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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로소 Sep 02. 2024

정처 없이 돌아다니기 쉼

사는 곳이 대중교통이 불편해 운전해서 다닐 때가 많다.

운전을 하며 감사할 때도 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도로 위에서 맑은 하늘을 바라볼 때는 사방 막힌 곳 없는 뷰에 참 좋다 싶을 때도 있다. 더운 날 땀 흘리지 않고 추운 날 동동거리며 추위에 떨지 않으니 참 감사하다.

하지만 걸으며 길가의 식물도 보고 사람들도 보고 가게들도 구경하는 맛이 없으니 아쉬울 때가 많다. 차로 다니게 되면 작은 골목도 구석구석 보기 힘들고 어쩌다 정차해 건널목에 서 마주치는 사람들만 볼뿐이다. 모든 게 빠르게 지나간다. 목적지를 내비게이션으로 찍고 교통 신호를 잘 지켜 주행하고 주차하고 내린다.

풍경을 보기보다는 앞 뒤 옆을 살피며 교통 상황에 촉각을 늘 세워야 한다.

사람이 북적이는 과일가게도, 줄을 길게 선 빵집도 궁금하지만 지나친다. 과일가게에 들러 과일도 보고 만지며 사고 싶고 빵집에 줄을 서 맛난 빵도 맛보고 싶다. 그 모든 것들이 스쳐 지나가는 게 아쉽만 하다.

걸으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걸 좋아하는 나는 운전하는 삶이 삭막하게 느껴진다. 정해진 목적지가 아니라 옆 길로 마구 새고 싶다. 골목을 돌아다니며 새로 생긴 가게도 기웃거리고 담에 핀 제철 꽃도 바라보고 싶다.

기관사가 운전해 주는 지하철을 타고 창 밖을 멍하니 바라보다 내키는 곳에 내려 낯선 동네를 걷고 싶다.

정처 없이 걷는 것도 내게는 쉼이다.

고등학생 때 삶의 목표와 이유도 모른 채 교실에 갇혀 이른 등교와 반복되는 야자로 심신이 지쳤었다.

일요일, 책가방을 멘 채 지하철을 타고 서울의  어느 낯선 동네까지 가서 한참 거리를 걷다 오곤 했다. 다른 사람들이 사는 모습도 보고 걷다 힘들면 앉아있었다. 그리고 다시 학교에 가서 공부를 하다 집에 갔는데 낯선 곳 걷기가 그 시절의 유일한 탈출구였다.

살다 보면 스스로를 찾아 하는 시기가 오곤 한다. 비단 인생에 사춘기만 있는 게 아니었다. 그때그때 정체성도 흔들리고 삶의 이유도 없이 사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내가 가진 고민과 그 해결책은 결국 내 안에 있다. 나만 힘든 것 같고 삶이 버겁게 느껴질 때는 정처 없이 떠나본다. 때론 목적지를 정하기보다 발길 닿는대로 걸어보는 것도 좋다. 걷고 생각하고 샛길로 새서 구경도 하고 다른 사람들 사는 모습도 본다. 그러다보면 내 자리로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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