 얘기 더 해줄게."
"좋아."
치카치카치카
우리 집 중학생 아들은 이야기를 아직도 저렇게 좋아한다.
엊그제 본 구미호뎐의 녹즙 아줌마는 실시간 검색어를 장악했다. 내가 아이와 장난치며 문지기, 문지기, 문 열어라~ 노래를 부르자 남편은 무서운 노래 부르지 말란다.
뭐가 무섭냐고 하니 구미호뎐의 녹즙 아줌마가 생각난다는 것이었다. 훗. 무섭단 말이지? 그렇다면 멈출 수가 없지. 문지기, 문지기, 문 열어라~ 나는 춤까지 추며 노래를 하다가 녹즙 아줌마 흉내를 내었다.
"너는 뭐를 무서워해?" 그리고 손목을 슬며시 만졌다.
아들은 이 상황이 몹시 궁금했던 것이다. 구미호뎐을 보지 않는 아들은 엄마는 뭣 때문에 춤까지 추며 웃고 아빠는 무섭다며 하지 말랐는지 도통 모르니까 녹즙 아줌마 이야기가 궁금한 게다. 게다가 녹즙 아줌마가 실시간 검색어에까지 올랐다고 말하니..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기대한 것이다.
"녹즙 아줌마는 요구르트 아줌마처럼 초록색 옷에 초록 모자를 쓰고 녹즙을 마셔보라고 권해. "
"초록색 녹즙, 빨간색 녹즙 그런 거?"
"야, 무슨 빨간 휴지 파란 휴지인 줄 알아? 녹즙이라고! 초록색! 야채 색깔. 그 아줌마가 손을 만지면 그 사람이 뭘 무서워하는지 알게 돼. 그러고 나서 "넌 뭘 무서워해?"라고 묻고 씩 웃으며 떠나. 잠시 후 문지기, 문지기, 문 열어라~노래가 나오고 노래가 들리는 문을 열면 자기가 무서워하는 곳으로 가게 돼. 시공을 넘어서 말이지. "
"텔레포트야?"
역시 어벤저스 같은 히어로물을 좋아하는 아들답다.
"녹즙 아줌마는 우렁각시보다 인지도가 떨어진다고 스스로 말하던데? 그런데 정확히 정체가 나오지 않았어. 전래동화에 나오는데 주인공은 아니라 인지도가 떨어지는, 사람들이 잘 모르는 그런 캐릭터 같아. 그래서 정체가 뭔지 아직 안 나왔어."
"시공을 넘나들면 신 급인데..."
"그렇지. 근데 우리나라에서는 그 정도 급 같진 않고. 뭔가 우렁각시보다 사람들이 기억도 못하는 존재감 없는 그런 캐릭터 같아. 도깨비 같은 것도 아닌... 여하튼 잘 자."
녹즙 아줌마 덕분에 싫어 병에 걸린 아들 이빨 닦기를 무사히 마칠 수 있어서 나는 만족스러웠다.
Thank you, 녹즙 아줌마. 당신의 정체가 무엇이든 간에.
그런데 내 아들 열네 살인데 왜 네 살 키우는 거 같지...
녹즙 아줌마의 정체는... 어둑시니였다!
어둑시니는 단순히 놀라게 하는 어둠의 '요정' 같은 존재로-요정? 그렇다기엔 무섭고 얄미운 존재로 설정되어 있었는데- 기본적으로 어둠을 사람이 지켜보고 있으면 점점 커진다고 한다. 무시해버리면 끝인, 관심을 주지 않으면 사라져 버리는 요괴다.
즉, 사람의 관심을 받아야 커지는데 그 관심이란 게 사람 내면의 두려움, 공포 같은 것이었다. 각자가 가진 두려움을 읽고 그것을 극대화시켜 공포로 몰아넣는데 사람이 스스로 자각하고 두려움을 떨치면 공포에서 벗어나 제자리로 돌아온다.
나의 내면의 두려움은 과연 무엇일까. 이 드라마에서도 주인공들의 key가 되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는 것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버림받는 것이었다. 결국 사람의 마음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일까. 옛날이야기가 현대 이야기와 크게 다르지 않음은 사람 사는 이야기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