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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로소 Apr 23. 2023

완벽한 연기

진심이지 않았던 모든 것들은 티가 난다. 가짜 연기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 없듯이...

단풍이 알록달록 물들었던 늦가을 어느 날부터인가 내 인생이 흑백이었다는 것을 이제야 알아차렸다.

겨울이 되어  하얀 눈이 소복하게 내려도, 봄이 되어 벚꽃이 흩날려도 다 흑백이었다.  

펑펑 내리는 흰 눈을 보러 밖을 나갔을 때는  흙이 달라붙어 진창이 된 눈과 더럽혀진 강아지 발과 내 신발이 나를 괴롭게 했다.

하얗게 핀 벚꽃을 보러 나갔을 때도 눈은 벚꽃을 향해 있었지만 마음이 그곳에 있지 않았다.

티 내지 말아야지 하고 웃고 떠들며 일상을 보냈던 나는 어느 순간에도 진심으로 기쁘고 즐겁지 않았다. 찰나의 기쁨과 즐거움이 스쳐 지나갔을 뿐이었다.


집에 웅크리고 있으니 한없이 가라앉는 감정이 더 조절되지 않아 침대에 누워 생각을 잊기 위해 잠만 잤다.  마치 겨울잠 자는 곰이 된 것 같았다.  

카톡과 줌으로 진행되는 동화 수업을 들었다. 마음이 즐거워지고 싶어서 선택했다. 그 당시 나는 괴로움을 잊고자 몸부림다. 산책과 커피로 마음이 달래 지지 않자 나는 스스로를 바쁘게 하는 방향을 택했다. 밖으로 나가 손으로 무엇인가를 만들고 누군가가 시키는 운동을 하고 누군가가 가르치는 수업을 듣기로 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었다.  그동안 꼭 하고 싶었지만 미루고 하지 못했던 것들 하기로 했고 내 동아줄이 되어주기를 바랐다.

줌으로 진행되는 수업은 여러 면에서 알맞았다. 그때는 사람을 만나면 상처받고 오기 일쑤였다. 내 상황을 알리고 싶지 않아 침묵했고 주변 사람들에게 듣는 이야기는 다 나와 상관없는 이야기 또는 하소연이었다. 나는 그 이야기들을 일방적으로 들어주고 받아줄 만한 마음의 여유가 점점 없어짐을 느꼈다. 나는 그들에게 하소연하지 않는데 왜 이들은 내게 끊임없이 하소연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니 자리에 앉아 있는 게 의미가 없어지곤 했다.  어떤 이야기들은 내 상황을 모른 채 던지는 돌들이었다. 그러다 보니 몇몇 지인을 제외하고 사람을 만나는 게 두려워서 모임도, 만남도 최대한 줄였다.  침잠하는 시기에 줌수업이라니 나를 내보이지 않아도 되어 편하다고 생각했다.

줌으로 진행되는 수업을 열심히 듣는다고 생각하며 수업 중 무엇인가를 시키면 그것을 해내고 오늘도 뭔가를 했구나 싶었다.  그런데 카톡으로 내는 과제나 수업 진행 방향을 읽었으나 제대로 읽지 않았음을 한참이 지나고 갑자기 깨달았다. 사람들에게 더 이상 상처받고 싶지 않은 마음 탓이었는지 내가 마음을 열지 않았었구나 싶었다. 시도 때도 없이 울리는 카톡에 나는 무음을 해놓고 있었다. 어떤 카톡에는 답글을 달기도 했었다. 대부분은  읽었으나 눈으로 보았을 뿐 대부분 이해하지 않았다.

대면수업이 있던 날 함께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는데 내가 모르는 이야기들이 너무 많았다. 어찌 된 일인가 싶었다. 그동안 수업을 건성으로 들었던가 반문했다.

선생님이 뭘 잘 모르는 내게 카톡을 잘 안 읽는구나라고 말을 했을 때도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일요일 아침, 늘 성실하신 분의 필사가 올라왔다. 여느 때처럼 읽어보는데 뭔가 이상했다. 그리고 카톡방의 글들을 주욱 올려서 보았다. 다 낯설었다. 나는 간간히 댓글도 달았고 대답도 했었다. 그런데 다시 그동안의 카톡을 읽어보고는 깜짝 놀랐다. 나는 아무것도 읽지 않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눈 뜬 장님 같았다고나 할까.

나에게 그동안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소스라치게 놀랐다.

아무렇지 않게 태연한 일상을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가짜로 산 것 같았다. 마음속의 괴로움을 진짜 잘 숨겨왔다고 생각했는데 모든 일상에 구멍이 숭숭 나 있었던 것이었다.

완벽한 연기를 했다고 스스로 믿었을 뿐이었구나. 나 제대로 살고 있지 않았구나. 엉망진창이었구나.


얼마 전 관조적 시선으로 세상을 대하고 있는 나에 대해 고민을 한 적이 있었다. 그동안 나를 괴롭혔던 건강상의 문제는 다행히 심각한 병이 아니어서 여유를 가지고 대할 수 있게 되었다.  심각한 병이 아니라고 판정이 나면 6개월에 걸쳐 나를 힘들게 했던 괴로움에서 벗어나 홀가분해지고 바로 유쾌해질 줄 았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여전히 나는 일상으로 완벽히 돌아가지 못하고 있었다. 마치 세상을 대하는 시선이 모두 바뀐 것만 같았다. 모든 게 관찰자 시점으로 보이니 자꾸 무미건조해지고 의미 없고 재미없어졌다. 겉으로 잘 웃고 있던 나와는 다른 마음의 세상에서 살고 있었다.

점차 나 왜 이렇지? 하고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성격이 바뀐 걸까? 삶을 대하는 태도가 바뀐 걸까?

그러다 문득 괴로웠던 6개월의 시간만큼 필요하겠구나 싶었다. 내가 다시 나로 돌아가는데 말이다.

여행을 가도 감흥이 떨어지고 맛있는 것을 먹어도 맛의 감각이 떨어지고 가지고 싶었던 물건을 사도 좋은 지 모르겠는 그 상태가 지속이 될까 봐 두려웠다.

구불구불한 긴 파마머리의 내가 머리를 다 밀게 될까 봐 미용실 가는 것을 꺼리고 예쁜 옷 입는 것을 좋아하던 내가 못 입게 될까 봐 만지작거리다가 발걸음을 돌리며 속으로 울던 날들을 내색조차 하지 못했다. 주변 사람들을 동요시킬까 봐 마음을 꾹꾹 누르던 시간들이 나를 관조적으로 만들었을까. 그때 웃지 말고 울 걸 그랬나.

혼자 울지 말 걸 그랬나. 복잡한 마음이 들었다.

이제야 조금은 솔직한 나의 이야기들을 풀어내며 원래의 나로 돌아가는 시간을 가져보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남을 배려한다고 나를 배려하지 않은 가짜 연기를 내 인생에서는 하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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